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강혁진 Nov 13. 2023

당근하면서 이런 경험은 처음이야

 2023년 새해가 밝았다. 연말연초가 되면 하는 일이 있다. 바로 물건을 정리하는 일이다. 책상 서랍 속에 묵혀 두었던 사무용품이나 더는 아이가 쓰지 않는 육아용품을 당근에 올린다. 당근마켓이 나온 이후로는 물건을 정리하는 일이 조금 더 재미있어졌다. 안 쓰는 물건을 집 밖으로 내보내는 것만으로도 묘한 쾌감이 생기는데 당근에서 누군가에게 소액이라도 받게 되면 정리의 기쁨은 배가 된다. 


당근에서의 경험이 늘 즐거운 것만은 아니다. 실컷 찔러본 뒤에 구매하지 않는 사람은 그나마 귀여운 편에 속한다. 다짜고짜 가격을 깎아달라고 하는 사람도 흔한 축에 든다. 기껏 약속을 다 해두었는데 약속 장소에 아무런 연락도 없이 나오지 않는 사람을 만난 적이 있다. 그런데 얼마 전엔 정말 상상도 못한 황당한 경험을 했다.


오래된 맥북을 팔기로 했다. 업체에 파는 것보다 당근에 파는 게 10만 원 정도는 비싸게 받을 수 있을 것 같았다. 올려둔 지 몇 주가 지났을까.. 메시지가 왔다. 본인이 사겠다고 한다. 밝고 경쾌한 말투를 보니 20대쯤 된 것 같았다. 출퇴근하면서 매일 들르는 잠실역에서 만나기로 했다. 주말에 보자고 하는데 난 출퇴근을 하는 날에만 거래할 수 있었으므로 화요일 저녁 7시 30분을 제안했다. 상대도 좋다고 했다.


‘네! 그럼 그때 잠실역 9번 출구에서 뵐까요?’

‘네네~’


거래하기 바로 전 주가 되었다. 상대에게서 메시지가 왔다. 


‘제가 화욜날 시간이 안될 수 있어서요 ㅠㅠ 만약 직거래 못하게 되면 잠실역사 내 물품보관소에 맥북 넣어주시면 계좌이체 해드릴게요 ㅠㅠ 보관함 추가 비용도 낼께요 ㅠㅠ 정말 죄송합니다…’


다른 가능한 요일을 물어봤지만, 낮에만 시간이 된다고 했다. 난 낮에는 불가능하니 강남역은 어떠냐고 물었다. 하지만 강남역은 너무 멀어서 어렵다고 했다. 어쩔 수 없이 물품보관소에 맡기고 연락을 하기로 했다. 며칠 뒤 물품보관소에 맥북을 넣어두고 인증샷을 보냈다. 상대는 토스 송금으로 45만 원을 보내왔고, 난 비밀번호를 알려주었다. 그렇게 순조롭게 중고맥북 거래가 끝났다…고 생각했다. 


이틀쯤 지났을까, 당근에 올려둔 다른 물품에 누군가 채팅을 걸어왔다. 반가운 마음에 당근 앱을 켰다. 장문의 메시지가 도착해 있었다. 거기엔 예상하지 못한 내용이 담겨 있었다.


‘안녕하세요. 얼마 전 맥북프로 거래한 학생 엄마입니다. 아이가 11살 4학년이고 옳지 않은 방법으로 돈을 마련하여 거래했습니다. 경찰서 다녀왔고 죄송하지만 미성년자 거래로 거래취소 부탁합니다.’


아니 이게 무슨 일인가. 나와 맥북 거래를 한 상대가 11살, 4학년이라고? 옳지 않은 방법으로 45만 원이나 되는 큰돈을 마련했다는 건 또 무슨 말인가? 경찰서는 왜 다녀왔다는 것인가? 혼란스러웠던 것도 잠시, 바로 답장을 보냈다. 


‘헉. 당연히 환불해 드릴게요. 전화 좀 주시겠어요? 010-1234-5678’


잠시 후 아이 엄마에게서 전화가 왔다. 아이가 못 보던 노트북을 들고왔길래 친구에게서 빌려 온 건가 싶었는데 도통 어디서 난 건지 말을 안 하더란다. 무슨 일인가 싶어 아이를 데리고 경찰서까지 다녀왔다고 한다. 아이는 엄마의 돈에 손을 대었다고 한다. 동생이 5살인데 엄마인 본인이 둘째를 챙기느라 첫째를 많이 못 챙긴 탓인지 아이가 방학 때 이런 일까지 벌였다고 했다. 정말 죄송하지만 환불을 해주었으면 좋겠다고 했다. 나는 바로 그러겠노라고 했다. 거래할 때 내가 함께 전달한 맥북 박스는 아이가 버렸다고 한다. 엄마에게 노트북 산 걸 들키지 않기 위해서. 박스값은 변상하겠다고 했다. 


그리고 어제 아침. 아이의 아빠가 맥북을 들고 송파구에서 남양주 우리 집까지 찾아왔다. 맥북을 건네받고 이상이 없는 걸 확인한 후 돈을 환불해주었다. 아이 아빠가 건넨 쇼핑백 안에는 충전기와 노트북 그리고 A4용지를 접어 만든 봉투가 있었다. 그 안에는 맥북 박스 값 2만원이 담겨 있었다. 맥북을 열어보니 노트 한 장이 접혀 있었다. 삐뚤빼뚤한 글씨로 아이가 쓴 짧은 편지였다. ‘죄송합니다’로 시작해 ‘정말 죄송합니다'로 끝나는 4줄의 편지. 아이 아빠와 엄마에게 아이 계정을 탈회하시는게 좋을 것 같다고 메시지를 남기는 것으로 나의 맥북 환불 거래는 끝이 났다. 


이번 일을 겪으며 아이를 키운다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새삼 느끼게 되었다. 내 아이도 몇 년 뒤엔 초등학생이 될 것이고 스마트폰을 갖게 될 것이며 어쩌면 다른 친구들보다 조금 더 빠르게 노트북을 갖고 싶어할 수도 있을 것이다. 내가 바라는 대로, 나와 아내가 온 힘을 기울여 키운 결과대로 바르게 자라준다면 더없이 감사할 것이다. 혹여라도 아이가 아내와 나의 애플 사랑을 닮아 맥북을, 아이패드를, 애플워치를, 아이폰을 또래보다 유독 더 많이 갖고 싶어 하면 어떻게 해야 할까? 


초등학생 자녀를 키우는 일은 아직 나에게는 미지의 영역이다. 미지의 영역을 겁내고 두려워하기 보다는 천천히 준비해 나가려 한다. 원하는 것을 얻는 올바른 방법이 무엇인지 알려줄 것이다. 원하는 것을 갖고 싶을 때 해야 하는 일과 해서는 안 되는 일이 무엇인지 명확히 알려줄 것이다. 그 무엇보다도 아이가 어떤 사람으로 커가고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늘 귀 기울일 것이다. 아이에게 관심 가지려는 부모의 노력이 한시도 쉬지 말아야 함을 잊지 않을 것이다.


2023-1-15


---


썬데이 파더스 클럽 전체 레터 읽으러 가기

https://sundayfathersclub.stibee.com/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