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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팸 구호 Jul 31. 2023

#1 어디 가서 말하기엔 짜치지만 어쨌든 짜증

나는 1990년 부산에서 막내둥이로 태어났다. 그래봤자 형제라고는 3살 터울 누나 하나뿐이었지만 아무튼 막내였다. 태어나보니 할머니와 아빠, 엄마, 그리고 누나가 있었다. 할아버지는 어째선지 계시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와 6.25, 유신 등 굵직한 한국 근현대사를 통과하며 살아오신 할머니는 내 아버지가 7살이던 60년대 중반 남편을 잃었다. 5-6남매가 흔하던 시절 희소하게도 외동으로 자란 아빠와 아들이 하나뿐인 6남매에서 넷째로 자란 엄마 밑에서 자랐다.


할머니는 오직 아들 하나만 바라보며 평생을 살아오신 탓인지, 아니면 그 시절 어른들은 다 그랬던 건지 아무튼 남아선호사상의 끝판왕이었다. 나보다 수년을 먼저 살았지만 그래봤자 7살이던 누나는 그때부터 할머니에게 혹독한 '여자'로서의 교육을 받았다. 어째선지 할머니는 청소를 할 때면 꼭 누나 방을 보며 지저분하다고 욕설을 일삼았고, 7살짜리 누나는 각종 집안 일과 나를 챙기는 일을 도맡았다. 내가 부엌에 싱크대에 물만 틀어도 화들짝 놀라며 방에서 놀고 있던 누나를 꾸짖는 광경은 30년가량 지난 지금도 생생하다. 한때 한국을 달궜던 <82년생 김지영>이라는 책 속에 담긴 내용은 거의 대부분 우리 집 이야기와 흡사했다.


할머니는 누나에게만 엄했던 것이 아니라 엄마에게도 마찬가지였다. 피아노 학원이 끝나고 곧장 집으로 오지 않았다가 할머니에게 호되게 맞았던 그날, 엄마는 아들 교육을 잘못시켰다는 이유로 할머니 앞에 무릎을 꿇었다. 나는 8살밖에 안 된 상꼬마였지만, 어쩌면 그것이 지금 내가 규정하는 '짜증'이라는 감정을 처음 느꼈던 날인 것 같다. 그날로 할머니에게 맞서기를 시작하며 '불합리함'에 격한 짜증을 느끼기 시작했다.


아빠는 내가 한참 어릴 때부터 철저히 예의범절을 가르쳤다. 밥을 먹을 땐 먹는 소리를 가급적 내지 않고 조용히 먹는 것이 예의 바른 것이고, 네가 불편한 것은 남도 불편한 것이며, 아무도 신경 쓰지 않고 네 맘대로 살고 싶다면 무인도에 가는 수밖에 없으니 항상 타인을 생각해야 한다는 것 등이었다. 그에 벗어나는 행동을 하면 말로 야단을 치는 게 아니라, 어김없이 회초리를 들었다. 역시 체벌이 최고라는 말을 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만큼 엄하게 가르쳤다는 뜻이다.


별 궁금하지도 않은 내 성장 스토리를 쓴 것은 앞으로 쓰고자 하는 시리즈를 '왜' 쓰는지를 이해시키기 위해서다. 그리고 이런 과정 없이 아무렇게나 써서 소개하다 보면 '진짜 피곤하게 사네'라는 등의 태클을 받을까 봐 무서워서 쓰는 이유도 있다. 나는 이런 사람이니까 이런 생각이 들었다,라는 논리 구조로 '아, 그럴 수도 있겠구나'라는 식으로 이해해 준다면 큰 불편함 없이 그럴 수도 있겠다는 생각으로 가볍게 읽을 수 있을 거다.


아무튼 나는 세상, 아니 일상에서 일어나는 별의별 불합리함과 내가 배운 예의범절에서 벗어나는 행동을 목격하면 짜증이 끓어오르는 사람이 되고 말았다. 짜증 난다고 언제나 불합리함에 맞서거나 예의 없는 사람을 응징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 어디다 풀 곳이 필요했다. 친구들에게 짜증을 털어놔도 '예민충'이라는 말을 들을 수도 있고, 누군가는 소위 '감정 쓰레기'라고 불리는 말을 듣는 것부터 스트레스를 받을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래서 제목을 '어디 가서 말하기엔 짜치지만 어쨌든 짜증'이라고 붙여 보았다. 우리나라의 교육 수준은 분명 점점 올라가고 있는 것 같은데, 어째선지 짜증스러운 일은 점점 늘어만 가는 것 같은 느낌을 받았다. 이러다간 결국 인류애를 모두 상실한 채 분노만 가득 찬 정신병자가 될 것 같았고, 어쩌면 나와 비슷한 '짜증'을 느끼는 사람들과 공감대를 쌓다 보면 인류애의 종말은 피할 수 있지 않을까 싶었다. 실제로 며칠 전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짜증에 지인이 '너무 재밌다. 2탄 기대한다'라는 댓글을 달기도 했다. 분명 나의 짜증에 공감할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라 생각한다.


앞으로 힘이 닿는 대로(귀찮지 않을 때) 어디 가서 말하기엔 짜치지만 어쨌든 짜증 나는 일상 속 이야기들을 써 나갈 예정이다. 부디 내가 쓴 글이 한국 사회를 점령해서 짜증스러운 일 자체가 일어나지 않았으면 좋겠다. 만병의 근원은 스트레스라는데, 나는 오래 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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