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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강혁진 Nov 13. 2023

아빠! 많이 행복해!

도쿄.


나에게는 매우 익숙하면서도 설레는 도시다. 도쿄를 처음 찾은 건 아마도 20대 중반이었던 것 같다. 외교부에서 주관하는 한일 청소년 교류 프로그램에 선발되어 나름 한국을 대표하는 청소년의 자격으로 일본을 찾았다. 그 후로도 도쿄는 여행과 출장 등으로 자주 찾게 되었다. 


결혼해서도 아내와 도쿄를 자주 찾았다. 이서가 태어나기 전까지, 그러니까 다시 말해 코로나가 시작되기 전까지 우리는 한 해에도 3~4번씩은 도쿄를 여행했다. 금요일 저녁 퇴근해 출국했다가 월요일 새벽 일찍 귀국하는 속칭 ‘도깨비 여행'을 가기도 했고 1주일 휴가를 내고 가기도 했다. 


도쿄를 다시 찾기로 한 데에는 몇 가지 이유가 있었다. 전 세계적으로 코로나 19가 엔데믹 상황을 맞이하게 되었고 굳게 닫혀있던 국경이 열렸다. 나와 아내 마음속에 잠들어 있던 여행 욕구가 폭발했다. 게다가 이서는 7월이면 두 돌을 맞는다. 만 24개월이 되기 전의 유아는 항공료가 공짜다. (유류세 등은 내야 하고 자리는 주어지지 않지만, 양육자와 동반 탑승이 가능하다. 사실 이 이유 때문에 많은 부모가 24개월 미만의 어린 자녀를 데리고 해외로 나가기도 한다.)


어디를 가면 좋을까 잠시 고민했지만, 답은 정해져 있었다. 어린아이를 데리고 장거리 비행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작년에는 첫 돌을 맞아 제주도를 다녀왔는데 짧은 비행시간 동안 아이가 계속 보채는 바람에 무척 힘들었던 기억이 있었다. 비행시간이 짧으면서 우리 부부가 가장 가고 싶은 곳은 도쿄뿐이었다.


일찌감치 항공권과 숙소를 예매하고 여행일정이 다가올수록 조금씩 불안함이 밀려왔다. ‘어린아이를 데리고는 보통 휴양지를 가는데 서울과 다를 바 없는 대도시로 여행 가는 게 괜찮을까?’, ‘전철에서 아이가 보채면 일본 사람들이 불편한 눈으로 쳐다보는 건 아닐까?’, ‘이서가 낯선 곳에서 아프기라도 하면 어쩌지?’와 같은 다양한 종류의 고민이 스멀스멀 밀려온 것이다.


그런데 의외의 자리에서 고민을 조금 내려놓을 수 있었다. 여행을 떠나기 몇 주 전 주말, 우연히 썬데이 파더스 클럽 멤버인 현님 가족을 만났다. 그리고 함께 하는 식사 자리에서 여행을 떠난다고 하니 현님의 아내인 수현님이 말했다. “도쿄는 아이들에게 매우 우호적인 도시라고 들었어요. 다들 아이를 환대해주는 분위기래요.”


그 말에 우리는 그 간의 고민을 내려놓을 수 있었다. 사실 수현님 이야기의 진위나 출처 같은 것에 대해서는 묻지도 않았고 궁금해하지도 않았다. 막연히 가지고 있던 우리의 고민을 해결해준 것만으로도 너무 감사한 일이었기에 굳이 사실 여부를 묻지 않았다. 그리고 생각했다. “그래, 너무 걱정하지 말고 가보자.”


아이와는 무려 6일간 도쿄에 머물렀다. 첫날과 마지막 날은 이동에 시간을 다 쓴 나머지 실제로는 꽉 찬 4일간 여행한 셈인데, 결과적으로는 무척이나 만족스럽고 행복한 여행이었다. 여행 첫 이틀간은 비가 와서 이동에 애를 먹기도 했고, 유모차에 아이를 태워 외출하고는 매일 평균 15,000보 이상을 걷기도 했다.


이서도 너무 신났는지 매일 밤 평소보다 늦은 시간 잠들곤 했다


하지만 비가 온 날에는 실내 아쿠아리움을 찾아 물고기 구경을 실컷 하고 돌고래 쇼를 두 번이나 보았다. 한국에서 가져간 휴대형 유모차 덕분에 아이가 낮잠을 자는 동안에는 아내와 쇼핑도 마음껏 하고 여유롭게 커피를 마시기도 했다. 최근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인지 지하철 계단으로 유모차를 들고 내리는 일도 크게 힘들지 않았다.


아이와 함께한 도쿄에서 좋았던 순간이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너무도 많지만 그 중)몇 가지가 있다. 하나는 아이의 기저귀를 처리할 때였다. 일본을 여러 번 다녔지만 그전에는 (당연히) 한 번도 수유실의 존재에 대해 궁금해한 적은 없다. 그런데 이번 여행에서 우리 부부의 신경은 온통 수유실을 찾는 데 쓰였다. 여행을 떠나기 전 일본의 수유실 찾는 앱을 다운받아 갈 정도였다. 하지만 정작 그 앱을 쓴 일은 한 번도 없었다. 우리가 방문한 모든 시설과 지하철역에서는 수유실을 매우 쉽게 찾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정확히는 다목적 화장실이라고 해야 할 것 같다. 아이뿐만 아니라 거동이 불편하거나 장애를 가진 사람들이 쓰는 화장실이 우리가 가는 곳마다 마련되어 있었다. 물론 한국에도 비슷한 시설은 있지만, 한국의 시설과는 매우 차이가 있었다. 아이를 위한 기저귀 갈이대는 물론이고 기저귀를 처리하는 자동 기계가 설치된 곳도 있었다. 무척 깔끔하게 관리된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고. 


또 하나 좋았던 순간은 아이와 함께 잠들고 깨는 순간이었다. 평상시에는 내가 아이를 챙겨 처가댁에 아이를 데려다 준다. 아내가 새벽 일찍 출근하다 보니 아이가 아침에 엄마를 보는 건 주말뿐이다. 저녁에는 아내와 내가 상황에 따라 번갈아 가며 아이를 재운다. 그러다 보니 아이 입장에서는 잠들고 일어날 때 엄마, 아빠가 모두 함께하는 상황이 매우 낯설면서도 행복한 일이 된 것이다. 아이가 행복한지 어떻게 아느냐고 묻는다면.. 실제로 그렇게 말했기 때문이다.


이서가 도통 이 말에서 내려오지 않으려고 해서 귀가 시간이 늦어졌다


여행기간 중 하루는 숙소 근처 공원에서 아이와 두 시간쯤 단둘이 시간을 보냈다. 공을 차고 놀기도 하고 낮에 샀던 비눗방울 장난감을 불어주기도 했다. 마지막에는 놀이터에서 한 시간쯤 함께 놀이기구를 타고 놀았다. 그렇게 놀고 들어와 씻고 자려는 아이에게 물었다. “이서야, 행복해?” 그러자 이서가 대답했다. “응! 많이 행복해!” 행복하다는 말을 가끔 하곤 했지만, 많이 행복하다는 표현을 한 건 처음이었다. 깜짝 놀란 우리 부부의 반응에 더 신이 났는지 아이는 좌우로 몸을 굴리면서 ‘많이 행복해!’라는 말을 연달아 내뱉었다. 


그 순간 느꼈다. ‘아, 내가 이러려고 아이와 여행을 왔나 보다.’ 다다미 바닥에 매트와 요를 깔고 우리 가족 셋이 나란히 누워 깔깔대며 잠이 들고 눈을 뜨는 시간을 만들려고, 비가 쏟아지던 날 아내와 내가 입고 있던 우의로 유모차를 덮고 열심히 횡단보도를 건너 전철역으로 뛰어들어가는 추억을 만들려고, 밤 11시가 다 되어 잠든 아이가 깰까 봐 손전등 하나를 켜고 아내와 맥주 한 잔을 들이키는 시간을 만들려고. 


우리 가족의 첫 해외 여행은 생각보다 무탈했고, 기대보다 즐거웠다. 누군가 ‘아이와 함께 도쿄를 가는 건 어때?’라고 묻는다면 난 여지 없이 ‘너무 좋지! 추천해!’라고 말할 것이다. 아직도 마음 속에 세 가족이 함께 한 여행의 따뜻한 여파가 가시지 않고 있다. 여행이 너무 즐거워서였을까, 여행에서 돌아온 날 밤 우리 부부는 이서와 함께할 내년 여행 항공권을 예매했다.


2023-6-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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