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테제들 2

[Über den Begriff der Geschichte]를 모티프로

by 민해경

오늘도 신촌에는 해가 뜬다. 우정과 사랑이라는 이름 아래 이루어진 청춘들의 밤이 지나고, 밤에 터트렸던 폭죽의 찌꺼기, 흥분과 고통을 토해낸 청춘의 흔적들을 남기고, 오늘도 신촌에는 해가 뜬다. 그 청춘들이 사라진 새벽, 해와 함께 출근하는, 그 누구도 기억하지 않는 이름모를 사람들이 있다. 그 사람들은 청춘들의 화려했던 밤을 치우고 어딘가로 사라질 뿐이다. 그 다음 날도, 그리고 다음 주도, 그 다음 해도. 화려한 청춘들의 밤과, 이름 모를 이들의 새벽은 반복된다.


바라볼 뿐이다. 직장을 잃고 집앞을 서성이는 가장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휠체어를 타고 지하철역을 기웃거리는 한 청년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집도 잃고 가족도 잃고 공원에 누워 소주잔을 들이키는 한 중년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타지에서 폭력과 차별에 시달리지만 고국에 가족을 생각하며 하루하루 힘겹게 버티는 외국인들의 뒷모습을 바라볼 뿐이다. 나는 그저 바라볼 뿐이다.


과거를 추억하는 이들이 있다. 이웃끼리의 정이 있었고, 부부 사이의 갈등이 없었고, 자식과 부모가 가까웠고 유대 깊었던. 그 과거를 추억하는 이들이 있다. 그렇다. 그들에겐 그 과거가 추억으로 남았을 지 모른다. 그러나, 그들이 누린 추억에 뒤에는, 고통스러웠지만 잊혀졌고, 지금도 하나의 조각으로 역사란 세계에 바닥에 나뒹구는 종이 부스러기가 되어버린 또 다른 이들이 있다.


잊혀질 것이다. 우리 모두는 잊혀질 것이다. 지금의 찬란함이, 지금의 고독함이, 지금의 괴로움이. 하지만 기억될 것이다. 찬란한 누군가에게 지금의 찬란함이. 고독한 누군가에게 지금의 고독함이. 괴로운 누군가에게 지금의 괴로움이. 비로소 손 잡을 것이다. 잊혀질 우리와, 잊혀진 그들과. 이 모든 걸 기억할 저들이. 그리고, 역사의 한 장을 우리로 채울 것이다.


합리성과 이기심을 예찬한다. 문명의 원동력은 합리성과 이기심이라 말하며, 감성과 인문은 허황되고, 불필요하며 문명의 브레이크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그들은 가족에게 돌아간다. 연인에게, 부모에게, 자식에게. 허황되고 불필요한 행위를 한다. 맞다. 그들의 주장처럼 감성은, 사랑은 브레이크이다. 그러나, 문명의 브레이크가 아닌, 역사의 브레이크이다. 그리고 역사라는 기관차의 멈춤은 종말이 아닌, 파편들이 다시 연결되고, 새롭게 시작되는 기억의 탄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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