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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팸 구호 Aug 02. 2023

#3 9호선 이야기 2

어디 가서 말하기엔 짜치지만 어쨌든 짜증 나는 일이 가장 많은 곳은 역시 9호선이었다. 9호선 이야기 1편에서 다뤘던 '달리는 사람들' 이야기는 사실 내가 9호선 출퇴근을 하며 받은 '첫인상' 정도에 불과했다. 매번 달려도 느긋한 사람한테 피해만 안 주면 뭐, 내 입장에서는 그들이 뛰어가든 걸어가든 굴러가든 아무 상관도, 관심도 없다. 오히려 굴러가면 함박미소를 짓고 박수갈채를 쏟아내며 즐거울 것 같긴 하다.


9호선의 진정한 짜증은 리얼 '9호선'을 위한 플랫폼에 들어서야 시작된다. 출퇴근 시간 9호선은 어느 역이든 할 것 없이 파이브가이즈 오픈 날 매장 앞 대기 줄 급으로 꽉꽉 들어 차있다(물론 급행열차가 정차하는 역에만). 파이브가이즈를 품은 강남대로는 넓기라도 하지, 지하철 플랫폼은 그만한 인파를 수용하기엔 턱없이 좁다(물론 9호선 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다). 그나마 9호선 주요 역에는 자원봉사자인지 아무튼 복잡한 인파를 정리해 주시는 분이 곳곳에 배치되어 있긴 하다. 어느 정도는 그 고마운 분들의 통제로 정리가 되는 것 같지만, 10명도 안 되는 인원으로 수백 명을 통제하려다 보면, 어쩔 수 없이 빈틈이 발생할 수밖에 없다.


나를 짜증 나게 하는 일은 그 빈틈에서 발생한다. 좁은 플랫폼에 사람이 워낙 많다 보니 상식적인 사람들이 자발적으로 줄을 서도, 열차가 도착하는 그 순간을 파고드는 게 흡사 현관문을 열기 만을 기다렸다가 돌파하는 모기 같은 사람을 종종 발견할 수 있다. 그 모기 같은 사람들 입장에선 줄 선 순서대로 질서 정연하게 열차에 승차하는 짓은 비효율의 끝이며 어리석기 짝이 없는 행동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든다.


만약 열차 안에 사람이 대단히 많은 정도가 아니라면, 그런 돌파를 허용해도 수백 번을 양보해서 괜찮을 수 있다. 그 사람하나 먼저 탄다고 내 미래가 뒤바뀌거나 시공간 왜곡이 일어나지는 않으니까.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출퇴근 시간'이라는 거다. 9호선을 타 본 사람은 알겠지만 내 앞에 한 명이 있고 없는 것이 내가 탈 수 있느냐의 문제로 직결된다. 나는 제 시간이 도착해서 알맞게 줄을 선 다음 딱 내 차례까지 탈 수 있는 절묘한 타이밍일 때, 그 모기 같은 사람 하나 때문에 못 타는 상황이 발생할 수도 있지 않나. 비록 나는 그 열차를 반드시 타야 할 필요가 없더라도 내 앞에 서있던 누군가는 그 모기 때문에 피해를 입을 수도 있는 상황이다. 아무렇지도 않게 줄 옆에 서 있다가 슬금슬금 사이에 껴서 열차에 타려고 하는 사람을 볼 때마다 목덜미를 잡아 질질 끌어내어서 "줄 서서 타라고 XX"라 하고 싶은 충동이 치밀어 오른다.


필시 저렇게 습관적으로 새치기를 일삼는 사람들은 번호표를 뽑고 기다려야 하는 은행 같은 곳에서도 '제가 너무 급해서 그렇다'라며 뻔뻔하게 밀고 들어갈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한다. 참, 높은 확률로 저 행동이 '뻔뻔한' 일인지도 알지 못할 거다.


'선'이라는 게 없어 보이는 커뮤니티 디시인사이드에는 '모기 갤러리'라는 게시판이 있다. 그곳에는 모기를 갤러리의 주인이라는 '갤주'로 지칭하여, 갤주를 각종 방법으로 이승에서 탈출시키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모기(같은 놈들)는 그들의 사정이라는 것도 있겠지만, 사람의 입장에서 보면 하등 쓸모없는 존재처럼 보인다. 모기(같은 놈들)는 역시 날개부터 시작해 팔다리를 하나하나 떼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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