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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by 규영

2025-05-18

<미키7> 에드워드 애슈턴

《당신은 죽는다. 당신은 죽고 내일 아침부터 다른 사람이 당신의 삶을 대신 산다. 그는 여러분의 모든 기억을 가지고 있다. 모든 희망, 꿈, 두려움, 소망을 기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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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전체가 우주의 디아스포라가 된 먼 우주. 행성 미드가르드 출신 미키 반스는 순간의 잘못된 판단으로 그의 삶을 저당잡힌다. 유일한 탈출구는 새로운 개척지를 두고 탐사를 나서는 우주선. 행성 최고의 인재들이 탑승하는 가운데 그는 누구도 나서지 않은 한 자리에 지원해 탑승에 성공한다. 바로 영원히 죽어야만 하는 엑스펜더블. 엑스펜더블은 다른 자원을 투입 하기엔 기회비용이 큰 임무에 투입 되어 기꺼이 목숨을 바치는 역할을 맡는다.

엑스펜더블은 죽음과 동시에 마지막으로 스캔한 신체와, 업로드한 기억을 가지고 바이오프린터에서 재생된다. 책의 제목이 되는 미키7은 미키 반스의 여섯 번의 죽음 이후에 재생된 존재이다. 그는 직전 죽음의 트라우마로 3주간 업로드를 하지 않은채 작전에 투입 되었다가 실종된다. 외계인에 의해 희생 되었다는 잘못된 보고로, 우주선에서 8번째 미키를 생산하던 날 7이 돌아왔다. 중복은 절대적으로 금기되어 있으므로 미키7과 8은 남몰래 8의 하루를 절반씩 살아가게 된다.

인간 복제를 다루는 SF는 무수히 많지만, <미키7>에서 날카롭게 질문하고 있는 철학적 주제들이 있다. 먼저, 복제된 미키들은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을까? 미키6와 미키7을 보자면 같은 기억과 정체성, 유전적으로 표현적으로 거의 동일한 신체를 공유한다는 점에서 같은 존재로 볼 수도 있겠다. 6는 죽었지만 죽음 자체는 애초에 경험할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새롭게 재생되어 나온 7은 ‘죽었다 살아났다’고 할 수 있지 않을까?

인간은 영아 시기에 거울의 비친 자신의 이미지를 자기와 동일시하는 과정을 거치며 자아를 확립한다. '거울단계’는 이후로도 계속되는데 즉자로서의 인간은 스스로의 존재를 결코 경험할 수 없기 때문이다. 거울의 비친 나, 사진에 찍힌 나, 개념화된 나, 상상된 나 등 누군가의 시선으로 보여진 대자로서의 나를 자기 존재와 동일시하지만, 그것은 간주일 뿐 진실이 아니다. 텍스트로 진리를 담을 수 없듯, 이미지로 실재를 재현할 수 없다.

애초에 자기 정체성이라는 게 ‘자기 동일성’이라는 환상과 믿음에 기반한 것이라면, 미키6과 7을 다른 존재로 볼 이유가 없다. 종교로부터 ‘영혼’이라는 개념을 빌린다면 모를까. 그렇다면 미키7과 8도 같은 존재라 할 수 있을까? 두 가지 측면에서 문제가 발생한다. 첫째 연속성의 단절이다. 미키 7과 미키8 사이에는 7이 업로드 하지 않은 약 3주 간의 삶의 격차가 존재한다. 그 3주 간의 경험이 트라우마로 가득찬 만큼 둘 사이에는 지향과 태도에 차이가 존재한다. 인간은 시간 위에 차이 생성하는 벡터 존재이지 원자가 아니다.

둘째, 타자성의 문제이다. 이전까지의 미키와 달리 둘은 이미 서로의 존재를 타자로서 경험한다. 자아와 달리 타자는 이미지가 아닌 실체로서, 눈 앞의 ‘얼’굴로서 경험할 수 있다. 그는 어느 한 시점의 파편이 아닌 입체로서 존재하고, 사태가 아닌 사건으로, 재현이 아닌 현존재로 존재한다. 미키7과 8이 방에서 서로를 마주하는 그 순간 둘 사이에는 ‘중복’이라기보다 ‘분열’이 발생한다.

한편, 책에서 미키 본인이 회상하는 여섯 번의 죽음이 하나같이 끔찍한 반면, 우주선의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선 대수롭지 않은 일들로 비쳐지는데 이 같은 대비는 작가가 의도를 가지고 공들여 만든 설정으로 보인다. 이름뒤에 숫자가 늘어날수록 미키의 죽음은 다른 이들에게 대수롭지 않은 것으로 여겨지는 듯하다. 만약 그의 죽음이 무수히 반복된다면 언젠가 니플하임 행성에서 그의 얼굴과 이름은 단지 ‘어쩔 수 없는 희생’의 표상이 되고 말 것이다.

OECD 38개 국가 중 인구 1인당 산재로 인한 사망자 수 최하위권인 오늘날 한국에서는 공교롭게도 하루 평균 ‘7’명의 노동자가 목숨을 잃는다. 저마다의 이름과 얼굴을 가진 존재자들이다. 아무리 노동권과 중대재해 처벌법을 외쳐도 ‘기업하기 좋은 나라’라는 지상 대명령 아래 만국의 '엑스펜더블'은 떨어져 죽고, 불에 타 죽고, 갈려 죽는다. 다 그들의 책임이란다. 우주선의 사령관 마샬과 같이 못 돼먹은 권력자들이 지구에 넘처난다. 우리는 무엇을 위해, 어디를 향해 이토록 가볍게 항해하고 있는 것일까? 죽음과 존재의 무게는 반드시 비례하는 법이다.

#미키7 #에드워드애슈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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