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새해가 시작하며 다짐했던 것은 조금이라도 관심 가는 것은 다 해보자는 것이었다.
그 중 첫번째가 AI 유튜브였다. 지금도 그렇지만 작년초에도 돈 버는 방법을 알려준다는 무료 강의가 많았다. 나 역시 귀가 솔깃해져서 그 당시 광고를 엄청나게 하던 한 AI 유튜브 무료 강의를 들었다. 대부분의 무료 강의가 저녁에 하다보니 한쪽 어깨에는 그 당시 100일쯤 된 둘째를 안고 반대쪽 귀에는 에어팟을 끼고 2~3시간쯤 수강했다. AI를 활용해 유튜브 채널을 운영하기 좋은 주제나 방법 들에 대한 것들이었는데, 듣다보니 나도 금방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뒤쪽에 한시간 정도는 실제로 그 강사에게 수백만원짜리 강의를 듣고 수백에서 수천의 수익을 올리고 있는 수강생들의 간증 시간이었다. 이 사람들이 다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는 않고 어차피 돈 들 것은 AI 구독료 정도이니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도 무료 강의를 들은 다음날부터 바로 시작했던 것 같다. 영상 하나 만드는데 2~3시간쯤 걸렸던 것 같다. 그보다 짧게 할 수도 있었지만 자료도 추가하고 자막 오타도 줄이느라 공을 들였다. 따로 시간을 내기 어려워 새벽 5시에 일어나서 아이들이 깨기 전까지 작업을했다. 일주일에 2~3개쯤 만들었던 것 같다. 그렇게 5~6개쯤 업로드 했을때, 그러니까 2주가 지나 설 연휴가 되었다. 유튜브 스튜디오를 확인하는데 믿기 어려운 숫자들이 나오고 있었다. 영상 하나가 터져서 구독자가 실시간으로 늘고 있었다. 1~2초에 한번 새로고침을 할 때마다 구독자가 100명씩 늘었던 것 같다. 이렇게 유튜버들이 뽕을 맞는구나 싶었다.
월간서른 유튜브를 할 때는 그렇게 어려웠던 수익기준 돌파가 단 2주만에 되버렸다. 일주일에 2~3번 새벽에 일어나 영상을 만드는게 힘들법도 하지만 전혀. 반대로 너무 즐거웠다. 도파민이 터지는게 어떤 건지 알게 됐달까.. 4주가 지나니 구독자 8천명에 누적수익은 800불 정도가 쌓여 있었다. 구독자가 1만명이 넘으면 제휴 쇼핑도 붙일 수 있으니 일주일에 2번, 한번에 3시간, 주에 6시간, 월에 24시간이면 수백만원의 달러 수익이 생기겠구나 하는 계산이 섰다. 따로 들인 비용도 없었다. 원래 있던 컴퓨터로 작업을 했고 유튜브 운영 경험도 있다보니 모든게 수월했다. 내 커리어가 이렇게 바뀌는구나 싶었다. 그 메일을 받기 전까진..
어느날 늦은 밤, 잠자리에 누웠는데 스마트폰에 알림이 떴다. 구글에서 메일 한통이 왔다. 자세히 읽어보니.. 내 채널이 삭제되었다는 것이다. (아니 근데 일단 여기까지 쓰다보니 유튜브 얘기만 하다가 시간 다 갈것 같아서 짧게 써보기로 한다..) 어떤 규정도 위반하지 않았으나 결국 채널은 복구 되지 않았다. 다른 계정을 만들어서 다른 주제로 AI 영상들을 올렸더니 영상 1개가 올라간 채널이 삭제되기도 했다. (영상 제목은 올리브유 잘 먹는 방법이었나 그랬다..) 채널 삭제를 3번쯤 경험한 뒤에는 AI 유튜브는 접기로 했다. 다른 메일 계정으로 또 만들어도 되긴 하지만 언제 또 삭제당할지 모른다는 생각이었다. 수익도 정산받지 못하고 접어여 했지만 아주 재미있는 경험을 했다고 생각하기로 했다. 사실 뭐 언제 다시 시작해도 할 수 있는 거니까 다른 하고 싶은 걸 시도해보기로 했다.
두번째는 경매였다. (갑자기.?) 부동산 유튜브를 즐겨 보는데 경매 유튜브도 종종 알고리즘에 떠서 몇년째 관심 가지며 보고 있었고 흥미도 생겼다. 마침 사무실 근처에 법원이 있기도 해서 재미삼아 시작해보기로 했다. 낮은 금액대의 물건을 조사하고 입찰도 해봤다. 남양주, 의정부, 성남 등으로 다녔는데 3번째 쯤 입찰했을 때 경기도 광주의 한 아파트를 덜컥 낙찰 받았다. 동시에 수십개의 물건을 리서치 하고 입찰하는 과정에 딱 이 물건만 시세 조사를 소홀히 했던 것. (아니 근데 경매도 이야기 하자면 끝이 없는데 아무튼 이것도 짧게 써본다.) 너무 높은 가격에 낙찰을 받아서 고심하던 차에 채무자가 채무를 모두 변제해서 결국 내 낙찰은 취소되었다. 조금 손해보거나 잘해야 똔똔일 것 같은 상황이었는데 신이 도운 것인지 잘 마무리 되었다. 약 두달간의 경매 도전기도 그렇게 정리되고 또 다시 새로운 것을 해보기로..
세번째는 박스피 종목 투자였다. 이때 찾은게 하이닉스였다. 한달 동안 3~4% 정도 수익을 냈었다. 이때만 해도 그냥 소소하게 넣었다 뺐다 하면서 용돈이나 벌어보자는 마음이었는데, 그때는 당연히 몰랐다. 하이닉스가 이렇게 오를줄은. 박스피라며 넣었을 때가 10만원 후반~20만원 초반이었다. 오늘 기준으로 70만원을 넘는걸 보고 있자니 참 재미있는 세상이라는 생각이 든다.
네번째는 새로운 시도라기 볼 수도 있고 정리라고 볼 수도 있는데, 2년동안 운영하던 무인카페를 정리했다. 무인카페는 적자는 아니었지만 인풋 대비 수익이 크지 않았고 관리 리소스의 문제도 있었다. 수익적으로는 업사이드가 없다는 판단이었다. 무인카페의 특성 상 브랜딩을 해서 외부 손님을 끌어올 수 있는 것도 아니었기에 내 인풋을 최소화 해야 하는데 알바가 한번 바뀔때만 해도 면접을 10명씩은 봐야 했고, 알바가 처리할 수 없는 이슈들이 간혹 생기기도 했다. 둘째가 태어나니 관리 이슈에 더 민감해졌다. 더 중요한 것은 내가 앞으로 하고자 하는 일에 무인카페가 시너지가 날 수 있는가라고 생각했을 때 그렇지 않았다. 가게를 내놓은지 6개월정도가 지난 가을께에 그 동네에 사는 사람에게 적당한 권리금을 받고 넘기게 되었다. 지금 생각해도 무인카페를 정리한건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다.
다섯번째는 요리를 배운 일이다. 거창한건 아니고 백화점 문화센터에서 4주간 일식 요리를 배웠다. 40~50분 동안 3가지 요리를 하고 내가 한 음식을 싸오는 방식이었는데 한창 육아휴직중이었던 아내와 잘 먹었던 기억이 있다.
여섯번째는 약 1년에 걸쳐서 비즈니스 코칭을 배웠다. KAC를 취득한 이후 조금 더 코칭을 공부하고 싶어서 한스코칭의 비즈니스 코칭 과정을 신청했다. 한달에 한번 다른 코치님들과 함께 토요일에 모여 그 달의 주제에 맞는 아티클과 영상, 책을 읽고 토론과 샌드박스 코칭을 진행했다. 다양한 관점의 비즈니스 사례를 주제로 토의하고 함께 이야기 나눌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
새로운 일들 외에도 꾸준히 해오던 것들도 있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은 이번주면 170번째 레터를 보낸다. 22년에 시작해서 나 포함 5명의 아빠들이 꾸준히 써오고 있는데 중간중간 광고(데스커, 코코지 감사합니다..)를 받기도 해서 회비가 좀 쌓였다. 그 덕에 다달이 내야 하는 스티비 구독료도 충당하고 몇달에 한번쯤은 5명이 모여 회포를 풀기도 한다. 단톡방을 만들어 운영하고 있는데 380명 정도의 양육자들이 모여있으니 커뮤니티 비슷하게 성장해가고 있다. 그 안에서 강의도 열고 북클럽도 열고 육아일기 모임도 열고 육아 회고 워크샵도 열어봤다. 광주여성가족재단과는 컨텐츠 계약을 통해 우리 레터가 주기적으로 재단 채널에 소개되기도 했다. 아 KBS 라디오 출연도 하고 왔다. 2026년에는 썬데이 파더스 클럽을 조금 더 적극적, 공격적으로 알려보려고 한다. 지금까지는 조금 소극적으로 열심히 레터만 써온 느낌도 있었는데 더 많은 기회와 확장이 되려면 고되더라도 움직이는 수 밖에 없을것 같다.
부모역할훈련(PET)코스를 수료하고 가족코칭전문가 자격증도 취득했다. 썬데이 파더스 클럽을 하고 두 아이를 키우면서 부모로서의 역할에 대한 고민과 더불어 커리어로서의 관심도 넓어가는 과정에서 부모와 가족을 주제로 한 교육과 자격증을 취득한 것이다. 2026년에는 가족코칭전문가 자격을 조금 더 활용하는 기회를 만들어 볼수도 있을 것 같다.
연말에는 정유사에서 레고 시리어스 플레이 워크샵 문의가 와서 여수까지 내려갔다 왔다. 또 다른 곳에서도 워크샵 문의가 와서 견적을 내어줬다.
실패도 있었다. 바로 구직.
회사에 들어가는 것은 프리랜서로 살면서 마음 한구석에 늘 가지고 있는 옵션이었다. 이 옵션에 대한 갈망이 커질 때도 있고 아닐 때도 있는데 그게 꼭 돈만은 아니다. 돈도 중요하지만 돈만 보고 회사를 들어갈 수는 없다. 나는 이제 그런 사람이 되어 버렸다. 돈이 아니라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내가 원하는 환경에서 하는 것이 더 중요한 사람. 회사를 들어가겠다고 마음 먹은 것도, 코칭을 배우면서 얻게된 교훈들을 조직에서 써먹고 싶었다. 또 하나는 나이가 더 들기 전에 조직을 한번 더 경험하고 싶었다. 동료들과 함께 치열하고 가열차게 일하는 경험은 나에겐 좋은 기억으로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결과적으로는 구직에 실패했다. 어떤 회사는 잠시 같이 일하기도 했었고 어떤 회사는 내가 거절하기도 했다. 하지만 대부분의 회사는 서류나 면접에서 좋은 결과를 얻지 못했다. 한 회사 대표와의 커피챗은 내가 구직을 그만둬야겠다고 결심하는데 결정적인 이유를 제공했다. 애초에 1시간 30분 정도 이야기 나누기로 하고 대화를 시작했는데 나와의 대화가 너무 재미있다며 자신의 약속시간이 늦은지도 모르고 2시간이 넘게 이야기를 나누었다. '연락 드리겠다'며 자리를 뜬 대표는 그 이후로 연락을 주지 않았다. 그때 결심했다. 더 이상 나를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내 커리어와 나의 역량을 설득하는데 시간을 쓰지 않기로.
재미있게도 마음속에서 구직이라는 옵션을 제외하니 홀가분해졌다. 위에 써둔 것처럼 하고 싶은 것들, 할 것들이 많은데 조직이라는 것에 미련을 너무 오래 가지고 있었던 것 같았다. 회사를 다니며 이루지 못한 것, 회사를 다시 다닌다면 조금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들이 자꾸만 나를 '구직'이라는 길로 이끌었다. 이미 나 혼자서 많은 걸 해왔고 더 많은 걸 할 수 있는데도 뒤를 돌아보고 있었던 것 같았다. 취업을 마음에서 지우니 하고 싶은 일들이 더 많이 생각났다.
포기한 것들도 있었다. 관계였다.
누군가를 의도적으로 쳐낸 것은 아니지만 관계를 갖지 못하게 되는 상황이 생겼다. 바로 아이. 올 초, 첫째가 스트레스를 많이 받아했다. 걸핏하면 짜증을 냈다. 아이가 왜 그럴까 곰곰히 생각해봤다. 이사를 하면서 어린이집을 옮겨야했고 두달 뒤에는 5살이 되어 유치원으로 옮기게 되었다. 이사를 하게 되니 할아버지, 할머니 관심도 받지 못하게 됐고 바뀐 어린이집에 적응을 할라치니 이제 형님이라고 유치원에 다니게 되었다. 거기에 동생까지 생겨버렸다. 나와 아내는 유치원생이니까 뭔가 더 시켜봐야 하지 않나 하는 마음에 방문 교육도 2개나 신청했다. 설상가상 유치원에서는 낮잠도 자지 않는다. 체력적으로나 정서적으로나 아이가 힘들수 밖에 없었다.
방문교육을 모두 그만두었다. 셔틀을 타고 하원하는 대신 내가 매일 아이를 데릴러 갔다. 유치원 앞 놀이터에서 한시간씩 놀았다. 흙바닥에서 손과 발을 더럽혀가면서도 아이는 즐겁게 놀았다. 한달쯤 지나니 아이의 짜증이 없어지고 유치원에 적응하는 모습도 보였다.
가을에는 아내가 복직을 했다. 아침, 저녁 아이 둘 등하원과 아이들 식사, 집안일은 내 차지가 되었다. 프리랜서이므로 아이들을 케어하고 집안일을 하는 것은 가능했다. 도우미를 쓸까도 고민했다가 당분간 쓰지 않기로 했다. 몇가지 이유가 있지만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고 싶기 때문이다. 아이 둘을 직접 돌보는 것은 무척이나 고되고 힘든 일인데 돌아보면 그만큼 의미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아내가 복직한 초반에는 스스로 루틴이 잡히지 않아서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데 지금은 꽤 안정적으로 루틴이 잡혔다. 아이들과 부대끼는 시간이 늘어나면서 아이들의 정서 발달과 부모-자식 간의 유대감 형성에도 매우 큰 도움이 되고 있다는 생각이다.
육아에 시간을 쓰다보니 주변 사람들과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줄어들었다. 특히 저녁 모임은 아예 불가능에 가깝다. 10월 아내 복직 이후에 저녁 약속은 딱 두번 나갔다. 그마저도 아내가 퇴근하고 바지런히 집에 와주면 바톤터치를 하는 식이다. 그렇게 약속장소에 나가면 저녁 8시반 정도가 되는데 그러다보니 이런 상황을 이해해줄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던가 애초에 만나지 않게 되는 것이다.
일하는 시간은 아이들을 등원시킨 이후, 그리고 등원전까지인데. 오전 10시부터 오후 5시가 내 업무 시간이다. 그런데 그 시간에 운동도 해야 하고 밀린 집안일을 할 때도 있고 피치못할 외부 일정이 생기기도 한다. 그러니 꼭 필요한 만남이 아니라면 자제하려는 편이다.
등하원 말고도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려고 노력중이다. 주말에는 꼭 아이들과 함께 한다. 집 근처 키즈카페에 가기도 하고 첫째가 관심있는 예체능 활동을 가기도 한다. 아직도 아이들이 어리지만 아이들이 언제까지고 어리게 남아있지 않을 것을 안다. 시간이 너무 빨리 흐른다. 아이가 태어난 후 지난 몇년이 어떻게 흘렀는지 모르게 빠르게 지났는데 그 새 첫째가 너무 많이 컸다. 이제 막 6살이 되었지만 그래도 크다. 둘째는 이가 5개나 났고 잘 걷는다. 아이들이 크는 것이 아깝다.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싶은 마음이 크다.
구직을 그만두고 관계에 쏟는 에너지를 줄이고 가족과 함께 하는 시간을 늘리자 변화가 생겼다.
삶의 만족도가 올라갔다. 보통 나의 하루 일과는 아이들 등원 - 운동 - 점심 - 일 - 하원 - 집안일이다. 여기서 디테일로 들어가자면 또 한도 끝도 없지만 단순해진 일과만큼이나 삶의 고민거리가 없어지기도 했다. 외부의 수 많은 인풋을 최소화 하니 마음이 편안해졌다. 나는 그저 내 할일을 내가 중심이 되어 정하면 되니 마음이 좋아진 것 같다.
특히 운동을 자주 간다. 여전히 가기 싫을 때가 많지만 그래도 주에 3~4회는 간다. 오늘 아침에는 새로운 헬스장으로 옮겨서 운동을 다녀왔다. 지하에 있지만 층고가 높아서 답답하지 않다. 공간도 그 전 헬스장보다 넓어서 더 쾌적하다.
아이들과 함께 하는 시간을 즐기고 늘리고 기억하기 위해 뭘 할까 하다가 숏폼 영상을 찍기로 했다. 감사하게도 조회수 100만 넘는 영상이 나오기도 하고 수십만 조회수가 나오는 영상들이 몇개 나왔다. 채널 성격을 바꾸자는 생각에 채널명까지 바꾸었다. 실제 집행까지 이어지지는 않아지만 광고 문의도 오고 공구 문의도 온다. 팔로워도 많이 늘어서 이제 곧 6천명이 된다. 이런 저런 댓글이 달리지만 그 중에서도 아이가 귀엽다는 댓글이 달릴 때마다 기분이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작년 한해 가장 아쉬운 건 이런 다양한 일들 때문에 책을 많이 못 읽었다는 것이다. 많이는 샀다. 2026년에는 많이 읽을 일들만 남았다.
무언가 얻기 위해서는 무언가 포기해야 한다는 말. 나에게 올 한해는 이 만고불변의 진리를 온 몸으로 느낀 해였다. 해보고 싶었던 것들도 다 해봤더니 미련도 남지 않는다. 다시 하려면 어떻게 해야 잘 할 수 있을지도 알 것 같다. 내가 하지 말아야 할 것들이 무엇인지는 명확해졌고 내가 해야 할 일들은 무엇일지 방향이 잡혔다.
2025년아 고맙다. 다 네 덕분이다. 2026년도 잘 해볼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