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디디 Jul 31. 2019

새로운 여성 판타지, 검블유를 떠나보내며

간만에 리뷰하고 싶은 드라마

드라마를 끼고 살지만 엔딩까지는 잘 챙겨보지 않는 내가 오랜만에 마지막 화까지 다 보기로 마음먹은, 얼마 전 종방한 드라마 '검블유(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이하 ‘검블유’)'. 모든 회차가 빈틈없이 재밌기만 했느냐면, 그건 아니다. 작품의 주 스토리라인에서 다소 벗어나 도구적으로 존재하는 러브라인이 지루하다는 평가도 쉬이 찾아볼 수 있었다. 그러나 '검블유'는 마지막까지 시청자들이 이 드라마를 놓지 못하게 만들었다. 일종의 의리와도 같은 찐득한 무언가가 자꾸만 시청자를 붙잡았다. 올여름에, 이 드라마를, 꼭 끝까지 봐줘야만 할 것 같은 은근한 책임감. 마지막 화를 보고 그 감정이 온전히 가시기 전에 '검블유'를 떠나보내는 짧은 글을 써보려 한다.


tvN 드라마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 포스터


캐릭터의 힘


그 '의리'와 '책임감'은 '검블유'가 다루고 있는 캐릭터의 힘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캐릭터'는 '검블유'가 사랑받은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드라마가 다루는 세 명의 여성 주연 캐릭터는 기존의 드라마들이 설정했던 여성 캐릭터들 간의 관계성과는 사뭇 다른 양상을 보인다. 세 명은 지독하게 얽힌다. 남자를 사이에 낀 애정 삼각관계가 아니다. 성공과 경쟁, 그리고 어긋나는 가치를 둘러싸고 오롯이 세 사람이 촘촘하게 엮인다. 놀랍게도 이때의 사랑은 그들 서로 간의 애증이다. 서로를 향한 사랑과 증오의 텐션이 얼마나 짜릿했냐면 '검블유'를 안 보는 사람도 차현과 송가경이 찐 사랑이라는 걸 알 정도. 그 관계성의 거미줄이 너무 촘촘하고 박진감 넘치는 나머지 중간중간 등장하는 남성 캐릭터와의 멜로 요소들이 '잠깐 쉬어가는 타임'처럼 느껴질 정도였다. 여성 캐릭터가 전면에 나와 성공을 위해 경쟁하고, 각자의 목표를 지향하다 부딪치고, 갈등하고 화해하는 드라마라니? 드라마에서 여자들끼리 경쟁한다, 하면 보통 남자 주인공을 두고 머리채나 잡는 것이 대부분이었지 않나. 그러니 ‘검블유'에게 특별히 각별한 마음이 드는 건, 당연한 거 아닐까.

 

'검블유'가 특별했던 또 다른 이유는 여기 나오는 세 사람이 모두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포털 회사의 고위직은 여성 비율이 높은 편이라고 한다. 국내 최고의 포털 사이트인 네이버의 대표 또한 여성이다. 그 사실이 ‘검블유’의 설정에 개연성을 부여하긴 하나, ‘검블유’의 세 사람은 왜인지 현실에 있을 법한 느낌이 들지 않는다. 왜일까? ‘여성 중심 서사’라고 한다면, 일반적으로 ‘여성 혐오’라든가, ‘유리 천장’이라든가 하는 것들을 다뤄야 할 것만 같은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실제로 세상은 그런 것들로 가득하기 때문이다. 어떤 대기업의 간부 중 한 명이 여성이라면, ‘저 자리까지 가기 위해서 얼마나 힘들었을까?’, ‘정말 독한 사람일 것 같다.’라는 생각이 드는 게 현실이다. 그러나 ‘검블유’의 세 사람은 사회에서 여성이기 때문에 받는 차별과는 거리가 멀어 보인다. 애초에 그런 차별이라곤 없는 세상에서 태어난 것만 같다. 드라마가 그런 부분을 아예 다루지 않는 건 아니지만, 적어도 그것을 주된 소재로 삼지 않는 것은 확실하다. 검블유는 여성이 받는 사회적 차별이나, 그것이 여성의 출세에 미치는 영향에 관해 얘기하기보단, 좀 더 인간 본성의 뿌리에 가까운 메시지를 분명히 던진다. ‘검블유’는 다만, '여자도 이렇게 살 수 있다'라고 말할 뿐이다.



tvN <검색어를 입력하세요 WWW>의 배타미(임수정)


"나의 욕망엔 계기가 없어"


극 중 배타미의 대사 중에 이런 말이 있다. '나의 욕망엔 계기가 없다.' 드라마에 등장하는 세 사람의 욕망에는 모두 계기가 없다. 그냥 그런 사람이라서. 차현은 날 때부터 불의를 보곤 못 참는 불같은 성격이다. 아니라고 생각하면 절대 아닌 사람이다. 10년을 넘게 몸담은 회사를 업계 1위로 만들려고 고군분투하면서도, 본인의 신념에 어긋나는 마케팅에는 아무리 효과가 있다 한들 끝까지 동조하지 않는다. 차현이 그렇게 된 것은 어떠한 계기 때문이 아니다. 원래 그런 사람이고, 쭉 그래왔던 사람. 아픈 가정사 때문에, 사랑의 상실 때문에, 등과 같은 부연 설명이 붙지 않는다


배타미도 마찬가지다. 배타미는 원래부터가 합리적이고 이성적인 사람이다. 행하려는 일이 도덕적으로 잘못된 일인 걸 알면서도 합리적 판단에 의해 실행에 옮기기도 한다. 그리고 그 선택들은 대부분 회사에 큰 이익을 가져왔다. 배타미가 왜 그렇게 업계 1위에 매달리게 되었냐고? 거기엔 계기가 없다. 배타미는 그냥 위로 올라가고 싶은 거다. 그냥 성공하고 싶고, 그냥 이기고 싶고. 준거집단의 성공과 권력의 획득을 원하는 건 인간의 당연한 욕구다. 그러나 대중매체 발달의 오랜 역사 동안 그런 당연한 욕구가 여성에게 투영된 경우는 잘 없었다. 이 당연한 욕구는 대개 남성 주연의 픽션에서 메인 소재가 된다. 수많은 남성 주연의 드라마에서 '권력욕'이라는 단어는 모든 사건 진행에 개연성을 부여한다. ‘검블유’는 그냥 숱하게 많았던 그런 드라마를 여성 주연으로 바꿨을 뿐이다. 어렵지 않은 일이다. 그러나 아주 오랫동안, 아무도 그 일을 시도하지 않았다.




새로운 판타지


‘검블유’는 드라마를 본 여성 시청자들에게 새로운 판타지를 선물했다. 적어도 나에게 ‘검블유’는 그 정도의 의미를 가진다. 새로운 로망과 판타지. 사회적 편견과 차별을 이기는 것을 넘어, 오로지 목표를 향해 질주해도 괜찮다는 아주 세련된 방식의 격려. ‘나의 30대 후반도, 저렇게 성공을 위해 누군가와 치열하게 다투고 있을까?’ 하는 궁금증. ‘검블유’를 재미있게 본 사람들이라면 공감하리라 생각한다. ‘검블유’에서 느껴졌던 책임감은 바로 이 지점에서 출발한다.



‘검블유’의 마지막 화가 어떨지 궁금하다. 나는 매일 두 편에서 세 편의 드라마를 볼 정도로 드라마를 좋아한다. 그러나 슬프게도 우리 집에는 TV가 없다. 그래서 늘 드라마를 다시 보기로 볼 수밖에 없다. ‘검블유’ 마지막 화 또한 본방 사수를 하지 못했다(그동안 바빴던 탓도 있다). 그래서 이 글을 완성한 다음, 마지막 화를 보려 한다. 제발 나의 판타지가 순탄히 끝나길... 2019년 여름 나에게 새로운 로망과 사랑을 맛보게 해준 검블유, 안녕!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