멈춰 있었던 게 아니었네

2020년을 결산하며

눈 수술을 해서 무리하면 안 된다, 카페 나오지 말고 집에서 쉬라고 동생들이 휴가를 줬다. 아닌게 아니라 안압이 올랐다 내렸다 머리 감는 일이 힘들어서 머물러 있고 싶었다. 12시에 있을 합격자 발표를 하나 기다리며 평정심은 깨졌고......문자 메시지로 발표 시간이 앞당겨졌으니 확인하라는 메시지가 뜬다. 한국코치협회 76차 KPC 합격자 44명 중 내 이름이 당당히 걸려있다. 야후~~ 시간 제한에 대한 압박감이 있어서 제대로 하지 못한 듯해서 불안했던 바. 코칭 일을 주욱 해오곤 있었으나 공식 인증이란 걸 통하지 않았던 터라 전문성을 의심받는 상황들도 있었다. 이런 저런 설명이 번잡해서 올해 4월에 KAC를 취득하고 이번에 KPC를 준비했었다.


뒤늦게라도 인증코치가 되어야겠다고 결심하게 된 데는 숨은 공로자가 있다. 말이 아닌 삶으로 코치다움이 뭔지를 보여주신 분이 계셨다. 안남섭 코치님은 앎과 삶, 일과 삶을 분리하지 않고 자연스레 물처럼 흘러가신다. 멘토링 코칭과, 코치더코치를 받으면서 진정한 배움이 일어났다. 고객에게 오롯이 전념하는 경청의 자세는 기본, 고객에 대한 사랑 넘치는 호기심으로 고객이 의미를 찾아갈 수 있도록 통찰적 질문을 놓치지 않으셨다. 끊임없이 자기인식을 할 수 있도록 따듯한 존중을 아끼지 않는다. 또 샤론과 나윤숙 코치에게 코치더코치를 받으면서 피드백을 받는 과정에서도 세밀한 기울임이 있었다.


나는 어째서 끊임없이 배우고 있는가? 때때로가 아니라 무시로 배우고 익히겠다는 자세는 나를 낮출 수 있게 한다. 모른다는 전제는 그 자체의 미덕이 분명 존재한다. 특히 사람을 대하는 일을 한다면 경우의 수는 인류가 존재하는 만큼의 N수다. 오롯한 개별적 존재를 대하는 데 어떻게 같은 처방이나 고민일 수 있겠는가? 그래서도 타인의 사례를 보고 듣고 현장에 적용하며 깨지고 깨쳐가는 거다. 코칭, 특히 코치에게 요하는 역량이란 오로지 존중과 환대의 수평적 관계가 있을 뿐이다. 그 스스로 찾아가는 길에 적절한 질문으로 알아차리도록 북돋을 뿐, 결국 자신의 문제를 스스로 정의하고 정리하며 실행하는 역할일 뿐이다.


안개속 미망에 헤매일 때 외부로부터의 실낱같은 자극이 '아하'의 순간을 만들어주기도 하고, 얽혔던 실타래를 다시 감을 수 있는 실마리를 선물하기도 한다. 또한 누군가 그 곁을 지키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안이 되는 순간이 있다. 유의미한 질문을 통해 알아차리고 현미경으로 들여다보듯 주의를 기울이기도 하고 때론 멀리서 조감하며 큰 그림을 그리게도 된다. 그 대화의 수준이 결국 코칭의 과정에서 부단한 성장을 부른다. 그저 대화의 스킬로 얻어지는 게 아님을 하면 할수록 절감한다. 그래서 그 많은 공부들이 어디 사라지지 않았다. 서로 녹여나고 융합하면서 그에게 적절한 뭔가를 찾는 실마리가 된다.


코로나 19 시대가 결국 1년을 넘겼다. 이 어렵다는 시기에 나는 많은 도전을 했고 그러고보니 그 성과도 많았다. 가만히 있지 않았다. 마스크 쓰고 면접보러 가서 2월에 병영독서코치로 선발되기도 했고, 4월엔 KAC 자격인증코치가 되었고, 9월엔 리플러스 인간연구소 박재연 소장의 '연결의 대화' 지도자 준비과정에도 선발되어 착실히 수행 중이었다. 올해의 마지막 응시 KPC 자격인증까지 따냈으니 올 한해는 코치로서의 마음가짐과 역량강화를 위해 부단히 노력했던 셈이다. 그 와중에 현실이와 카페 '꽃,책으로 피다'도 개점했으니 엄청난 일들을 벌였다. 그 사이사이 진성리더십 동문들과 들뢰즈로 철학공부도 두 회기나 했다. 더함플러스협동조합의 일 세 가지를 기획, 연구개발, 운영까지 했으니 더 바랄 게 있을까?


결핍에 주목하면 언제나 초라한 자신과 만날 밖에 다른 퇴로가 없다. 일년 결산하고 보니, 여전히 감사가 넘쳐나야할 시간들이었구나. 맡은 일들은 다 멋진 성과를 만들었고 무엇보다 참 좋은 사람들이 나를 안전지대에서 놀게 했다. 감정의 휘몰이에서 비껴있으면 일상에서도 수시로 알아차릴 수 있는 코드를 읽을 수 있다. 소란스럽지 않았으되 나는 어느새 일어서 있었고 조금씩 걷고 있었다. 다시 일어서기만 해도 좋겠다고 생각했던 시간이 불과 3년 전이다. 지리멸렬했던 시간이 아니라 차근차근 다지고 또 다진 시간이었다. 이제 뚜벅뚜벅 걸을 수 있어요라며 기뻐해달라고 말할 만큼. 언제부터인지 애사보다 경사를 편히 말할 수 있는 대상들이 의미있는 관계가 아닐지 싶은 생각들을 하게 된다. 홈페이지에서 내 이름을 발견하고 자신의 일처럼 기뻐하며 당장 연락을 해오셨던 그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를 드린다.


삶은 정작 특별할 것도 없이 그저 그 자체로 존재할 뿐이다. 선택한 그 순간에 의미를 부여하여 생명을 불어넣고 피돌기로 따듯함을 만드는 것, 오로지 내 몫이다. 세상을 먹빛으로 물들일 것인지, 파아란 빛으로 채색할 것인지도 내가 쓰는 관점의 프레임에 의해 결정된다는 것. 2020년, 여전히 감사했다. 2021년도 많이 감사하며 살아야지. 비록 또 견디고 벼려야 하는 시간일지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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