혁명적 문화는 또 다른 판타즈마고리아에 불과하다.
예술은 그 사회를 표현하는 하나의 형식이다. 그러므로 예술은 사회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고, 예술작품은 어떤 형태로든 사회의 모습을 드러낸다. 이러한 예술의 성격은 마르크스주의자들이 문화를 보는 시각을 만들어냈다. 이는 현대 사회에도 유사하게 전달되어, 문화예술 분야에서 정치비평의 형식으로 현 체제와 예술작품을 연결시켜 비판하는 형태도 족족 보인다.
예술이 그 사회를 드러내고, 사회의 영향을 받는다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얘기이다. 그러므로 새로운 사회가 도래한다면, 예술 역시 새로운 형태로 자리잡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는 이 지점에서 발생한다. 마르크스주의자들을 비롯한 좌익 세력들은 예술의 정치성을 강조하며, 부르주아적 문화를 파괴하려 하는데 이 대상을 규정함에 있어 매우 권위주의적이라는 점이다.
과거 한국에서 논란이 되었던 작품 중 하나가 [진격의 거인]이란 애니메이션이다. 일본의 제국주의와 식민 지배를 정당화한다는 이유와 학살을 정당화한다는 이유에서인데, 이 지점에서 이 애니메이션은 진보 세력들에게 많은 지탄을 받았다(최근들어 이러한 점을 이대남 논쟁과 연결시켜 이대남이 향유하는 것에서 파시즘적 성젹이 있다고 주장하는 자들이 몇몇 있으나, 반박할 가치도 없기에 넘어가겠다). 그러나 이 애니메이션을 경험한 자라면 알겠지만, 그 어디에도 일본의 과거 행태를 옹호하는 지점은 존재하지 않는다. 문제가 되었던 그 대사 역시, 내용을 이해한다면 충분히 개연성이 존재하는 대사이다.
또한 음악에 대해 어떠한 저항성을 요구하고 자본주의적 문화를 배격하기에 한국의 엔터테인먼트 산업을 부정하는 경향이 존재하는데, 이러한 비판이 체제를 공격하는 데에서 멈추지 않고 각 개인들, 즉 또 다른 노동자들에게 향한다는 점이 모순을 드러낸다(예를 들면 페미니즘 등지에서 여자 아이돌들에 대한 과도한 비난 등).
마르크스주의자들과 진보 세력들의 주장처럼 문화는 사회의 반영이고, 현 시대의 문화는 자본주의적 성격을 분명히 보인다. 그러나 그 대안이 그들의 검열과 선택이라면, 이는 또 다른 판타즈마고리아에 문화를 가두는 것임에 불과하다. 우리는 그 혁명가를 자칭했던 위선자들이 어떠한 행태를 취했는지 역사에서 배웠다. 권위적이고 맹목적인 문화 투쟁은 새로운 억압의 탄생을 부를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