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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팸 구호 Nov 21. 2022

누군가를 믿는다는 것

잘 모르겠습니다.

9살 때였습니다. 정말 친하다고 생각하던 친구가 자기네 동네에서 놀자며 난생처음 가보는 동네로 데려갔습니다. 그래봤자 바로 옆 동네였지만, 온통 낯선 건물과 거리로 가득한 탓에 조금은 무섭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우리 동네로 돌아가는 길을 알고 있던 그 친구는, 갈 때가 되면 집 근처로 데려다준다고 했습니다. 안심이 되었습니다. 그때는 누군가를 의심한다는 것 자체를 생각조차 해본 적도 없던 시절이라 아무런 걱정도 없었습니다. 그 친구는 해가 저물기 시작하자, 집에 가야 한다며 그냥 가버렸습니다. 저는 길을 잃고 엉엉 울면서 한 시간가량을 헤매다 간신히 집에 도착했습니다. 서러워 죽겠는데 늦게 왔다고 할머니에게 얻어 맞았습니다. 제 인생의 첫 배신이었습니다.


그 이후로도 어째선지 배신을 여러 번 경험하고 말았습니다. 덕분에 선의로 다가오는 마음조차 ‘분명 무슨 일 생기겠지’라며 경계하는 습성이 생겼습니다. 누구에게도 깨끗한 선의 같은 건 없다는 생각을 저변에 깔게 됩니다. 선의나 악의 같은 것 없이 그냥 하는 말조차, 일어나지도 않은 미래를 상상하며 의도를 파악하고 있습니다. 제가 봐도 정말 피곤하게 사는 것 같습니다.


혹시나 어떤 사람을 믿게 되면, 내 마음을 잘 보지도 않는 디즈니플러스에 내는 구독료처럼 퍼주다가 된통 당하는 건 아닐지 벌써부터 걱정이 됩니다. 누군가를 ‘신뢰’한다는 건 어떤 느낌일까요. 누군가를 의심 없이 대할 수 있다는 건 또 뭘까요. 요즘 같은 세상에선 언제나 경계하면서 사는 게 필요한 것 같다가도, 이래서 여러 관계가 팍팍해지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씁쓸하기도 합니다.


곧 12월인데도 반바지가 딱 좋을 만큼 따뜻한 주말에 이불 빨래하러 가다가 갑자기 옛날 생각이 나서, 아무도 안 궁금한 얘기를 하고 싶었습니다. 참, 오늘 빨래방에 맡긴 이불솜은 3-4일 정도 후에나 찾아갈 수 있다고 합니다. 밤에는 추운데 여름 이불 덮고 자게 생겼습니다. 거지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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