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이 보이지 않는 직업 – 현장도, 제도도 없는 시작점에서
"그림책 도슨트가 되고 싶어요."
처음 누군가에게 이 말을 했을 때 돌아온 반응은 예상했던 그대로였습니다.
"그게 뭐예요?" 어떤 이는 고개를 갸웃거렸고, 어떤 이는 "아, 책 읽어주는 분이요?"라며 대충 얼버무렸습니다. 저 역시 그들의 반응이 당연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나조차 이 길이 어디로 향하는지, 어떻게 걸어가야 하는지 막막하기만 했으니까.
검색창에 '그림책 도슨트'를 입력해 봐도 나오는 건 거의 없었습니다. 미술관 도슨트 채용공고는 쉽게 찾을 수 있었지만, 그림책과 관련된 도슨트는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가끔 도서관에서 진행하는 그림책 도슨트는 이름뿐이었고, 제가 원하는 그림이 아니었습니다. 그림책 관련 자격증을 찾아봤지만, 독서지도사나 북큐레이터 자격증만 있을 뿐이었습니다.
제가 꿈꾸는 일을 하는 사람을 찾기 위해 인터넷을 뒤져봤습니다. 그림책을 소개하는 유튜버, 그림책 서평을 쓰는 블로거, 도서관에서 그림책을 읽어주는 자원봉사자들은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림책을 예술 작품처럼 해설하는 사람, 그림책의 구성 요소와 상징을 분석해서 전달하는 사람은 찾을 수 없었습니다.
아, 이 길은 정말 없구나.
순간 막막함이 밀려왔습니다. 취업포털사이트에도 없고, 학과도 없고, 선배도 없는 길이었습니다. 어디서 무엇을 배워야 할지, 어떻게 시작해야 할지 알 수 없기도 하고요. 마치 지도 없이 미지의 땅으로 떠나는 기분이었습니다. 일단은 자격증은 하나라도 있어야 할 것 같아 북큐레이터 1급, 그림책큐레이터 1급 자격증을 취득을 했습니다.
막막한 기분이기도 하지만 동시에 묘한 설렘도 느끼고 있습니다. 아무도 가지 않은 길이라는 것은, 내가 처음 만드는 길이라는 뜻이기도 하니깐요. 실패할 수도 있고, 헛된 꿈일 수도 있지만, 적어도 내가 원하는 방향으로 걸어갈 수 있다는 자유가 있습니다.
그래서 나만의 공부법을 만들기 시작했습니다. 미술 교양서적을 읽으며 그림 보는 법을 익혔고, 그림책 작가들의 인터뷰를 찾아보며 작품 세계를 이해하려 했습니다. 어린이도서관을 찾아가 그림책을 한 권씩 분석해보기도 하고, 미술관 도슨트의 해설을 들으며 설명 기법을 눈여겨 배우기도 했습니다.
가끔은 이 모든 노력이 헛될까 봐 불안하기도 합니다. 정말 그림책 도슨트라는 직업이 필요할까? 사람들이 원할까? 나 혼자만의 착각은 아닐까? 그런 의심이 고개를 들 때마다 처음 그 그림책 앞에서 느꼈던 감동을 떠올렸습니다. 혼자만 느낀 것이 아닐 거라고, 나처럼 그림책에서 깊은 울림을 받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을 거라고 믿고 싶습니다.
지금도 여전히 길이 명확하게 보이지는 않습니다. 언제쯤 첫 해설을 할 수 있을지, 어떤 무대에 설 수 있을지 알 수 없기도 하고요. 하지만 확실한 건 하나 있습니다. 나는 이 길을 걷고 있다는 것. 매일 조금씩, 천천히, 그림책과 가까워지고 있다는 것.
어쩌면 길이 보이지 않기 때문에 더 소중한 여정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정해진 코스가 없으니 내가 만나는 모든 그림책이 나의 스승이 되고, 내가 느끼는 모든 감정이 나만의 해설법이 될 것입니다.
오늘도 나는 지도 없는 길 위에 서 있습니다. 하지만 두렵지 않습니다.
내 앞에는 수많은 그림책들이 길잡이가 되어 기다리고 있으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