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동이 사라져버린 시대, 사람들이 왜 미술관을 찾을까?'를 주제로 아트인문학을 들었다. 제목에서 솔깃해지는 느낌이라 집중해서 들었다. 마르셀 뒤샹의 <샘>으로부터 시작된 현대미술의 이해. 한낱 변기가 예술작품이 될 수 있다고? 당시 화단을 점령하고 있던 피카소의 입체파 아성에 반기를 든 도발이었다. 예술이 그렇게 뻔한 것일 리 없다. 프로펠러의 날개 곡선의 아름다움에 홀딱 빠졌던 뒤샹은 기성품(already make)의 아름다움에 대한 새로운 발견을 했다.
1917년 뒤샹의 <샘>은 혹독한 비난과 함께 전시회장에서 철거되었다. 프랑스에서는 인정받지 못했던 그의 변혁성은 훗날 여러 예술가들에게 파문을 던졌다. 현대음악의 작곡가였던 존 케이지는 4'33"라는 유별난 피아노 연주곡을 발표했다. 4분 33초 동안 연주자는 피아노 뚜껑을 열고 마지막에 뚜껑을 닫았을 뿐, 피아노를 치지 않았다. 쉼표로만 이루아진 고요한 음악을 작곡했지만, 연주회장의 상황 따라 결코 고요할 수만은 없는 우연성의 반복. 청중들이 조심스레 내는 온갖 소리, 낮은 기계음 소리 등 매번 주변 환경따라 변하는 지금 이 순간.
존 케이지는 뒤샹이 전한 메시지를 정확히 이해했다. 그러나 음악계는 바뀌지 않았다. 뒤이어 존 케이지에 영향을 받은 백남준 같은 전위 예술가를 탄생시켰다. 이후, 1961년 앤디 워홀의 오마쥬로부터 진가를 발하기 시작했다. 캠벨사의 닭고기 누들 숲 통조림 32개, 특이점이라면 통마다 다른 메뉴를 담았다. 들뢰즈의 차이와 반복을 생각하게 하는ᆢ도발하는 자와 지키려는 자 간의 게임은 쉽게 끝났다.
미국의 미술계는 앤디 워홀의 작품성을 인정할 수 없었다. 갤러리와 화가들은 앤디 워홀을 조롱할 목적으로 연대하였다. 갤러리 앞에서 캠벨 통조림 대할인 세일을 하며 전시회를 아예 볼 가치가 없는 것으로 한정하여 원천봉쇄를 하려했다. 미디어의 힘이 발휘되는 순간. 스토리텔링에 능한 한 기자가 이 싸움을 흥미롭게 지켜보고 기사를 써댔다. 앤디 워홀은 일약 스타가 되고 전시회장은 장사진을 이루게 된 것.
작가들이 착상한 아이디어를 직접 제작한 독창성이, 공감을 얻어야만 예술로 여기던 고정관념이 무너진 순간이었다. 산업화시대 대량 생산되는 기성의 공산품에 새로운 의미를 붙인 '착상'에 가치를 부여하는 시대가 되었다. 더 나아가 이탈리아의 피에로 만초니는 "무엇을 예술이라 할 수 있는가?"를 화두로 새로운 '예술가론'을 정의한다. 장난기 가득한 그는 갤러리에 모여든 관객들에게 삶은 계란 70개 중 몇 개씩을 까서 먹으라고 한다. 몇십개가 남아 있는 것에 자신의 지문을 찍는다. 원래 계란값의 십배 이상의 금액을 붙여 사라고 한다.
두 번째 퍼포먼스는 풍선을 두고, 그냥 풍선 자체는 만 원, 자신이 바람을 불어 주면 십 만원을 받는다. 세 번째 작품은 겉은 통조림이다. 각 통은 90까지 넘버링이 되어 있다. 충격적이게 그 안에는 만초니의 똥이 들어있다고 한다. 포장 문구에 30g의 신선한 생물임을 표시하고 있다. 제조년월일이 기록되어 일반 고등어 통조림과 같다. 실제 최근 경매장에서 4억에까지 이르렀다. 만초니는 세 번의 퍼포먼스 끝에 예술가에 대한 재정의를 내렸다. 예술이란 예술가와 관련된 것이면 된다. 자신의 지문을, 숨결을, 용 쓴 노력으로 배출한 것으로 작품의 가치가 결정된다는 것.
뒤샹으로 시작된 현대미술이 어떻게 자리를 잡게 되었는가? 노동으로 이루어지는 제작이 아닌, 생각을 이끌고 영감을 일으키는 '착상'이 작품이 된다. 노동이 사라지는 시대가 요하는 인재상은 기획력을 갖출 일. 기획의 삼요소인 이야기, 콘셉트, 양식화가 잘 갖춰질 때 성공적인 퍼포먼스가 탄생된다. 기획력을 갖기 위한 강력한 훈련법이 미술관을 다니는 것. 기획력이 종합적으로 발휘된 것이 미술 전시회이므로.
노동이 사라지는 시대, 미술관을 찾는 행동이 설명되는 근거일 수 있겠다. 그에 더해 환금성의 수단으로서도 미술 작품에 대한 안목이 필요하겠지? 미술 전시회를 보러 다니고 좋아했던 것이 기획력을 높여줬던 것이 사실이었다. 학부모 교육을 할 때도 늘 강조했던 것이 미술관과 박물관, 음악회를 데리고 다니라고 했는데 다 연결되는 얘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