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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그날의마음 Sep 02. 2023

여행이란, 몰랐던 일들을 알아가는 것

제대로 된 하늘을 보고 싶었다. 마루에 누우면 하늘이 보이고 바람도 살랑 들어오는 그런 집에 누워. 하지만 우리 동네는 아파트 숲. 하늘은 늘 반쪽이었다. 밖에 나가도 그것은 마찬가지었다. 눈이 시원한 하늘도 없었고, 나무보다는 자동차가 훨씬 더 많은 곳에 나는 살고 있었다.  홋카이도로 여행을 갔다. 여행의 목표는 도시 문명을 벗어나는 것.  산과 호수가 어우러진 소도시에 갔고, 한적한 산쪽의 아담한 호텔을 칩거지로 택했다.


다다미방에 누웠다. 옆쪽으로 난 큰 창을 통해 커다란 하늘이 보였다. 먼 배경으로 산이 보일 뿐, 하늘을 가리는 아파트 따위는 없었다.  내가 살아왔던 세계와는 완전 딴 세상이었다. 그 하늘 아래에서 낮에는 바람소리, 새소리가 머물다 밤이 되면 별들의 속삭임이 들릴 것 같았다.  자연의 삶이란 이런 거지!  뿌듯했다. 창문 틈으로 들어오는 시원한 공기를 호흡하며 ‘상쾌함’이 무엇인지 음미했다. 


호텔 주변을 산책하며 오후 시간을 보냈다. 서울에는 없는 맛있는 공기다. 단 며칠이라도 답답한 도시를 떠나고 싶다는 바람을 드디어, 이루었다. 자연을 사랑하는 나는 진작 이런 곳에 왔어야 했다.  산을 보면서 목적지 없는 길을 걷고 튤립 정원을 보았다. 눈이 시원한 파란 하늘을 배경으로 한 그 모든 것이 예뻤고 평화로웠다. 역시나 도시 생활이란 내게 맞지 않는 옷이었나 보다. 마음도 영혼도 정화되는 느낌이었다.  


여섯 시도 안 됐는데 어둑어둑해졌다. 산속의 시간은 도시의 그것과는 달랐다.  호텔 안내데스크에 주변에 밤에 볼 만한 곳이 있냐고 물었다. 도야호수에서 불꽃놀이를 한다고 했다. 뜻밖의 정보였다. 화려하고 어여쁜 불꽃을 마주할 기회라니! 산중 생활은 잠시 접어두고 호숫가로 향했다. 두근두근. 어떻게 이런 일이, 하면서 나의 행운을 축하했는데.


출발하자마자 상황이 역전됐다. 불운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듯했다. 가는 길은 완전 먹물 속. 눈을 뜨고 있어도 앞이 보이지 않았다. 더듬듯 자동차가 천천히 길을 따라갔다. 산속의 낮처럼 산속의  밤 또한 도시의 그것과는 달랐다. 내가 생각하지 못했던 자연이란, 당황스러웠다. 낮의 뿌듯함이 깊은 탄식으로 바뀌었다. 후회막심. 


남편에게 호텔로 돌아가자고 말했다. 바로 무시당했다. 칼을 뽑았으면 호박이라도 찔러야 한다나. 운전을 못하는 내게 선택권은 없었다. 네비게이션과 야광 표지판을 의지해 가는 길은, 안 그래도 무서운데 도로가 점점 좁아졌다. 의심스러웠다. 이게 진짜 길일까? 남편이 속도를 낮추고 차를 세웠다. 헤드라이트를 받은 길바닥에는 ‘통.행.금.지.’라고 쓰인 표지판이 나둥그러져 있었다. 뒤쪽으론 되는 대로 막 자란 수풀이 보였다. 그리고 옆으론... 낭떠러지였다. 머리카락이 곤두섰다. 서둘러 그 길을 돌아나오는데 길바닥에 뭔가 보였다. 

둥그렇고 커다란 털뭉치인데..... 뭐지?  

‘꺅!!!’ 

심장이 요동쳤다. 그것은 여우, 여우의 사체였다. 불쌍했다. 그리고 손이 덜덜 떨릴 만큼 무서웠다. 그 어둠 속에서 빨리 뛰쳐나가고 싶었다. 하지만 불빛은 어디에도 보이지 않았고 사슴이 멀리서 지나는지 검은 그림자가 어른거렸다. 간혹 동물의 번뜩이는 눈알이 어둠 속을 떠다녔다. 


도시에서 태어나 도시에서 자란 내가 공연히 헛짓을 했나. 사람이 안 하던 짓을 하면 죽는다는데.... 서울 토박이인 나는 밤이 되어도 불빛이 꺼지지 않고 차들도 쌩쌩 달리는 그런 곳에서 인생의 대부분을 보냈다. 고요한 산도 그곳에서의 생활도 어쩌면 마녀의 독사과일지 몰랐다. 겉보기엔 탐스럽지만 그 맛과 안전성은 보장할 수 없는. 잘못 먹었다간 켁! 하고 고꾸라질 수 있는 것 말이다. 


학생 시절 MT 때였다.  

“와! 정말 좋다. 이런 데서 살면 진짜 좋겠다.”

맑은 공기를 심호흡하고 하늘의 별을 세며 감탄하고 있었다. 

“네가? 말이 되냐? 벌레 물렸어. 동물 나오면 어째. 불빛이 없어. 이러면서 금세 난리칠 걸.” 

어떤 친구 하나가 나의 낭만에 초를 쳤다. ‘이상한 녀석’이라며 무시했는데, 지금 보니 그 말이 맞았나 보다. 몇십 년이 지나 알게 된 진실이었다. 나를 그렇게 잘 파악하고 있던 그는, 혹시 나를 흠모했을까. ㅋㅋ  엉뚱한 과거 기억은 빛의 속도로 사라지고. 


길은 울퉁불퉁, 푹신한 시트 위에서도 도로의 요철이 느껴졌다. 불안불안. 내 얼굴은 파란 사과처럼 질렸을지도 몰랐다. 왠지 모를 ‘내일의 뉴스’가 귓가에 윙윙거렸다.

‘昨夜 9時ごと. 北海道のA山で... 어제 9시경. 홋카이도 A산에서 한국인 ***가 변사체로 발견되었습니다. 타살의 흔적이 없으며 사인은 갑작스러운 산중 체험으로 인한 심정지로 보입니다. 따라서 이로 인한 양국 간의 마찰은 없을 것으로 예상된다고 관계 당국은 밝혔습니다.’ 

내 머릿속에서는 여우 사체와 현재 상황이 오버랩된 끔찍한 뉴스가 방송 중이었다. 어두운 산길에 울러 퍼지는 아나운서의 목소리는 남의 속도 모른 채 낭랑하기만 했다.

 

공포에 쩔어 간이 쪼그라든  나와는 달리, 기막히게 또는 다행스럽게 남편은 차분히 운전대를 잡고 있었다. 시간이 흐르고, 자동차의 불빛이 띄엄띄엄 보이기 시작했다. 휴~ 살았다! 그 불빛은 큰 도로로  이어졌다. 평화로운 가로등 빛이 우리를 맞아주었고, 도야호수에 무사히 도착할 수 있었다.

 

천신만고 끝에 도착한 그곳. 까만 하늘에서는 황홀한 불꽃이 ‘팡팡’ 터졌다.  우리의 살아있음을, 살아났음을 축하하는 박수 같았다. 도시 비슷한 향기가 났다. 코끝이 찡할 만큼 반가웠다.  


자연을 보고 싶어 떠나온 이번 여행. 나는 말로만 자연에 귀의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닐까. 진짜 자연은 저기 있는데, 나는 여기에서 머릿속의 자연, 내 입맛에 맞는 자연만 그린 듯했다. 깨달음 비스름한 것이 밀려오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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