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테제들

[Ü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를 모티프로

by 민해경

“공상에서 과학으로”라는 구호를 외쳤던 그들은, 과학이라는 미명 아래 인간이라는 존재를, 더 나아가 자연이라는 존재를 신성성을 배제한 채 규칙과 법칙만으로 규정하고 해석하려 하였고, 이를 통해 자신들이 그들을 구원하려 하였다. 이러한 구원자를 자칭하던 그들은 과학이라는 이름 아래 낭만을 삭제하고, 법칙이란 이름 아래 다름을 용납하지 않았다. 맞다. 어쩌면 그들은 제사장이 되었다. 억압받는 계급을 대변하고, 인간이란 존재를 개조할 제사장이 되었다. 예수는 종교를 내세워 인간을 억압했던 제사장들로부터 인간들을 구원했다. 이제, 메시아들이 그 제사장들로부터 인간들을 구원할 차례다. 그리고 그 메시아는, 현재 맴돌고 있는 과거의 잊혀진 영혼들과 얼마 지나지 않아 잊혀질 지금의 시한부들이다.



본인들의 해방을 외친다. 노동자들의 해방을 외치며 자본가들을 악으로 규정할 뿐이다. 임금을 체불하고, 차별하며, 지위를 통해 억압하고, 착취하는 그들을 악으로 규정할 뿐이다. 맞다. 착취하고 억압하는 이들은 악한 이들이다. 그것이 자본가라면, 자본가는 악한 집단이다. 그리고 자본가는 어디에나 존재한다. 노동자 역시 어디에나 존재한다. 누구나, 자본가며 노동자다.



스스로 신이 되려 하는 자들, 인간과 자연이라는 메시아를 부정한 채 스스로 신이 되어 그들을 규정하고, 통제하려는 자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모두는 메시아다. 우리 모두는 역사이며, 기억이며, 하나의 조각이다. 그러나, 그 메시아에서 벗어나 스스로 유일신이 되려 한다면, 그 결말은 루시퍼로의 변질이다..



만유인력의 법칙은 자연법칙이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하늘을 날게 되었다는 것이다. 역사도 마찬가지이다. 억압과 소외, 그리고 억압받은 자들에 대한 망각은 역사의 법칙일 지 모른다. 계급은 어느 시대에나 존재해왔으며, 억압자가 사라진 자리는 새로운 억압자가 등장했다. 변화는 생산과 계급의 변동에 따라 결정되어 왔다. 그것은 하나의 법칙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간은 스스로 메시아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억압자들은 메시아들을 지워왔다. 스스로 구원자를 자청했고, 메시아 위에 또 다른 메시아가 존재한다며 피억압자들의 정체성 내에서 메시아를 제거시켰다. 과학을 핑계로 더 나은 미래를 약속하며 피억압자들의 지금을 잠재웠고, 과거를 묻어버렸다. 그들의 역사는 하나의 파편으로, 지금도 우리의 곁을 떠돌고 있다.



역사는 반복된다. 지금의 억압자들이 사라져도, 그들의 자리는 새로운 억압자들로 채워지는 것이 역사였다. 지금까지 수많은 피억압자들의 역사가 파편이 되어 가라앉았다. 앞으로도 마찬가지일 것이다. 우리의 역사는 하나의 부스럼이 될 것이고, 들리지 않는 외침을 현재에 전할 것이다. 그러나, 바람이 불 것이다. 그 바람에 우리가 몸을 맡길 때, 그 바람은 우리의 파편과 부스럼을 한데 모아 하나의 페이지를 형성하고 메시아들의 탄생을 알릴 것이다. 역사의 브레이크는, 그때 비로소 당겨질 것이다.





위 테제에 등장하는 종교적 단어들은 필자의 종교적 신념이 아닌 벤야민의 메시아주의적 모티프를 계승하는 과정에서 차용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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