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탁을 손절하는 마음

화를 말하다.

by 소향

며칠 전 친하게 지내던 지인에게 화가 나는 일이 있었다. 그 화는 며칠이 지나도 가시지 않고, 문득문득 튀어나와 다시 내 기분을 망치고 있었다. 그런 과정에서 화(火)에 대해 생각해 보는 시간이 되었다.


우리는 왜 화를 내며, 누가 화를 내는가? 하는 것이 궁금해졌다.

화(火): 몹시 못마땅하거나 언짢아서 나는 성.(네이버 사전)
우리는 왜 화(火)를 낼까?

지인으로부터 카톡이 왔다.

처음에는 바쁘지는 않은지 물었고, 나는 잠시 대화할 정도의 여유는 만들면 되기 때문에 괜찮다고 대답했다.

그러자 지인은 대뜸 자신의 과제물을 제시하며 해달라고 했다.

내가 왜 그걸 해줘야 하냐고 묻자 지인은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내가 해 달라고 하면 해주잖아. 나를 이렇게 만든 게 그쪽이야."

너무나도 할 말을 잃게 만드는 저 말에 그만 화가 나고 말았다.


내가 처음 지인을 도와준 것은 친하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승진이라는 중요한 시험을 앞두고 많이 힘들어하며 도와달라는 부탁을 해서였다. 이미 나는 그 시험을 통과한 지 몇 년 지난 후였고, 그 사람은 아직 시험을 보지 못했었을 때였으니 안타까움에 기꺼이 도와줬던 것이다. 다행히 그는 그해 승진시험에 합격했고 고맙다며 거리가 멀어 찾아오지는 못하고 선물로 대신 감사의 마음을 전했던 사람이었다.


그런 일이 있은 후, 그 지인은 업무상 모르는 것이 있으면 나한테 전화를 해서 물었고, 대답해 주는 게 어려운 일은 아니니 마다하지 않고 답변을 해줬던 것이다. 그런데 자신이 다른 뭔가를 준비하면서 발표를 해야 할 상황이 생겼던 모양이다. 두 가지의 주제를 각각 발표해야 하는데 그중 한 가지를 나보고 해 달라는 말이었다.

그것도 빚쟁이 빚 독촉하듯 해 놓으라는 듯이 아주 당연히 해줘야 한다는 억지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

'호의가 계속되면 권리인 줄 안다.'는 말이 생각났다. 그동안은 '그럴 수 있지.'라는 생각을 했었는데, 막상 나에게 그런 일이 생기고 보니 정말 화가 났다. 정중하게 부탁을 해도 들어줄까 말까 한 상황을 어쩜 이리도 뻔뻔하고 당당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인지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나를 도대체 얼마나 우습게 봤으면 저렇게 말을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결국 지인의 요구를 망설임 없이 손절해 버렸다.


대부분 우리가 화를 내는 이유는 그런 상황이 단순히 싫어서가 아닐 것이다. 화를 내는 데는 그만한 이유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부탁을 예로 들면, 상대방의 의사와 처한 상황을 확인하고 정중하게 부탁을 한다면 오히려 들어주지 못함에 상대방은 미안함이 생길 것이다. 그럴 상황이 반대로 화를 부르는 상황이 되었다면 아마도 두 가지가 원이은 아닐까? 첫째는 오해로 만들어진 상황이 될 수 있다. 사람이 완벽할 수 없기 때문에 말하는 과정에서 오해를 만드는 경우가 있다. 그렇기 때문에 말을 할 때는 단어의 선택에 신중을 기해야 하고, 말을 조심해야 하는 것이다. 둘째는 잘못을 하면서도 잘못인 줄 모르는 상황이다. 분명히 상대방은 화가 나 있지만 말하는 사람은 자신이 어떤 잘못을 했는지 모른다. 그런 사람은 오히려 잘못했음에도 당당하고, 화내는 사람이 잘못이라고 말하는 그런 사람이다. 아마도 내 지인은 후자였던 것 같다.

누가 화를 내는가?


누가 화를 내고 있을까? 피해를 본 사람일까 아니면 피해를 준 사람일까? 일반적으로 화를 내는 경우를 본다면 피해를 입은 사람이 화를 내게 된다. 그러나 자세히 살펴보면 일차적으로 화를 내는 사람은 분명히 피해를 입은 사람인데, 시간이 지나면서 오히려 피해를 준 사람이 화를 내는 모습을 우리는 종종 볼 수 있다. 그것은 자신이 뭘 잘못했는지, 상대방이 왜 화가 났는지 알지 못하기 때문에 화를 내고 있는 상대방에게 화가 나는 것이다. 그러니 방귀 뀐 놈이 성낸다는 말처럼 적반하장의 상황으로 몰아가는 것이다.


현실에서 이런 경험들은 많이 겪었을 것이다. 자신이 잘못하고 오히려 큰소리를 낸다거나, 자신의 잘못은 간 곳 없고 상대방이 화를 낸다는 이유로 더 크게 화를 내는 그런 상황들 말이다. 그런 상황에서 멘털이 약한 사람들이나 소심한 사람들은 상대방의 강한 압박에 눌려 자신이 잘못했나 싶은 생각이 들기도 한다는 것이다. 약육강식의 세상이라지만 관계가 중요시되는 인간의 사회에서 이런 일들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사람들 관계에서 늘 좋은 상황만 반복될 수 없는 것은 수시로 바뀌는 환경과 상황 그리고 소통의 변화가 원인이다. 여기에 개인들의 감정이 더해져 심리적인 변동성은 극에 달하는 것이 현실이다. 그렇다면 모든 사람들이 매 순간 화를 내고 다투고 있는가? 그건 또 아니다. 다투는 경우는 생각보다 적다. 때로는 참아 넘기고, 때로는 이해하고, 때로는 대화로 해결되기 때문이다.


다투지 않는다고 화나지 않은 것은 아니다. 다만 매번 화를 내며 얼굴 붉히고 살아가기 힘들기 때문에 화가 남에도 불구하고 사람들은 화를 품고 살아가고 있다. 가슴에 상처로 남을 화를 품고 살아가는 사람들, 그 남아있는 화는 그대로 방치해도 괜찮을지 생각해 봐야 할 부분이다.


화는 감정의 불협화음이다. 심리적 불안을 야기하고 이성을 마비시키기도 하며 질병을 유발하기도 한다. 이번 일을 계기로 화에 대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게 되었고, 화에 대하여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이미 많은 사람들이 화에 대해 글을 쓰고 화를 다스리는 방법을 말하고 있을 것이다. 그래도 나는 또 그들과 다른 이야기로 풀어 갈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으로 글을 써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