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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영 Jul 04. 2024

<작별인사> 김영하

2023-11-10

<작별인사> 김영하

"그러니까 네 말은 '나'라고 하는 것이 없을 수도 있다는 거지? 뇌마저도 누군가의 조종을 받는다거나 하면 더이상 예전의 '나'가 아니니까. 내가 맞게 이해한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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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계들의 세상이 왔다. 인간들은 멸종 위기에 처했다. 종으로써의 인류 뿐만 아니라 '인간'이라는 개념 마저도 위태롭다. 책의 주인공인 철이는 하나의 의식과 두개의 몸을 살며 혼란스러운 세상과 관념 사이를 여행한다. 따뜻한 로봇이야기를 아직 로봇 아닌 사람들과 읽고 나눴다.

인간을 인간으로 만드는 것은 무엇인가? 무수한 정의들이 있지만 인간의 필요조건을 말하자면 하나는 신체이고 다른 하나는 언어다 (종으로서의 사람과 사회적 존재로서의 인간을 구분하자면 그렇다).

데카르트는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코기토 명제를 통해 사유를 인간 존재의 출발 지점에 놓았다. 모든 것을 의심할 수 있다고 해도, 그가 의심하는데 사용하는 의식만큼은 분명히 존재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기서 그가 하고있는 생각은 바로 언어를 통해서만 가능하다.

우리의 모든 의식적 사고는 언어를 매개로 이뤄진다. 우리가 어떤 사물/사태를 인식할 때에는 언제나 인식과 동시에 그에 대한 해석이 발생하기 때문이다. 가령, 사과를 바라보거나 맛을 볼 때 사과에 대해 가지는 어떤 '이미지' (표상)를 기준으로 사과를 해석한다. '이건 덜 익는 사과야', '이건 사과가 아닌 배야'.

주목할 것은 '~(사과)이다' 라는 인식은 언제나 객관적 사실이 아닌, 내가 가지고 있는 이미지에 근거한 해석이라는 점이다. 이 때 내가 가지고 있는 소위 '선입견'의 경향을 '지향성'이라 말한다. 지향성이라는 말이 내포하듯이 우리의 언어적 사고는 언제나 어떤 방향성을 가지는데, 어떤 이는 이 방향성이 바로 이야기를 통해 형성된다고 말한다.

언어의 다른 한 측면은 인간의 주체에 관계한 것이다. 인간은 그가 가진 '욕구'를 '요구'를 통해 밖으로 드러내거나 감출 수 밖에 없는데 사회가 수용 가능한 언어로써 표현되지 않은 욕구는 억압될 수 밖에 없다. 이 과정에서 나와 사회 사이에 최초의 경계가 발생하고, 동시에 욕망의 '주체'가 탄생한다. 여기서 언어는 질서와 상징으로서, 인간 주체를 형성한다. 언어를 배우기 전 유아 때의 기억을 할 수 없다는 것과, 실어증 환자는 자신을 읽어내지 못한다는 사실이 이를 설명한다.

그런데 이 지점에서 인간의 다른 필요조건인 신체의 중요성이 나타난다. 인간 주체는 억압된 욕구를 욕망으로 간직하는데 욕망은 다시 어떤 '이미지'에 고정된다. 이 때 '이미지'는 그가 보고, 듣고, 만지고, 경험한 감각을 통해서만 형성되는 것이다. 철이가 휴먼매터스랩에서, 또 선이가 유기견 보호소에서 몸으로 경험하고, 상실하고, 바랐던 세계를 생각해 보면 이해가 가는 설명이다.

바로 여기서 AI와 인간의 질적 차이가 발생한다. 욕구를 언어화 되지 않는 실재에 관한 것, 어떤 표상을 가지지 않는 정동이라 할 때, 이는 그 개념상 코드화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이다. 욕구 없는 요구가 가능하겠지만 이러한 구도에서는 욕망도, 주체도 형성되지 않는다. 즉, 신체 없는 의식이란 주인 없는 의식에 다름아닌 것이다.

물론 인간 신체라는 게 그 자체로는 특별한 의미를 부여할 수 없다. 오늘 내 신체를 이루는 유기물 전부는 몇달 전까지만 해도 돼지의 몸으로, 산천의 나물로, 바다를 유영하던 참치로, 암탉이 품은 달걀로 존재하던 것들이다. 뇌는 대체되지 않지만 뇌세포내 물질과, 뇌의 가소성(연결)은 그렇지 않다. 유전자는 어떠한가? 수정체에서 첫 번째 분열이 발생한 이래로 우리몸의 모든 세포의 유전체는 동일하지 않다.

이러한 점으로 볼 때 로봇의 몸을 가진 고도의 AI를 인간 혹은 인간과 동일한 수준의 윤리적/법적 주체/대상으로 볼 것인가 하는 것은 훨씬 어려운 문제가 된다. 차별해야 한다면 그 근거는 어디서 오는가? 신학에 기대지 않고는 불가능 할 것으로 보인다. 다만, 윤리와 별개로 법은 항상 사회의 정서를 포함한다는 점에서 '인간'의 틀이란 시대와 문화에 의존적일 수 밖에 없을테다.

SF형식을 빌어 김영하 작가가 작정하고 그의 인간학적 사유를 방출한 듯한 책이다. 그 덕에 다른 많은 주제들을 생략했음에도 인스타 제한을 겨우 맞췄다. 책의 마무리를 읽으며 기계들의 세상에 살아도 평화와 생기를 전하는 사람으로 남을 수 있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작별인사 #김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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