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는 미친 사람들을 진지하게 생각하고 나 자신이 미친 사람이 되지 않기 위해서 거짓말을 해야만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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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헤미아 지방에서 교사로 일을 시작한 에드바르트는 평소 무신론자였지만 그가 진지하게 좋아하던 알리체의 마음을 사기 위해 성당에 나가기 시작하고, 과장된 행동과 신앙심을 보인다. 그런 그의 모습을 우연히 학교 교장이 보게 되고, 신앙인이 교직에 있을 수는 없다는 사회분위기에 의해 동료 교사들에게 재판을 당한다.
에드바르트는 자신의 솔직한 변호가 의미 없을 것이라 판단해 차라리 (비록 가짜이지만) 부끄럽게도 신앙이 있음을 고백하고 도움을 청한다. 그의 판단은 효과적이었고 교장은 그를 적극적으로 돕게 된다.
한편, 그의 대단한 순교적 신앙고백은 알리체에 귀에 들어왔고 이제 그녀는 전혀 다른 눈으로 그를 보기 시작한다. 이윽고 둘은 잠자리를 같이하게 되는데 에드바르트는 그녀의 변한 모습에 실망한다. 그녀는 이미 (어쩌면 처음부터) 그가 사랑했던 순수한 여인이 아닌 것이다.
에드바르트는 그의 거짓된 행동들로 인해 그가 원하는 바들을 모두 갖게 되었지만 역설적이게도 그럼으로써 세상에 대한 회의를 갖게 된다. 이를 테면 본질이란 없는 것이고 모두들 연극을 할 뿐이라거나, 선과 악, 옳고 그름이라는 건 실체 없는 허상에 불과하다고 믿게 된다. 이제 그의 세상과 그의 행동에는 아무런 가치나 이유가 존재하지 않는다.
에드바르트는 여자들을 손쉽게 유혹해 낼 수 있게 되었다. 손 쉬운 거짓말로 가스라이팅을 일삼게 된 것이다. 하지만 그는 이따금씩 깊은 공허를 해결하지 못해 성당을 찾게 된다. 비록 여전히 신앙은 없지만 천장을 바라보며 신에 대한 열망을 느낀다. 세계란 비본질이고 공에 불과하다면 오로지 신만이 그에 대한 안티 테제일 수 있기 때문에.
일찍이 중국 송나라 때 선사 청원유신이 남긴 말 중에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산은 산이 아니고, 물은 물이 아니다. 산은 단지 산이고, 물은 단지 물이다." 라는 화두가 있다.
이 세상에 본질이란 게 없다면 산을 산이라 물을 물이라 부를 까닭이 없는 것이다. 하지만 그럼에도 인간은 그렇게 부르는 세상 속에서 살아가야만 한다. 이제 그는 '단지' 산은 산이라 부를 뿐이고, 물은 물이라 부를 따름이다. 그게 옳다고, 그게 선하다고 말하고 행동할 뿐이다. 아직 미치지 않은 에드하르트가 거짓을 삶의 양식으로 삼게 된 까닭이 바로 이와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