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둥이들의 정서 발달에 대해서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으려노력 중입니다

by 청아

이란성 남매 쌍둥이를 키우고 있습니다. 이란성쌍둥이는 한꺼번에 배란된 2개 이상의 난자가 각각 다른 정자와 수정되어 자란 것으로 유전자도 다르고 성도 다를 수 있습니다. 저는 시험관 시술을 통해서 이란성쌍둥이를 낳았습니다. 일란성쌍둥이는 하나의 수정란이 2 세포가 되어서 개체로 자란 경우라서 성별과 유전 형질이 같습니다. 그래서 비슷한 성향을 가진 아이들이 태어날 확률이 높습니다. 그렇다고 해도 각기 다른 사람이죠.


이란성쌍둥이는 유전자도 다르기 때문에 서로 다른 성향과 기질을 가지고 태어날 확률이 더 높습니다. 저희 아이들이 그런데요.

첫째는 내향적이고, 혼자 있는 것을 선호합니다. 차분하기도 하지만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바로 표현하지 않기 때문에 더 자세히 들여다봐야 합니다.

둘째는 외향적이고, 예민하고 혼자 있는 것보다는 누군가 옆에 있어야 안정감을 느낍니다. 급한 성격이고, 말보다는 행동이 먼저 나가는 타입입니다.


이란성쌍둥이에 남, 여(남매) 성별도 다르고 타고난 기질이 너무 다르다 못해 극과 극 타입의 아이들을 한꺼번에 기르고 있습니다. 돌 전에는 신체적인 활동이 완벽하지 않기에 기질이 달라도 부모의 손길이 절실한 시기이기에 힘이 들었습니다. 두 돌이 지나고 아이들의 자조 행동이 늘어나면서 훈육의 초점을 어디에 두어야 할지 고민입니다.


첫째는 신생아 때부터 잘 울지 않는 아이였고, 둘째는 늦은 새벽에도 깨어 1시간은 족히 울다 잠들던 아이였습니다. 1호는 말 그대로 순한 아이이고, 2호는 예민하고 까다로운 아이인 것이죠. 언제나 고민입니다. 엄마도 사람인지라 많이 울고 보채는 아이에게 눈길을 더 주게 됩니다. 마음은 그렇지 않으나 눈앞에 당장 무언가를 해주어야 하는 아이 곁에 더 있게 되는 거죠. 두 아이 모두에게 같은 마음이지만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죠.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똑같이 키우고 싶으나 현실은 그렇지 못한 것이 함정이라는 겁니다. 그래서인지 29개월 된 첫째는 벌써 자신의 감정을 혼자 감내하며 참는 아이가 되었고, 둘째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사람 혼을 빼놓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대신 첫째는 사람과의 상호작용이 잘 되는 아이이고, 둘째는 상호 작용이 덜 되는 아이가 되었습니다. 부모는 중립적인 입장과 행동으로 아이를 대해야 합니다. 아이들의 발달검사 결과가 나왔습니다. 이것에 대해서는 다음 글에 자세하게 적어볼게요. 아직 결과서를 받아보지 못했어요. 상담사 선생님과는 구두로 결과를 들었습니다. 좋은 결과는 아니라는 것만 일단 얘기할게요.


아이는 생후 12개월까지는 '영아기', 12개월부터 36개월 혹은 48개월까지는 '걸음마기'라고 합니다. 12개월을 기준으로 첫마디(엄마, 아빠)를 말하기 시작하고, 걷기를 시작합니다. 심리적으로는 12개월까지는 신뢰와 희망을 배운다고 합니다. 12개월~36개월 이후에는 자율과 의지를 배운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점차적으로 부모로부터 분리가 되는 것이죠.


영아기 아이가 배우고 느껴야 하는 것 중 가장 중요한 것은 부모에 대한 신뢰감과 안정감입니다. 이것은 아이가 세상을 바라보는 틀에 커다란 영향을 미칩니다. '믿을 수 있다'를 다르게 표현하면 '예측 가능하다'입니다. 한결같은 부모의 모습을 예측할 수 있다면 아이는 부모를 믿습니다. 아이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비싼 분유나 좋은 옷이 아닌 바로 '믿을 수 있는 부모'입니다.

걸음마기 아이는 '좋아'보다 '싫어'를 먼저 배웁니다. 남의 간섭을 받지 않고 자기 스스로 하겠다는 강한 '의지'를 먼저 배웁니다. 이 시기 아이의 마음을 한 문장으로 표현하면 "싫어, 내가 할 거야"입니다.
고집이 세지고 자기주장이 강해지는 걸음마기 아이를 둔 부모는 간혹 아이를 오해합니다. 그렇기에 아이의 자율보다는 부모의 규율을 강조하기도 합니다. 통제와 훈육이 필요할 때도 있지만 모든 행동에 적용해서는 안된다는 겁니다.
걸음마기 아이는 혼자서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고 싶어 합니다. 아직 힘이 부족하지만, 아직 조준이 잘 안 되지만 그래도 블록을 끼워 넣으려 합니다. 반복된 실패에도 굴하지 않고 마침내 성공했을 때, 아이는 성취감을 느낍니다. 힘이 세지고 조절 능력이 좋아지는 건 덤이지요.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혼자 해보는 그 과정이, 그래서 아이에게 소중합니다. 따라서 이 시기에 부모는 아이에게 안정된 환경을 제공해주는 것으로 충분합니다. 아이가 조금은 서툴러도 지켜봐 주세요.

<우리 아이 왜 그럴까, 최치현 지음 본문 내용 중>


아이들을 온전히 지켜보아야 한다고 생각해서 나름 그렇게 했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성향이 너무 다른 아이들을 한꺼번에 키우는 과정이 힘들기도 하고, 아이들의 행동들에 초연하게 대처하고 싶었지만 결국 어느 한쪽으로 화살이 날아가는 것은 어쩔 수 없었습니다. 어느 날 첫째는 둘째에게 늘 양보하거나 장난감을 빼앗기는 입장이 되었고, 둘째는 반대로 양보라는 것은 어디 개가 짖는 것으로 여기며, 장난감 등을 뺏는 입장이 되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보통 우는 아이에게 달려가게 되고, 안아주게 됩니다. 그래서 첫째는 달래줘야 하고, 둘째는 혼이 나는 상황들이 만들어지는 것이죠. 둘째가 훨씬 힘이 세기 때문에 주의를 계속 주고 있습니다. 집에서 하는 행동들이 어린이집에서 나타날 수도 있지 않을까 생각해서입니다. 첫째는 늘 둘째에게 밀려나 있는 경우들이 많았기에 안쓰러운 마음에 했던 행동이었는데, 생각해 보니 둘째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부분도 있더라고요. 아직 아이들이 도덕적이고, 배려를 아는 것이 아닌데 자꾸만 어른의 시선으로만 생각을 했던 것이죠.

첫째는 아직 말로 표현을 못하고 혼자 있는 것을 더 좋아하는 것 같아서 엄마의 개입을 줄였습니다.

둘째는 행동을 먼저 하는 아이라서 혹여 다른 아이들에게 피해를 줄까 봐 늘 '안돼'라는 말로 통제를 했습니다.

최근에 여기저기 아이들의 발달 검사를 통해서 여러 상담사와 재활사들을 만나면서 그동안 중립적이지 못하고 이리저리 한쪽으로 치우치는 육아를 해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한 아이를 제대로 기른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것 같습니다. 온전히 한 아이에게만 집중을 해줘야 하는데 쌍둥이를 키우는 부모들은 그럴 수 없다는 것이 안타까운 점인 것 같아요. 어떤 육아서에도 쌍둥이에 대한 사례를 찾아볼 수 없으니 더 답답한 마음입니다. 어떤 부모이든 아이를 키우는 과정은 맨땅에 헤딩하는 것인데 말이죠.

어떻게 하면 자라나는 쌍둥이들의 정서 발달에 좋은 것일까요? 최대한 중립적인 마음을 가지려고 노력을 하는 것 밖에 없는 걸까요. 고민이 많아 밤잠을 설치고 있는 새벽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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