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지

리폼 시(by소향. Oct 14.2020.)

by 소향

텅 빈 시간이 가득 메워진 하얀 종이 위를 가만히 바라만 본다

순백의 빛깔이 좋아 가지런히 모아 놓고

떨어지는 먼지만 하나 둘 세어본다


지나가던 바람이 하얀 종이를 보고 한쪽 귀퉁이를 들어 본다

소심하게 살짝살짝 들어보는 것이 아마도 어린 바람의 호흡인가 보다

한 두 번 가지고 놀던 바람은 이내 재미가 없는 듯

하얀 종이를 버려두고 자리를 떠난다


사방이 고요해지자 심심해진 시계 초침이

하얀 종이 위를 왔다 갔다 방황하고 있다

뭔가 할 말이 많지만 생각이 정리가 안 되는 듯

걸음마다 그렇게 고민만 한 가득 내려놓는다


어쩌다, 구름 사이로 빼꼼히 고개를 내민 해가

긴팔 뻗어 하얀 종이에 그림을 그려본다

제각각의 모양으로 그려나가던 해는 그림이 마음에 들지 않는지

창피함에 금세 구름 뒤로 얼굴을 숨겨본다


복잡한 생각이 꼬여있는 하얀 시간 위에는

출발을 붙잡은 고요한 침묵이 턱을 고이고 있다

간지러운 이야기가 꼬물대며 시작을 찾지 못하는 백지에는

방황이 하얗게 하루를 비워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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