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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규영 Jul 04. 2024

<히치하이킹 게임> 밀란 쿤데라

2024-03-28

<히치하이킹 게임> 밀란 쿤데라

“하지만 게임에서는 벗어날 방도가 없었다. 팀은 경기 종료 전까지는 경기장을 떠날 수 없으며, 체스 말들은 체스 판의 네모 칸에서 나갈 수 없고, 경기장의 경계선은 넘어설 수 없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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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래 기다려온 휴가를 가는 길에 젊은 커플은 상황극을 시작한다. 상황극에서 그들은 자신과 반대의 모습을 연기한다. 게임의 자유를 빌어 현실에서는 하지못한 말과 행동을 과감하게 하는 것이다. 여자는 상황극 속에서 처음 만난 남자를 유혹하고, 남자 역시 그녀를 가볍게 보고 추근댄다. 그러자 여자는 상황극 속의 여인 곧 그 자신에게 질투심을 느낀다. 남자는 그녀에게 화가나고 그만큼 상황극 속에서 상황극 속의 그녀를 거칠게 대한다.

처음엔 단지 쿨하지 못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 않아 이어가던 게임에서 그들은 이제 겉잡을 수 없는 길로 빠진다. 그리고 그 길은 그들이 처음 가던 것과는전혀 다른 방향으로 펼쳐진다. 게임과 현실의 경계가 옅어지고, 현실과 게임 속 그들은 서로 뒤엉킨 채 분열되고 만다.

현실이란 무엇인가? 우리는 지금 현실 세계를 살아가고 있다고 여기지만 우리의 세계는 사실 게임의 구조와 전혀 다를 바 없다. 알 수 없는 일들이 벌어지고, 기괴성이든 신비이든 의식 너머의 무엇을 마주할 때면 이 세계 바깥에 또 다른 세계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장 보드리야르는 우리가 ‘시뮬라시옹’이라 부르는 가상의 세계 속에 살아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를 따르자면 이 세계란 실재의 세계가 아닌 ‘사회’라는 의식으로 구조화된 언어의 세계이자, 무의식으로 체화된 욕망의 세계인 것이다.

분명 우리는 언어 바깥의 세계, 욕망 이전의 세계로부터 왔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매트릭스’ 에서 나가는 길을 잃었다. 드문 드문 이해하기 어려운 신비로, 혹은 히스테리적 증상으로 ‘바깥’의 낌새를 느낄 수 있을 뿐이다.

눈 앞에 선택지가 주어진다. 게임을 현실로 받아 들이거나 (파란약), ‘네오’와 같이 길을 찾아 나서거나 (빨간약). 그러나 파란약을 선택한다고 해서 과거로  돌아가게 되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빨간약을 택한다고 해서 자유로운 삶이 보장되는 것도 아니다. 그렇다면 삶이란 도대체 무엇이고 자유란 또 무엇인가?

쾌락과 공포가 뒤섞인 채 휴가 첫 날이 끝나가고, 건녀편에서 숨죽인 흐느낌 소리가 들린다. 새로운 날일지 이어지는 게임일지 모르는 휴가가 그들에게 아직 십삼일 남았다. 상황극, 함부로 하는 것 아니다.

#히치하이킹게임 #우스운사랑들 #밀란쿤데라 #매트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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