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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페퍼맘 May 18. 2024

강제 마침표가 나를 살리는 쉼표가 될수도,

마흔 아홉 작가 지망생의 쉼표 이야기

니가 그러니까 올해 몇 살이야?

스물아홉.

우린 언제까지 회사를 다닐까? 학교 다닐때 꿈은 있었어?

회사는 오래 못 다니겠지. 응, 내 꿈, 작가. 책 쓰고 싶어.

책? 무슨 책? 에이, 멀리서 봐도 딱 직장인처럼 생겼구만.


20년 전 스물아홉이었을 때 점심식사 후 사무실에 들어오며 직장 동료와 나누었던 대화.


네가 그러니까 올해 몇 살이야?

서른아홉.

나는 내 나이 마흔이면 은퇴해서 설렁설렁 살 줄 알았다. 너는 꿈이 뭐야? 진짜로 하고 싶은 거 있어?

응. 책 내는 거. 베스트셀러 작가가 되고 싶어.

책? 무슨 책? 


10년 전 서른아홉 즈음 사귀기 시작한 친구와 나누었던 대화. 고맙게도 그 친구는 베스트셀러가 될 책이 아니라, 단 한 권이 팔려도 끝내주는 책을 내라며 격려해주었다.


스물아홉이 20년 전이었다는 것이, 서른아홉이 10년 전이었다는 것이, 그 선명한 기억들이 그렇게나 오래전이었다는 것이 믿어지지 않는 만큼이나, 지난 20년동안 그렇게나 선명하게 작가가 되고 싶다 했던 내 꿈에 한 발짝도 다가가지 못한 상태임이 놀랍다. 누가 물어볼 때 가만히나 있지. 그리 당당히 작가가 되겠다는 말은 왜 하고 다녔는지. 내 꿈은 월급쟁이였던 것 마냥 나는 성실히 총 24년을 회사만 다녔다. 내 꿈은 작가이니 커리어따위 딱히 신경을 쓰지도 않은 채 나는 주야장천 회사만 다녔다.


그리고 어느 날 불쑥, 이 표현이 이상하게 들릴지라도, 진짜로 불쑥, 나의 회사 생활은 강제로 종료되었다. 신이 났다. 이제 난 무엇이든 될 수 있으니 신이 났다. 


월급이 끊겼는데 신이 날 수 있는 배경에는 물론 경제적 여유가 있었다. 경제적 자유라 할 수 없지만 경제적 여유. 


이상하게 백수가 되고 나니 돈 욕심이 한꺼번에 사그러들었다. 예를 들면 아스트에 드 빌라트 찻잔 세트 같은 것들에 관심이 갑자기 뚝 끊어졌다. 해외 여행도, 유명 세프 맛집탐방도, 눈 여겨보던 SUV도, 그러니까 이 정도 월급을 받는 사람에게 어울린다 싶던 모든 사치품에 대한 관심이 한방에 뚝 끊겼다. 끊긴 정도가 아니라 그 사치품들이 하잘것 없어 보였다. 


그 대신 관심이 생긴 것들이 있다.


좋아하는 소설가가 생겼다. 이슬아와 정세랑의 책들을 퇴사 이후 처음 읽기 시작했다.


커피 대신 차를 우려 마시기 시작했다. 4월부터 녹찻잎을 딴다는 데 녹차에 대해 배워보고 싶어졌음은 물론, 보성과 하동에 내려가 보고 싶어졌다. 계절이 바뀔때마다 그 계절들은 각자 고유의 소리와 향을 낸다는 것을 알아차리기 시작했다. 모닝페이지를 쓰려고 새벽에 더 일찍 일어나기 시작했다. 새벽의 고요 속, 독서의 몰입감을 경험했다. 현미쌀을 저녁에 불려서 그다음 날 점심으로 압력밥솥에 지어먹기 시작했다. 감사일기를 쓰면서, 오늘도 앞이 보여서 요가도 하고 강아지 산책도 하고, 그러할 수 있음이 감사한 줄 알게 되었다. 이른 봄밤에 창문을 꼭 닫으며 바람을 막아주는 따뜻한 집이 있음에 만족했다. 당근 거래로 포장 그대로의 컵들을 팔기 시작했다. 겨우 14살 내 차를 아무에게나 중고로 팔아버릴 수 없다 생각, 계속 몰기로 정했다.


그리고, 지난 20년간 내 꿈이라며 당당하게 말해왔던 글을 쓰는 작가 되기에 관심이 생겼다. 


누가 네 글을 읽어? 반응은 늘 그러했으나, 줄리아 캐머런이 <아티스트웨이, 마음의 소리를 듣는 시간>에서 말하는 내 안의 '내면의 비평가' 에게 이름을 지어주고 (뭐라고 하면 좋을까?), 그 내면의 비평가가 하는 말을 무시하기로 했다.


퇴사 이전에는 관심 밖이었던 (하잘것없다고 생각했던) 세상의 모든 자잘하고 시시하고 소박하며 소소하고 동시에 아름답고 애틋한 것들을 기록하는 것으로 글을 써봐야지, 한다. 


우전과 세작의 차이와 현미밥을 짓는 방법에 관하여, 야채를 먹으면 일어나는 몸의 변화에 관하여, 책 한 권을 읽어내면 그 책 한 권이 소개하는 또 한 권을 읽을 수밖에 없는 신비한 독서의 세계에 관하여, 모닝페이지와 식물 그림과 명상과 요가의 공통점에 관하여, 몇 번 남았는지 알 수 없지만 그리 많지 않을 것인 어버이날에 관한, 이런 시시한 것들의 기록을 써봐야지, 한다.


어쩌면 그 때 그 강제 마침표가 나를 살리는 쉼표가 될 수도 있겠다 싶다. 그리고 그 쉼표가 마흔 아홉이 된 나에게 이제는 말만 하지 말고 꿈을 좀 이루어보라 한다. 진짜 될까? 아, 이 내면의 비평가의 이름을 뭐라고 짓나. 


나, 이렇게 좀 쉬다가, 작가님 소리 한 번 들어보고서는, 그 때 내가 스스로 기분 좋은 마침표를 '탁' 하고 찍고 싶다. 그러니 내 안의 비평가야 (현섭이? 지웅이? 영철이? 정은이? 하동이? 흠..), 방해를 좀 가끔씩만 해주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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