야생화로 그림을 그렸다.
한 폭의 도화지를 펼쳐놓고 철 따라 피어나는 꽃들을 조화롭게 그려나갔다. 시행착오도 있었고, 계획대로 이루어지지 않아 다시 손을 대기를 수차례 반복한다. 1년, 시간을 공들여 도화지 한 장을 겨우 채웠다. 그렇게 마당에 화단이 자리를 잡았다.
시작되는 기쁨, 기대되는 한 해
한겨울 한파에도 야생화는 강인함으로 주눅 들지 않았다. 꽃샘추위 시셈하는 사이 깽깽이풀이 보랏빛 향기를 물씬 풍겨 봄을 알려왔다. 이어지는 야생화들의 미인대회 릴레이는 코로나로 지쳐가는 심신에 위안을 주기에 충분할 만큼 마음에 평안과 기쁨을 주었다. 올 한 해는 가을이 가기 전까지 화단에서 아름다운 꽃들이 춤을 추는 모습을 상상하며 한껏 부풀어 있었다. 절망을 맛보기 전까지는 말이다.
우리나라에 우기가 온 것일까
6월, 폭염이 시작되는가 싶더니 장마가 시작되었다. 계속되는 궂은 날씨에도 야생화의 강인함에 대한 믿음이 있었기에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키가 큰 야생화 무리는 혹시나 싶어 기둥을 세우고 끈으로 잡아주어 넘어지거나 처지지 않게 조치를 취했고, 태풍만 오지 않는다면 크게 넘어지거나 무너질 아이들이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나라는 4계절이 뚜렷한 나라로 잘 알려져 있다. 여름 장마가 오기는 하지만 보통 3주 전후면 소강상태로 끝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런데 지구의 온난화로 우리나라도 우기가 생기는 것일까? 올해 우리나라는 54일이라는 기록적인 장마를 기록했다. 전국에서 비로 인한 피해가 속출했다. 뉴스도 온통 장마로 인한 피해를 보도하느라 코로나 이야기가 비중을 잃어 갈 정도였다.
손쓸 방법조차 없었다.
장마는 화단에도 물폭탄을 투하했다. 나름 배수가 잘 되어 물이 고이지 않는 화단이기는 했지만 그치지 않는 비로 인해 화단이 마를 날도 없었다. 그래도 야생화는 잘 견뎌 주었다. 눈에 확 들어오는 커다란 야생화는 일단은 그랬다. 문제는 작고 여린 야생화들이 문제였다. 긴 비가 내리자 뿌리 쪽부터 잎이 녹아내리기 시작했다.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은 생각에 야생화를 처마 밑으로 옮겼다. 그러나 이미 야생화는 회생불가의 상태로 접어들었다. 한껏 기대했던 가을 화단이 이제는 절망으로 다가온다. 이미 메말라 더 이상 손쓸 방법조차 없는 야생화를 보내줘야 했다.
붉은 속살을 드러내다.
기대가 크면 실망도 크다고 했던가.
화단이 낯설어졌다. 여기저기 곰보처럼 구멍이 나 있다. 구멍마다 내 가슴에도 구멍이 생겼다. 풍성했던 붓들레아 아래 자리했던 아이들의 피해가 가장 컸다. 생살을 도려낸 듯 붉게 물든 모습이다. 기나긴 장마가 원망스럽기만 했다. 가을에 대한 기대는 여지없이 무너졌고, 기대 한 만큼 가슴이 쓰라렸다.
야생화는 강인하기에 어떤 환경에서도 살아남는다 생각했었다. 이것은 나의 엄청난 착각과 무지에서 비롯된 것이다. 야생화는 다른 식물들에 비해 강인하고 생명력이 강하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모든 조건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조금 아는 것을 전부 안다고 착각하고 살고 있는 나 자신이 가지고 있는 민낯 그 자체다. 이렇게 몸소 겪어야 받아들이는 모습. '무식이 용감하다.'는 딱 그 말이 어울리는 모습이다.
이번에도 또 야생화는 나에게 가르침을 준다. 내가 아는 것은 세상의 티끌 하나 겨우 아는 것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