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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스팸 구호 Sep 17. 2022

상대방의 입장에서

그들을 이해하게 된 순간

오래전 힐링캠프라는 프로그램에 타블로가 나왔던 적이 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꺼내놓았지요. 그는 아버지가 아이패드 사용법을 계속 이해하지 못해서 짜증을 내고 말았는데, 그것이 그렇게 후회된다고 말했습니다. 타블로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남겨진 '태블릿 PC 완전 정복하기'라는 책을 보고 그만 눈물이 터지고 말았습니다. 그 모습을 보며 느낀 게 많았습니다.


우리처럼 전자기기에 익숙한 세대에게 아이패드 같은 태블릿 PC를 쥐어주면 인터넷이나 유튜브에서 사용법을 익힌다거나, 잠깐 써보면 매우 쉽게 사용법을 익힙니다.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나 거기서 거기니까요. 하지만 우리 부모님 세대, 그러니까 4-50대가 되어서야 첨단 기기를 만난 어른들에게 요즘 시대의 전자기기는 정말 어려울 겁니다. 한국어로 된 설명서를 봐도 도대체가 이해하기 힘든 것이, 흡사 태어나서 처음으로 부동산 계약서를 마주한 자취 입문자의 심정과 비슷할 거라 생각합니다. 그래도 옆에서 누가 매우 다정하고 알아듣기 쉽게 알려준다면 그렇게 간단할 수가 없겠지요.


마찬가지로 부모님과 같은 시대를 통과해야지만 알 수 있는 것들을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만약 우리가 부모님과 같은 시대를 살아왔다면 우리 역시 전자기기를 정말 어려워했을 겁니다.


타블로가 힐링캠프에서 얘기했던 저 이야기 덕분에, 부모님께 전자기기 작동법을 잘 모르겠다는 연락을 받으면 최대한 알아듣기 쉽고 천천히 알려드리게 됐습니다. 간혹 잘 이해를 못 하시더라도, 그들에겐 충분히 어려울 수 있다는 점을 생각하면서 말이지요. 부모님 세대에겐 익숙한 한자어가 우리에겐 어려운 것과 같습니다. 가끔 답답하더라도, 이런 생각을 떠올리면 모든 것이 이해가 됩니다. 전혀 힘들지 않습니다.


그 이후부터 저는 "왜 이것도 몰라?"라는 말을 잘하지 않게 되었습니다. 누군가에겐 쉽게 접했던 것이 누군가에겐 난생처음 경험한 것일 수도 있으니까요. 모르는데 어떻게 아는 것처럼 행동을 할 수 있을까요. 불가능합니다. 앞에서 처음 자취를 시작하며 마주하는 부동산 계약서 이야기를 했습니다. 부동산 계약서라면 일가견이 있는 부모님도 처음 부동산 계약서를 봤을 때는 우리와 같았을 겁니다. 충분히 경험하셨기 때문에 크게 어렵지 않고, 우리에게 알려줄 수도 있는 것이지요.


비단 부모님께만 적용되는 이야기는 아닙니다. 누구와 이야기를 하든, 상대방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공감은 안 되더라도 어째서 그렇게 이야기하고 행동하는지 '이해'는 됩니다. 이를 테면 이런 겁니다. 100만 원 밖에 없는 친구가 90만 원짜리 신발을 샀습니다. '나 같으면 저 상황에 90만 원짜리를 사진 않았을 텐데'라는 건 공감의 영역입니다. 그런데 '그만큼 갖고 싶었기 때문에 샀겠구나'는 이해의 영역이지요. 공감과 이해를 분리해서 생각하면 세상에 이해되지 않는 것이 거의 없습니다.


저는 이렇게 해 보았더니 웬만한 건 이해가 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덕분에 쿨 몽둥이로 두들겨 맞아야겠다는 말을 많이 듣습니다마는, 괜찮습니다. 혹 이 글을 읽고 계신 여러분에게 그동안 부모님을 포함한 타인의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경험이 있다면, 철저히 그들의 입장에서 다시 한번 생각해보는 건 어떨까요. 한 번 해보세요. 생각보다 할 만합니다. 누군가 진짜 쿨 몽둥이로 팰 수 있으니 조심하시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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