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을 넘기기 전의 떨림

책장을 넘기기 전의 떨림 – 기회가 없어도 준비하는 이유

by 청아

아직 한 번도 누군가 앞에서 그림책을 해설해 본 적이 없습니다.


그림책 도슨트라고 스스로를 부르기 시작한 지 벌써 두어 달이 흘렀지만, 정작 도슨트로서 활동할 기회는 찾아오지 않았습니다. 미술관처럼 정해진 무대도, 박물관처럼 공식적인 프로그램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저 혼자서 그림책을 분석하고, 상상 속 청중을 대상으로 해설 연습을 할 뿐이고, 블로그와 브런치스토리에 그림책 도슨트의 해설이라는 주제로 글을 쓰고 있습니다.


가끔 사람들이 묻습니다. "언제 실제로 해설을 하실 건가요?" "어디서 그림책 도슨트 일을 하시는 건가요?" 그럴 때마다 저는 살짝 움츠러듭니다. 아직 아무것도 시작하지 못했다고, 준비만 하고 있다고 말하기가 부끄럽기 때문입니다. 그림책 큐레이터 1급 자격증 과정을 공부하고 있을 때 선생님은 그랬습니다. "하고 싶은 강의이든 기획이든 기회가 있을 것 같으면 준비가 되지 않아도 그냥 해보세요." 저에게는 이게 제일 어렵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상황에서 무작정 달려드는 성격도 성향도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책을 선택하고, 잘 이해해 보려고 노력을 하고 있습니다. 혼자 하는 것이 바보 같아 보이지만 말이죠.


하지만 이상하게도 멈출 수가 없습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오늘은 어떤 그림책을 만날까, 어떤 새로운 발견을 하게 될까 하는 기대감에 가슴이 두근거리기도 합니다. 서점에 가면 그림책 코너에서 한 시간도 훌쩍 보내고, 도서관에서는 아이들 사이에 끼어 앉아 그림책을 들여다보기도 합니다. 집에서는 한 권의 그림책을 몇 번이고 펼쳐보며, 작가가 왜 이 색을 선택했을까, 이 구도는 무엇을 의미할까 하며 혼자 중얼거립니다. 저의 쌍둥이들은 왜 그렇게 엄마가 그림책을 많이 보는지 의아해하기도 합니다.


어제는 백희나 작가의 『알사탕』을 보다가 문득 깨달았습니다. 동동이가 신비한 알사탕을 통해 주변 존재들의 속마음을 듣게 되는 마법 같은 이야기 속에서, 작가가 담고 싶었던 진짜 메시지를 말입니다. 이 책은 단순히 마법의 사탕 이야기가 아니라, 타인을 이해하고 공감하는 능력을 기르며 성장하는 아이의 내면 여정을 그린 것이라는 걸. 그 순간 나는 누군가에게 이 발견을 전하고 싶어 안달이 나기도 합니다.


"여기 보세요, 알사탕은 그냥 마법이 아니에요. 다른 사람의 마음을 들여다볼 수 있게 된 동동이의 성장 과정이에요."


상상 속에서나마 누군가에게 설명하는 저의 모습을 그려보기도 합니다. 그 사람이 "아, 정말 그렇네요!" 하며 감탄하는 모습도 함께. 그런 상상만으로도 가슴이 벅차오릅니다.


기회가 없다고 해서 준비를 멈출 수는 없었습니다. 오히려 기회가 없기 때문에 더 열심히 준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누군가 "그림책을 해설해 주실 수 있나요?"라고 물었을 때, "네, 준비되어 있습니다"라고 자신 있게 대답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저는 나만의 그림책 도슨트 노트를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읽은 그림책마다 분석 내용을 정리하고, 연령대별 해설 포인트를 기록하고, 질문이 들어올 만한 부분을 미리 생각해 보는 것입니다. 때로는 거울 앞에 서서 실제 해설하는 것처럼 연습하기도 하고요.


주변 사람들은 그런 내 모습을 보며 "너무 성급한 거 아니야?"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일단 기회가 생기면 그때 준비하면 되지 않을까?" 하지만 저는 생각이 다릅니다. 기회는 준비된 사람에게만 의미가 있다고 믿습니다. 아무리 좋은 기회가 와도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그냥 지나쳐버리기 마련이니깐요.


더욱이 그림책을 공부하는 시간 자체가 나에게는 큰 기쁨입니다. 한 권의 그림책에서 새로운 의미를 발견할 때마다, 작가의 숨겨진 메시지를 찾아낼 때마다 느끼는 그 짜릿함.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가치 있는 시간입니다.


언젠가는 분명히 기회가 올 것이라고 믿습니다. 누군가 그림책 해설을 부탁할 날이, 내 앞에 진짜 청중이 앉아있을 날이 말입니다. 그때까지 저는 계속 준비할 것입니다. 책장을 넘기기 전의 떨림을 안고서.


오늘도 저는 새로운 그림책을 펼치고 있습니다.

아직 보지 못한 누군가를 위해, 아직 오지 않은 그날을 위해. 그 설렘만으로도 충분합니다.

매거진의 이전글길이 보이지 않는 직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