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요일 밤 10시. 보통이라면 집에 도착해 있을 시간. 이날은 퇴근하고 차를 몰아 서초동의 한 건물에 도착했다. 이서가 태어난 뒤 나 혼자 외박은 처음이다. 스무 살부터 서울에 살았지만 이 동네에서 밤잠을 청하는 것도 처음이다. 낯선 곳에서 금방 잠들 수 있을지 고민됐지만 어쩔 수 없다. 가족을 위해 오늘 하루만큼은 꼭 자야 한다.
건물 지하 주차장에 차를 댔다. 짐을 챙겨 들고 엘리베이터로 향했다. 늦은 밤의 상가 건물은 인적이 드물다. 엘리베이터를 타고 2층에 도착. 오른쪽으로 몸을 틀어 몇 발자국 걷자 목적지 앞이다. 도착한 곳은 불 꺼진 한 이비인후과. 이제 곧 수면다원검사*를 받는다.
* polysomnography. 수면 중 발생하는 여러 가지 비정상적 상태를 진단하려고 기구를 이용해 수면 중 상태를 기록, 분석하는 검사.
이서를 시작으로 온 가족이 코감기에 걸린 적이 있다. 며칠이 지나도 통 낫질 않아 나도 병원에 들렀다. 약을 처방받고 병원 문을 막 나서는데, 그 옆에 있는 X배너에 눈이 갔다. 배너에는 얼굴과 가슴에 온갖 줄이 연결된 기기를 착용한 채 환하게 웃고 있는 외국인의 사진이 있었다. 수면다원검사를 안내하는 홍보물이었다. 평소 같으면 그냥 지나쳤을지도 모르겠다. 아니 마흔 전이었다면, 그리고 아이가 없었다면 분명 지나쳤을 거다. 그런데 이번엔 조금 달랐다. 홍보물에는 검사를 받으면 양압기*를 처방받을 수 있다고 적혀 있었다.
* (마스크 형태로 주로 코를 통해) 공기를 지속적 압력으로 기도로 불어넣어, 수면 중 좁은 기도를 일시적으로 확장시켜 주는 기기.
우리 가족은 모두 따로 잔다. 육아휴직을 마친 아내가 복직한 뒤부터다. 나보다 2시간쯤 먼저 일어나 출근해야 하는 아내는 알람 때문에 나와 이서가 깨지 않도록 작은 방에서 자기 시작했다. 나는 안방 침대에서 자고 이서는 그 옆에 설치해둔 범퍼 침대에서 잔다. 몇 달이 지나 이서가 걷기 시작하면서 나는 거실에서 자기 시작했다. 이서가 아침마다 일어나 나를 깨우기 시작했기 때문이다. 그저 일찍 일어나서 날 깨운 거라면 굳이 따로 잘 이유가 없지만 한 가지 걱정이 됐다. 혹시 내 코골이 소리 때문에 이서가 일찍 일어난 거면 어쩌지?
병원 로비에 들어섰다. 여전히 어둡다. “계세요?” 아무도 없나… 하던 찰나에 안쪽에서 목소리가 들렸다. “잠시만요.” 알고 보니 의사나 간호사가 아니라, 밤새 검사를 진행해주는 야간 수면 기사가 따로 계셨다. 이날 밤은 검사를 받으러 온 사람이 한 명 더 있었다. “이 분 먼저 해드리고 안내해드릴게요.” 내가 잠자게 될 방에는 갈아입을 옷과 생수 한 병이 침대 위에 놓여 있었다.
수면다원검사는 잠을 자는 동안 진행된다. 수면 중 발생하는 코골이나 수면무호흡 증상 여부를 포함해 다양한 질환의 원인을 측정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머리와 얼굴 그리고 가슴에 여러 개의 센서를 부착한다. 수면 기사가 내 몸 여기저기에 센서를 부착하는 동안 우리는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수면다원검사를 많이 받는 유형으로 두 가지를 꼽았다. 첫째는 결혼한 직후의 신혼부부들. 혼자 살 거나 본인 방에서 따로 자는 경우야 문제가 없지만 결혼하고 나서는 배우자와 함께 잔다. 배우자가 코골이나 수면무호흡을 발견하고 검사를 권유해서 받는 경우가 많다고 했다. 또 다른 유형은 자녀 때문에 검사받는 부모들이다. 단순히 코골이가 시끄러운 걸 떠나, 무호흡증은 건강에도 중대한 영향을 미치기 때문이다. 아이를 낳은 부모들이 흔히 ‘오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으로 검사를 받는다고 했다.
어느 중년 남성의 조금 슬픈 사연도 들을 수 있었다. 해외 유학 중인 자녀의 방학 기간에 맞춰 찾아가려 했더니 “아빠는 코골이가 심하잖아. 내가 사는 곳이 원룸이라 함께 자기 힘들 것 같아. 엄마만 와”라고 했단다. 그 남성은 수면다원검사를 받고 양압기 처방을 받아 꼭 아이를 보러 가겠다고 한다.
나에게는 두 가지 경우가 모두 해당된다. 그중 후자 쪽이 조금 더 크다. 이제 16개월이 지난 이서는 말을 알아듣고 자아도 생기고 있다. 더 많은 교감이 가능해졌다. 자식은 어린 시절에 평생 할 효도를 다 한다는 이야기를 꽤나 들었다. 그 의미를 뼈저리게 이해하고 있기에, 이 시기를 놓치고 싶지 않다. 앞으로 이서가 커나가면서 우리 가족에게 얼마나 더 큰 행복이 찾아올지 떠올려 보면 ‘건강히 오래 살아야 한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며칠 뒤 검사 결과가 나왔다. 꽤 심한 수면무호흡증과 코골이 진단을 받았다. 검사지를 보여주던 의사는 양압기를 사용하면 코골이나 수면무호흡 증세가 많이 완화될 것이라고 했다. 물론 더 좋은 효과를 보려면 체중감량이 필수라는 말도 덧붙였다. 병원을 나섰다. 건강에 대한 걱정과 함께 이서에게 미안한 마음이 동시에 들었다.
이번 주에 다시 한번 수면검사를 하러 간다. 내가 쓸 양압기의 압력을 세팅해야 한다. 검사를 마치고 나면 조금 더 건강하고 조용히 잠들 수 있겠지. 양압기를 착용한 채 잠드는 게 여간 불편한 일이 아니라고는 하지만 어쩌겠는가. 조용하고 건강한 수면을 위해 참아야 한다. 체중 감량도 해야겠지. 더 중요한 건, 양압기 없이도 편안하고 조용하게 잠드는 거니까. 살면서 몇 번의 다이어트를 해봤지만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힘들겠지만 또 어쩌겠나. 아이와 오래 함께 하려면 부모도 건강히, 오래 사는 수밖에 없다.
2022-1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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