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학교 3학년 막바지의 어느 날, 종카오(中考, 중국 고입 시험)를 앞두고 딸아이가 불쑥 내놓은 말에 허를 찔리고 꽤 오래도록 생각했다. 그즈음 큰아이는 그날 해야 할 숙제와 공부를 끝내면 밤 12시가 넘은 시간에도 뮤비를 보거나 붓을 잡거나 책을 읽으려 들었고, 나는 키 크려면 빨리 자야 된다고 밤마다 옥신각신하던 때였다. 그만 자라 - 좀 이따 - 얼른 자라고 - 좀 이따아 - 불 끈다 - 에 이어진 짜증 섞인 대답이었다. 처음 그 말을 들었을 땐 조금 억울하기도 했다. 여자 아이들은 대부분 중학교 때 키가 평생 가는데 큰아이는 또래보다 많이 작은 편이었고 나는 중 3이 키 크는 마지막 시기라는 생각에 꽂혀 매일 밤 빨리 자라고 성화를 부렸다. 그게 ‘공부만’ 하고 자라는 뜻은 아니었는데, 그렇게 받아칠 줄이야..
학교 갔다 와서 숙제하고 이제 공부 끝냈는데 바로 자라고?
그럼 엄마는 내가 다른 건 아무것도 안 하고 매일매일 공부만 했음 좋겠어?
그게 아니라 성장호르몬을 쥐어짜서 1cm 라도 커보자는 거라고 같이 큰소리쳐주고 돌아 나오는데 뒤통수가 따가웠다. 가슴에 손을 얹고 생각해봤다. 내가 정말 키만 걱정한 걸까, 밤 12시가 다 되도록 공부할 땐 가만있었잖아, 아마 12시 넘어서도 계속 공부하고 있었으면 가만있지 않았을까.. 솔직히 아니라고 딱 잘라 말할 순 없겠다. 그 시간에도 계속 책상 앞에 앉아 있었다면 불 끈다는 소리는 못 했겠지. 그날 이후 흘러가는 일상 속에서 이상하리만치 자주, 불현듯 딸아이의 말이 생생하게 튀어올랐고 그때마다 가슴이 답답해졌다. 엄마로서 나의 노선은 진짜 뭘까.
지금 현재 콕 집어 뭐가 하고 싶다는, 뭐가 되고 싶다는 확신이 있다면 180도 방향을 틀더라도 너의 꿈을 지지하겠다, 그렇지 않다면 일단은 공부를 하면서 미래를 대비하자, 과정에 성실했다면 혹 결과가 나쁘더라도 탓하지 않겠다는 것이 그동안 엄마로서 견지해온 나의 생각이었다. 어른으로서도 인생 선배로서도 꽤 합리적인 주문이라 여겼다. 그런데 그냥 넘길 수도 있었던 아이의 말이 왜 소화되지 않고 내내 가슴팍에 걸려 있었을까. 오랜 시간 곱씹으며 그럴듯한 포장지를 하나하나 벗겨나갔다. 큰아이가 작곡 작사에 관심을 보일 때 재능이 있을까 걱정부터 했으면서, 공부 잘하는 둘째가 메이크업 아티스트가 되면 어떨까 얘기했을 때 마음으로 응원하지 못했으면서, 과정에 성실하다면 결과야 좋을 수밖에 없는 건데 평소 노력이 보인다면 결과는 패스하겠다 쿨한 척한 것이 결국은 평소에 열공하라는 돌려차기이지 않았나..
사실 이런 입장차는 중국 로컬학교의 빡센 일과에서 비롯된 것이기도 하다. 베이징시 종카오에서 고득점을 얻어야 좋은 고등학교에 진학할 수 있기 때문에 중학교 3학년이 되면 학교에서 아이들을 달달 볶는다. 평소 엄청난 분량의 숙제와 복습을 요구하며 토요일 등교도 불사할 정도이다 보니, 매일 저녁 7시쯤 귀가해 허겁지겁 저녁을 먹고 곧바로 숙제와 관련 공부를 끝내고 나면 밤 12시를 넘기기 일쑤였다. 큰아이는 그렇게 제 할 일을 끝내고 나서 곧바로 잠자리에 들면 자기가 좋아하는 건 언제 하느냐는 항변이었던 것이다.
음악을 듣고 뮤비를 찾아보고 피아노와 기타를 치고 그림을 그리고 영화를 보고 책 읽기를 즐기는, 공부 외에도 여러 가지 취미가 많은 아이인데 주중은 물론이고 토요일까지 등교하다 보니 좋아하는 것을 할 시간이 턱없이 부족했던 거다.
그래서 제 딴에는 잠을 줄여서라도 공부 말고 자기가 좋아하는 걸 하루에 한 가지는 하겠다는 거였다. 좋아하는 것을 하기 위해 공부를 줄이겠다는 게 아니라 할 건 하고 잠을 줄여서 뭐든 기분 좋아지는 걸 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고, 그것은 스트레스 해소를 위해 꼭 필요한 일이기도 했다. 그런데 엄마라는 사람이 밤마다 ‘공부’ 끝냈으면 빨리 자라고, 그러다 키 안 크면 어쩔 거냐는 잔소리만 해댔으니 맙소사..
부모로서 내 말이 영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키 성장도 중요하니까. 다만 아이의 입장에서 전후 사정을 제대로 살피지 못하고 아이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한 채 내 말만 앞세웠다는 미안함이 컸다. 오래도록 마음 한 편이 불편하고 무거웠던 건 그런 미안함에, 엄마의 속물적인 욕심을 합리적인 허울 속에 슬그머니 녹여낸 비겁함이 느껴졌기 때문이었다. 아이의 컨디션을 걱정하면서도 서너 시간밖에 안자는 아이를 적극적으로 말리지는 않는 방관자, 말로는 결과가 중요하지 않다면서 성적은 잘 나오길 바라는 이중성, 그런 나의 태도가 다들 견디고 있으니 너도 마땅히 견뎌야 한다는 무의식적인 강요로 작용했을 거라는 깨달음. 부끄럽지만 ‘관심과 걱정’으로 포장했던 엄마의 욕심을 인정해야 했다.
다른 것도 아니고 음악과 그림과 책으로 쉬겠다는 아이에게 ‘공부 끝냈으면 됐다, 빨리 자라’ 고만 했으니.. 사람마다 스트레스 해소법이 다른 것인데, 나는 아이에게 진짜로 필요했던 건강한 휴식을 빼앗고 있었던 것이다. 더해서 나는 딸아이가 예술과 문화에 관심을 가지고 스스로 즐기고 있다는 점을 무척이나 좋아했는데도 아이의 실제 생활과 바람이 엇박자를 내는 것에 무심했다는 사실에 정말 많이 미안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엄마인 내가 깨닫는 바가 있었어도 아이의 생활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큰아이가 고등학교 1학년 2학기를 지나고 있는 요즘 더 이상 키 얘기를 운운하지 않지만 아이의 수면시간은 더욱더 짧아지고 있다. 나는 고 1 딸내미에게 키 성장을 기대할 순 없을 것 같아 반 포기 상태인 거고, 아이는 자정쯤 끝났던 공부가 새벽까지 이어지고 있어서다. 과중한 숙제 때문인 것 같아서 중요도를 따져 몇 가지 숙제는 건너뛰라고 얘기하면, 공부를 해야만 숙제를 할 수 있어서 그렇다는 대답이 돌아온다. 이젠 아이 방의 미완성 캔버스와 피아노와 기타가 정물처럼 굳어가고, 읽고 싶다고 사다 놓은 책들에 먼지만 쌓이며 다 같이 방학이 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다. 평소에는 가끔 좋아하는 보이그룹의 영상을 찾아보거나 음악을 듣는 것이 큰아이의 유일한 휴식이 되어버린 것이다.
고등학생이 되고 보니 그 힘듦을 공감하고 아이에게 전적인 믿음을 보내며 응원하는 것 외에 해줄 것이 없다. 그저 옆에서 지켜볼 수밖에 없어 안쓰럽긴 하지만 한편으로는 그런 힘듦도 필요한 과정이라는 생각이 있다. 학창 시절 ‘자신의 의지로 공부를 열심히 해 본 경험’은 앞으로 인생을 살아가면서 자존감을 지키는데 큰 도움이 된다고 믿기 때문이다. 밤잠을 줄여가며 인생 최고의 집중력을 발휘하여 공부에 올인해 본 경험은 그 자체로 ‘나는 최선의 노력이란 것을 해봤다’는 자기 인정에서 비롯된 당당함을 선물해준다. 그런 기억은 살아가면서 어려움에 부딪힐 때 ‘한 번 해보자’는 의지를 북돋아주는 성취의 씨앗으로 작용할 거라고 생각한다.
그러므로, 지금은 이런 말들이 엄마의 잔소리에 지나지 않겠으나..
‘지금의 시간들이 너를 만드는 것’ 이라고
딸들에게 말해주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