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지인 집에서 뒹굴뒹굴 놀다 왔어요. 된장찌개에 계란말이, 굴비, 멸치볶음, 굴젓까지 정갈하게 차려준 밥상. 어느 것 하나 맛없는 게 없어서 싹싹 비웠죠. 물리자마자 단단하고 달콤한 사과와 커피를 또. 손님 접대하느라 유료결제해준 영화 <오펜하이머>를 따뜻한 침대속에서 보다가 스르르 잠이 들어버렸다는.
술 중에는 유일하게 입에 적시는 와인. 밥 먹을 때 곁들인 샴페인 한 잔 덕분인지 알딸딸허니 늘어져버린 거. '내가 영화를 보다가 잠을 자다니 이럴 순 없다'고 자책모드. 바깥이 부산하기에 깨고 보니 어느새 배추전을 노릇하게 구워서 기다리고 있더랍니다. 뭇국, 만두와 곁들여 또 저녁까지 뽕야뽕야.
지인은 일주일에 한번, 친정어머니께서 오셔서 집도 치우고, 음식도 해두고 하루를 묵고 가시지요. 모녀가 정기적으로 만나는 기쁨, 어머니께서 여전히 운동삼아 오가고 딸을 돌보는 뿌듯함, 어머니께 소일거리라도 드리고 용돈을 챙겨드릴 수 있어 안심되는, 그런 따뜻한 온기가 깃들어 있더랍니다. 서로에게 정서적으로 기여할 수 있으니 참 바람직해보입니다.
식탁 위에 동시집이 한 권 있길래 펼쳐들었죠. 지인의 시고무부(전직 교장선생님)께서 쓰신 동시. 상상력을 동원해주는 뇌의 사고 작용을 이렇게 표현했군요. 할아버지인 분의 순수하고 순박한 동심이 그대로 드러나서 한참 미소지었어요. 집안 대소사 챙기는 질부 기특하다고 거의 해마다 발간한 동시집을 선물로 가져오신대요.
초트급 배달
최재영
- 아,참 시원하고 맛있지
하면 머리 안에 배달되는 냉면 한 그릇
- 시집간 큰누나 잘 있겠지?
하면 순식간에 와서 나를 안아주는 누나
- 먼저 살던 집 그리워라.
하면 그 동네 친구들 달려와 얼싸안아주네
생각하는 순간마다
내게 휙 달려오는 자동배달 특급 서비스
그림으로 그려지고 손으로 만져질 듯하지요? 살아있는 느낌. 동시에 곁들인 그림들도 개구지고 재미나서 한편 한편 다 읽었더랍니다. 해진 지는 오래고, 별 총총하는 시간까지 엉덩이 붙이고 못 일어난 그런 날이었습니다. 그런 날도 있는 거죠, 뭐. 나무늘보마냥 늘어지게 여유로운, 그런 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