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06-06
<남아 있는 나날> 가즈오 이시구로
“말해 보세요, 스티븐스 씨. 당신은 왜, 왜, 왜 항상 그렇게 ‘시치미를 떼고’ 살아야 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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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의 유서 깊은 저택 달링턴 홀에서 34년간 집사로 일해온 스티븐스는 그의 새 주인의 호의적 제안을 따라 난생 처음으로 여행길에 오른다. 오래 전 함께 일했던 총무 캔턴 양을 만나러 가는 길에 그는 과거를 회상하며, 지나간 시절의 감정과 회환을 되새긴다.
스티븐스는 직업 정신의 화신이다. 그의 삶을 관통하는 한 단어가 있다면 바로 ‘품위’인데, 그에게 품위란 ‘끊임없이 의미 있게 추구할 수 있는 어떤 것’이자, ‘전문가적 실존’을 포기하지 않을 수 있는 능력 같은 것이다. 독신으로 평생을 산 그의 삶에는 집사라는 직업을 제외하면 아무것도 남지 않는다. 그에게 사적인 실존이란 존재하지 않으며, 그의 정체성은 집사로서의 정체성에 다름 아니다.
스티븐스는 인생의 중요한 기로가 될 뻔한 순간들에서 한 번도 사사로운 감정에 얽매인 선택을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돌아가실 때도, 수년간 충실히 일해온 두 유대인 하녀를 해고할 때도, 켄턴 양의 하나뿐인 가족 이모가 세상을 떠났을 때도, 그리고 그녀를 떠나 보낼 때도. 공적인 삶, 그건 그에게 품위이자 이상이었다.
그런데 그의 이런 강박적 면모는 새로운 주인인 패러데이 씨와의 관계에서 어려움을 겪는 이유와 무관하지 않은 듯 하다. 스티븐스는 패러데이의 시선을 경유하여 스스로에게 결여된 유머와 농담의 자리를 발견한다.
스티븐스는 그가 헌신했던 달링턴 홀에 남다른 자부심를 가지고 있었는데, 그곳에서 비밀 회담이 열리고, 고위급 인사들을 대접하던 시절엔 유럽의 중심에서 역사에 기여하고 있다는 자의식을 느끼기도 했다. 그게 나치에 부역하는 일이라는 건 그 당시엔 전혀 중요하지 않았다.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역사의 심판을 받은 달링턴이 괴로운 말년을 뒤로하고 세상을 뜨고난 뒤에야 스티븐스는 말한다. 집사로서의 본분에 충실했을 뿐이었다고.
한 번은 패러데이 어르신이 빌려준 고급 포드를 타고 여행하던 중에 시골 사람들에게 귀족 신사로 오해받는 해프닝이 일어나는데, 그는 선뜻 부인하지 않고 고위급 인사들과 직접 외교를 해온 양 짐짓 달링턴 행새를 한다. 불편한 상황이 펼쳐지자 자괴감에 혼자 변명하기도 하지만, 스스로를 자신이 섬겼던 주인과 동일시하는 장면은 분명 많은 것을 시사한다.
프랑스의 정치철학자 알튀세르는 주체란 자율적으로 사고하고 판단하는 개인이 아니라, 이데올로기에 의해 ‘호명’되어 구성된 존재라고 보았다. 그를 따르자면 품격있는 집사가 되고자 하는 스티븐스의 강박증적인 집착은 영국 제국주의 시대의 귀족주의적 이데올로기가 내면화된 결과에 다름 아닌 것이다. 알튀세르의 핵심은 이 때의 ‘호명’이 언제나 국가 장치에 의해 작동하며, 시민을 예속하는 장치로서 기능한다는 것이다.
푸코는 현대에 이르러 지배계급의 권력이 주인과 노예 사이에서 작동하던 처벌적 방식에서 벗어나, 알 수 없는 어떤 ‘시선’으로부터 몸과 일상을 훈육하고 감시하는 미시 권력으로 작동한다고 보았다. 스티븐스의 품위 있지만 건방지지 않은 걸음걸이, 말투, 생각이란 바로 ‘규율된 신체’에 배여있는 것이다. 이 코르셋 권력은 감정마저도 통제한다. 집사란 스스로가 스스로를 억압하는 내면화된 권력의 상징인 것이다.
오늘날 시끌벅적 했던 대선을 지나며 한국 사회의 수많은 ‘스티븐스’ 들을 보게 된다. 정파적 사고방식, 의리, 충성, 조금의 비판도 허용하지 않는 절대적 변호 속에서 이데올로기에 의해 호명된 수많은 주체들을 본다. 물론, 호명에서 자유로운 메타적 주체란 불가능한 것이지만, 진심으로 상대를 조롱하고 비웃고 혐오하는 이들을 보면서, 진실 혹은 진리란 바로 권력의 산물이라는 푸코의 비판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종류를 망라하고, 자의식이 강한 사람에게서 나는 도리어 사적 실존의 부재를 본다.
여행하는 동안 스티븐스는 틈틈이 스스로가 위대한 집사에 가까이 갔음을 역설하지만, 그럴수록 그의 말에는 앞 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드러난다. 저무는 석양을 바라보는 그의 목소리에는 어쩐지 회한이 묻어 나오는 듯 하다. 이제 남아 있는, 혹은 남겨진 그의 날들에는 ‘품위’ 혹은 시치미라는 옷을 그만 벋을 수 있길 바래본다. 억압된 것들이 새어 나올 때 비로소 스티븐스는 농담과 유머에 성공할 수 있으리라.
#남아있는나날 #가즈오이시구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