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제: 기억의 끝에서 어둠이 되살아난다
[ 절망의 순간 ]
"에일라아아아!"
하진의 절규가 정원 전체를 뒤흔들었다. 마지막 순간, 그의 외침은 밤하늘을 찢고 어둠을 가르며 울려 퍼졌다.
수원 영통구 청명어린이공원. 새벽 4시.
정원은 완전히 어둠에 잠식되어 있었다. 기억의 나무는 시커멓게 타들어 가고 있었고, 그 주변으로는 무수한 검은 벚꽃들이 불길한 기운을 내뿜으며 피어나 있었다.
김민준이 정원 한가운데 서서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의 주변에는 기억을 잃고 조종당하는 사람들이 좀비처럼 서 있었다. 눈동자에는 생기가 없었고, 입가에는 공허한 미소만이 걸려 있었다.
그리고 그 뒤에는 '잊힘'이 서 있었다. 에일라의 모습을 한 어둠의 존재. 검은 드레스를 입고, 차가운 눈빛으로 하진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늦었어, 기억의 수호자." 김민준이 비웃었다. "이제 이 도시의 모든 기억이 내 것이야. 사람들의 고통도, 기쁨도, 사랑도... 모든 것을 내가 통제한다."
하진은 피투성이가 된 채로 땅에 무릎을 꿇고 있었다. 지난 밤의 사투로 그의 몸은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다. 왼쪽 팔은 검은 꽃잎에 스쳐 감각을 잃었고, 이마에서는 피가 흘러내리고 있었다.
"포기해." 잊힘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더 이상 지킬 기억도, 지킬 사람도 없어. 모두가 평화로워졌어."
[ 기억의 무기 ]
김민준이 손을 들어 올렸다. 그의 손끝에서 검은 실들이 뻗어나와 조종당하는 사람들과 연결되어 있었다. 그 실들은 사람들의 기억으로 만들어진 것이었다.
"너도 보고 싶지 않아? 이 사람들의 기억을?" 김민준이 손가락을 움직였다.
순간, 공중에 무수한 영상들이 펼쳐졌다. 조종당한 사람들의 가장 소중한 기억들이었다. 아이의 첫걸음, 연인과의 첫키스, 부모님의 마지막 말씀...
하지만 그 소중한 기억들이 김민준의 손에 의해 왜곡되고 있었다. 아름다운 순간들이 악몽으로 바뀌고, 사랑의 기억이 증오로 변했다.
"이게 기억의 진짜 모습이야." 김민준이 광기어린 웃음을 터뜨렸다. "아름다운 척하지만, 결국은 조작할 수 있는 거짓말일 뿐이지."
하진은 그 광경을 보며 분노가 치밀어 올랐다. 사람들의 소중한 기억이 더럽혀지는 것을 견딜 수 없었다.
"그만해!" 하진이 일어서며 외쳤다.
"그만하라고?" 김민준이 비웃었다. "그럼 네 기억도 보여줄까?"
김민준이 하진을 향해 손을 뻗었다. 검은 실이 하진에게 날아왔다.
[ 하진의 기억 ]
검은 실이 하진을 휘감는 순간, 그의 가장 아픈 기억이 공중에 펼쳐졌다.
어린 시절, 여동생 민하를 잃었다고 믿었던 그날. 자책감에 시달리며 보낸 수많은 밤들. 그리고... 에일라를 만나 처음으로 마음의 평안을 얻었던 순간.
"봐라. 너의 모든 기자 생활도, 사라진 사람들을 찾는 일도... 결국 네 죄책감에서 시작된 거야." 김민준이 하진의 기억을 조작하기 시작했다. "거짓된 동기로 살아온 허상의 인생이지."
하진의 기억 속에서 에일라와의 아름다운 순간들이 하나씩 왜곡되기 시작했다. 따뜻했던 대화가 차가운 거짓말로 바뀌고, 진심어린 위로가 동정으로 변했다.
"안 돼..." 하진이 무릎을 꿇으며 머리를 감싸쥐었다.
그때였다.
[ 잊힘의 갈등 ]
"그만해."
예상외의 목소리였다. 잊힘이었다. 그녀가 김민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뭐?" 김민준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
"나는 사람들을 고통에서 해방시키려는 거야. 기억을 왜곡해서 조종하려는 게 아니라." 잊힘의 목소리에 분노가 섞였다.
"같은 거 아니야? 결국 기억을 조작하는 건데."
"아니야." 잊힘이 김민준에게서 등을 돌렸다. "너는 기억을 더럽히고 있어. 그것은 내가 원하는 게 아니야."
김민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배신하려고? 너도 결국 에일라의 일부구나. 감상적인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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