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기'는 좋은 것이랍니다^^
문화센터에서 글쓰기 강의를 듣는다. 합평을 한다고 하니 글을 제출했다. A4한장 반 정도의 남들이 보기엔 그저 그런 글이겠지만, 큰맘을 먹었고 시간을 투자했고 머리를 굴렸고 등등. 나름 수고스러운 작업이었다.
항상 뭐 씹은 듯한 표정의 강사는 그날도 여전히 찌그러진 얼굴로 다른 글들을 평했다. 뭐가 어쩌고 뭐가 저쩌고. 나이 드신 분들도 많은데, 그들의 글을 꼭 그렇게 평해야 하나. 좋은 게 좋은 거라는 말에는 동의하지 않지만, 적당한 당근과 채찍을 섞어야 기분이 좋아질 테고, 사람이란 감정을 지닌 존재이니 대부분 기분이 좋아야 글이 잘 써진다. 그리고 기본적인 단락 나누기, 문장의 구성에 대해서는 수정을 할 수 있겠지만 글에 담긴 생각을 비판할 수는 없을 것 같다. 사람마다 자기 생각이 있고, 특히나 인생을 길~게 살다보면 살아온 환경과 경험들이 다르니 함부로 말하는 것은 실례다. 남의 인생에 대해 좀 더 존중하는 마음이 필요해 보였다. 그러니까 그 강사는 비판을 위한 비판 같은 느낌이었다. 비판을 해야만 뭔가 아는 척할 수 있다고 생각한 것일까. 정말 그렇다면 음... 꽤나 편협하고 시대착오적이다.
그의 평을 수긍하지 못하는 또 다른 이유도 있었다. 그의 책을 서점에서 훑어보았는데. 구렸다! 스토리도 전개방식도 문체도 완전 꼰대 감각이었다. 이 시대와는 다른 전원적, 목가적, 전통적이란 수식어를 붙여 포장한다 해도 보편적인 감성에 호소할 수 없을 것 같았다. 본인도 제대로 못 쓰는 주제에 무슨 비평을 그렇게 해대는지. 학생의 발전을 위한 비평이라면 흔쾌히 받아들일 수 있지만, 내 보기엔 그런 태도도 아니었다. 말투에 겸손함이나 배려가 없었으니까. 혹시 열등감, 자격지심을 감추려는 것은 아니었을까.
그런데 이런 강의를 왜 듣냐고? 나도 내내 후회하고 있었다. 같이 등록하자는 30년 지기의 끈질긴 설득으로 일단 돈을 내고 봤더니 이랬다. 우정을 수호하려는 의지와 미래를 예측하지 못한 나의 아둔함을 탓해야 할까. 나는 돈이 아까워 강의도 듣고 나름 숙제도 하는 것인데. 어디서든 눈에 불을 켠다면 먹을 것을 찾아낼 수 있으리란 희망을 장착하고 말이다.
드디어 내 차례가 되었다. 이게 뭐라고, 두근두근 떨렸다. 내 글은 '된통 병치레를 한 나'와 '늙어가는 엄마'가 음식을 매개로 병약함과 노쇠함과 세월을 느끼고, 현재를 안타까워하며 과거를 그리워하는 내용이었다. 강사는 쭉 읽어내려갈 뿐 별 말이 없었다. 내 글은 비교적 비문이 없고 맞춤법과 띄어쓰기도 정확한 편이다. (난 한때 국어선생이었다.) 그러더니 마지막에 한 마디로 평을 종결했다.
"집에서 일기나 쓰세요~"
구성이 없고 너무 개인적인 경험이란다. 구성이 없다니? 기승전결, 강력한 결론이 없다는 것인가? 소설처럼 클라이막스를 원하나? 그럼 중수필도 아닌 가벼운 에세이가 개인적인 경험을 쓰지 사회적 공론을 쓸까. 구체적으로 뭐가 문제냐고 묻고 싶었지만, 그는 시간이 다 되었다며 휙하니 강의실을 나가버렸다.
모욕을 당한 것 같았다. 내 글에 대한 모욕, 나에 대한 모욕, 그리고 '일기'에 대한 모욕 말이다. AI가 작성한 것도 아니고 그 글을 쓴 내가 살아서 그 자리에 앉아있는데 그런 말투로 말하다니. 그는 이유와 예의를 갖춰서 말해야 했다. 다른 분들보다 내게 가장 강력한 펀치를 날린 것 같았다. 글도 못 쓰고 예의도 모르고 자기 잘난 줄만 아는 그 강사를 대놓고 욕해주고 싶었다. 이런 예의 없는 놈!!!!
그런데 그는 알까. 명작이라 일컬어지는 <안네의 일기>, <로빈슨크루소>, <키다리아저씨> 도 다 일기 또는 일기 형식이고, 우리나라에도 <열하일기>와 <난중일기>가 있다는 사실을. 모든 소설이 다 대단하지 않은 것처럼 모든 일기가 다 조야한 것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