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적 함구증'의 시각으로 본 세상..
나는 사람이 두려운 아이였다.
사람들은 내가 부끄러움이 많은 아이라고들 얘기했지만, 생각해보면 나는 부끄러움 보다는 사람을 만나 얘기하는 것의 불편과 불안, 두려움이 더 컸던 것 같다. 그때, 나는 아이였고, 내가 느끼는 감정이 뭔지 잘 몰랐다.
그래서 나도 내가 그냥 남들 앞에서 부끄러워하는 건가보다 했었다.
지금 다 자라서 생각하니, 나는 모르는 사람과의 대화가 두려운 것이 었는데 나를 부끄러운 아이라고 듣곤 했었다. 어른들이 혹은 다른 사람들이, 나의 감정을 제대로 알지 못하면서 단정지어 버리는 것들이 그래서 무서운 거라는 생각이 든다.
특히나, 자기 감정이 정확히 어떤 건지 알지 못하는 어린 시절 아이들에게는 더더욱이나..
나는 내가 왜 부끄러운 걸까.. 혹은 나는 왜 말하는게 이리도 불편할까 예전에도 그리고 지금도 많은 시간 생각한다.
지금의 내 감정을 최소한 제대로 정확히 알고 싶기 때문이다. 타인들에 의해서 정의내려지는 내 감정이 지금 내 감정이라고 생각없이 받아 들이고 싶지는 않다.
내 감정에 대한 결론은 그때그때 다르지만, 최소한 타인의 판단은 대부분의 경우에 맞는 말은 아니었다. 나는 타인과의 대화가 불편한 사람이다. 그걸 먼저 인정해야 했다. 타인이 내 감정을 판단해주는 걸 생각없이 그대로 받아들일 필요는 없다.
나는 어려서 부터, 소심하고 예민하기도 한 내 성격을 바꾸고 싶어했던 것 같은데, 그 이유는 '내가 불편해서' 라기 보다는 '타인들이 나를 이상하고 모자라게 보아서' 였던 것 같다. 그래서 내 지금의 느낌과 감정이 무엇인지 왜 불편한지 스스로 묻는 일은 아주 중요하다. 최소한 다른 사람들의 평가에 내가 휘둘리지 않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여전히 우리 사회에서는 조용하고 소극적인 사람들을 과소평가하는 면이 아주 크지만, 나는 요즘은 그런 평가에 크게 개의치 않는 편이다. 이제 40대가 되어서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평가에 덜 흔들리는 만큼의 시간과 연륜이 있기 때문일수도 있지만, 또한 스스로 사회의 평가 기준에 따라 바꾸려고 노력했던 그 불편하고 불쾌한 시간을 이미 다 거쳤기 때문일 수도 있다.
그러니 어떤 아이가 '선택적 함구증'을 알고 있는 아이라고 하더라고, 타인의 감정에 의해 불편한 사람들과 대화를 강요하거나 강요 당할 이유는 없다. 그런 아이를 두셨거나, 그런 아이들을 돕고 싶으시다면 그 아이들의 감정을 먼저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고 '나 자신'을 위해서 대화를 풀어나가라는 얘기를 들려주면 오히려 크게 도움이 될 수 있다.
나도 그랬다. 나는 남들과 대화하지 않는 것이 더 편했고, 굳이 불편한데 대화를 하고 싶지 않았다.
다른 사람들과 불안한 마음이 싫었을 뿐이다. 그러니 타인과 있으면 왜 불안한지를 잘 분석한 후 이유를 알면 좋다. 그리고 조금 불편하면 굳이 대화하지 않고, 타인과 조용히 있는 것이 잘못된 태도는 아니라고 나는 이제 생각을 한다. 그러니 누군가 나같은 사람이 있다면, 스스로에게 그건 잘못이 아니라는 걸 스스로에게 계속 얘기해줄 수 있으면 좋겠다.
물론, 타인이 내게 말을 걸어오는데 무시하라는 말은 아니다 최대한 타인에 대한 예의를 지키되, 모르는 사람 혹은 불편한 사람과 대화하지 않는 침묵에 나 혼자의 잘못인양 생각할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그렇게 그 불편한 사람들도 시간이 흘러 조금 편해지는 순간이 오거나 혹은 그 사람을 보지 않으면 된다.
나를 혹독히 몰아 세울 필요는 없다는 말이다. 내가 느끼는 감정은 내 잘못이 아니다.
그리고 나의 경우 어른이 되어서 최근까지도 사람들을 많이 상대하는 일을 한 적이 없었다. 지금껏 일하면서는 그냥 나의 팀과 소통하는 정도면 되었는데, 나는 최근 직장을 바꾸며 수많은 사람을 만나는 일을 하게 되었다.
생각해보면 처음에는 일 때문에 스트레스를 받기도 했지만, 오히려 생각해보면 낯선 사람을 많이 만나는 상황에 너무 노출되어서 힘들었던 것도 같다. 그때는 그냥 일에 적응하느라 힘든 거라고만 생각하고 버텼다.
지금 4년이 지나 조금 익숙해져서 생각해보니, 사람을 불편해 하는 내가 친절하게 사람을 대해야 하는 것들이 훨씬 힘들었던 것 같은데 의외로 이것도 익숙해지는 걸 알았다.
그렇게 어쩔 수 없이 사람들에 노출되면서 느낀 점은, 어쩌면 '선택적 함구증'이나 '대인 기피'같은 증상들도 훈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처음에는 힘들고 낯설며 이러다 죽을 것도 같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 많이 노출되다 보면 사람들도 모두가 불편하거나 두려운 존재가 아니라는 걸 느끼는 순간들이 있고, 어떨 때는 나를 두려워하고 불편해 하는 나와 같은 사람을 만날 때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만나면서, 처음으로 나도 생각 했었다. '아~ 누군가에겐 나도 타인이며, 불편하고 불안한 존재일수도 있겠구나'. 그런 사람들을 보면 나는 편하고 최대한 다정히 대해 주었다.
그리고 그렇게 몇 년이 지난 최근에야 나는 사람들은 그래서 나를 좋아하고 따뜻하게 느낀다는 것을 알았다. 왜냐하면, 두려워하는 마음을 알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이 내 눈에 들어올 수 있기 때문이었을거다. 내 앞에 사람이 두려워하는 것처럼 보이면 나는 최대한 내가 그랬던 것처럼 편하게 대해 주고 그들에게 시간과 공간을 내어준다.
아마, 사회성이 좋거나, 사람이 두려워 본 적이 없는 사람들은 헤아릴 수 없는 마음이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래서 내가 타인을 두려워하고 사람들과 말하기 두려워하는 성격은, 아이러니 하게도 오히려 타인을 배려하고 타인을 이해하는 능력이 되어 주었다.
물론, 아직 나도 사람들이 두렵고, 모르는 타인과 대화하는 것이 힘들다. 사실 아직도 많이 힘들고 최대한 그런 자리를 피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제는 최소한 '선택적 함구증'에 갇혀 있지는 않다고 생각한다. 이건 어른이 되어서도 결코 사라지는 건 아닌 것 같다. 그냥 늘 안고 생활하며 어떤 때는 극복하고 어떤 때는 극복하지 못한 체 나는 살고 있다.
다만, 나 자신에 대한 자신감과 믿음이 커지면 조금은 극복하는데 힘이 되는 것 같다.
'선택적 함구증'을 가진 아이가 있다면, 너에게 최대한 편한 환경을 찾으라고 말해주고 싶다.
혼자서 책을 읽어도 좋고, 혼자서 놀이를 해도 좋다. 그리고 타인과 대화하는게 불안한 자신을 부족하다고 생각은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우리들은 부족한 것이 아니라 불편하고 불안해서 침묵하는 것이 조금 더 편할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기를 내면 우리는 얘기할 수도 있다. 그것이 다른 사람들보다 다른 것들보다 훨씬 많이 힘이들 뿐이다.
사실 내 의견으로는 '내가 한 사람이 타인에게 친절하게 얘기하고, 남을 배려하는 걸' 알아주는 사회 분위기도 중요한 것 같다. 착한 사람이 조용히 그리고 배려하는 건 당연한 것이 아닌 고맙고 감사해야 하는 일이라는 걸 알아주는 사회가 되었으면 한다.
착한 사람은 늘 상처받는 사회가 아닌 나쁜 사람들이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타인을 상처주고, 타인을 사소하게 만드는 것이 잘못 되었다고, 우리 어른들이 얘기해 주어야 한다. 어른으로써의 우리의 책임도 크다고 나는 생각한다. 외향적인 아이들의 말은 잘 들리지만, 내향적인 아이들의 말은 들리지 않는다. 그러면 찾아가 들어줘야 한다.
어떻게 보면 '선택적 함구증'은 사회성의 문제이기도 하다고 생각한다. 사회성이 낮은 아이들이 이 사회에서 덜 소외될 수 있으면, 그 아이들은 자신의 침묵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지는 않을 것이다.
그 아이들에겐 익숙해지는데 그리고 용기내는데 조금 더 시간이 필요할 뿐이다.
그러니, 사람을 만나 불안해하는 어른 혹은 아이가 있다면, 그들의 침묵을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시길 나는 바래본다. 그리고 침묵이 편한 당사자들에게는 당신들의 '침묵'도 괜찮다고. 필요한 만큼 시간을 가진 후에 편한 마음이 생긴다면 타인과 대화해도 된다고 얘기해주고 싶다.
그러나, 스스로에게는 조금 더 강해지기를 바래본다. 필요하다면 타인과 인사하는 훈련부터 시작하길 바래본다. 좋아하는 취미가 있다면, 취미를 가진 한명과 먼저 얘기해보시길 권해본다. 처음부터 그들과 얘기할 필요는 없다. 그냥 어떤 취미를 좋아하시느냐 한마디부터 시작해야 한다. 그들도 타인을 두려워하는 사람일지 모른다. 그러니 걱정부터 하지는 마시고 '안녕하세요'로 시작해 보시길 바래본다.
이건 타인과의 대화가 아니라 타인과의 대화를 실험하는 거라고 생각하는 것도 나에게는 도움이 되었다. 그냥 '안녕'하고 말해보기 실험. 타인의 반응에 집중하지 말고, 나의 감정에 집중하면 된다.
생각보다 어렵지 않다는 걸 느끼면, 다음 번에도 할수 있는 용기가 생길 것이다.
처음부터 큰 그룹에 들어가 말을 걸고 하는 건, 오히려 마음에 부담이 될 수 있고 성공하기도 쉽지 않다. 그러고 나면 다시 도전하기는 힘들어진다. 그러니 옆에 조금 어색한 한명에서 시작하기를 추천드린다.
사람을 대하는 것은 모두에게 쉽지 않다. 사람을 만나 처음부터 편하게 잘지내는 사람을 보면서 주눅 들지 말기를, 사실 그런 사람은 많지 않다. 그리고 우리는 섬세하고 생각이 많은 사람들이라 그 사람들처럼 될수가 없다. 그걸 받아들이는 것도 도움이 되실 것이니 자신을 섬세한 사람으로 인정하시면 나를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실 겁니다. 우리 모두는 다 다르니까요. 나는 섬세하고 예민한 내가 둔감한 사람보다는 좋으니까 그냥 이렇게 살기로 했습니다.
여러분들도 그렇게 살아도 괜찮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