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억은 이렇게 한 끼 식사가 된다

파스타 알라 노르마를 만들며

by Esther Kang

몇 년 전, '파스타 알라 노르마'라는 이탈리아 요리를 알게 되었다. 딸아이가 영화 '옥자'를 본 뒤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언하면서부터였다. 평소 고기를 좋아하던 아이라 금방 마음을 바꿀 줄 알았다. 그러나 예상과 달리, 지금까지도 고기를 입에 대지 않는다. 심지어 육가공품조차도 먹지 않는다.

그해 크리스마스 이브, 어릴 때부터 함께 자란 강아지 장미가 무지개다리를 건넜다. 그 일 이후 딸아이의 슬픔은 깊어졌고, 고기를 먹지 않겠다는 결심은 더 단단해진 듯했다.


자연스럽게 나는 고기가 들어가지 않는 요리를 찾고, 만들어 보는 일이 일상이 되었다. 거기에 더해 어느 날 나에게 갑자기 생긴 조개와 갑각류 알레르기로 인해 먹을 수 있는 음식의 폭은 점점 좁아지고 있었다. 그때 알게 된 요리가 바로 파스타 알라 노르마였다. 이후로 나는 이 요리를 가끔 만들어 먹는다.


처음 이 요리를 알았을 때, 그 탄생 배경이 무척 흥미로웠다. 이탈리아의 한 셰프가 오페라 '노르마'를 보고 감동한 나머지 이 파스타를 만들었다는 이야기도 있고, 시칠리아의 한 극작가가 이 파스타를 맛보고 “오페라 노르마처럼 완벽하다”며 감탄한 데서 이름이 유래했다는 이야기도 있다. 어찌 되었든, 나는 그 이야기에 이끌려 오페라 노르마를 찾아보았다.






오페라 노르마의 배경은 기원전 50년 경 로마 제국 관할 하의 고대 '갈리아(지금의 프랑스 동부 지방)' 이다. 드루이드교의 수장인 오로베소의 딸이자 여 사제인 노르마는 아버지가 백성들을 설득하여 로마에 반란을 일으키려 하자, 자신에게 신의 계시가 없었다는 이유로 반란을 연기 시킨다. 그러나 속사정은 따로 있었다.

노르마는 여사제이기 때문에 정절을 지켜야 함에도 불구하고 로마군 사령관 폴리오네와 비밀리에 결혼하여 두 아들을 키우고 있다. 그러나 폴리오네는 이미 노르마에게서 마음이 떠나 그녀를 위해 일하고 있는 젊고 아름다운 여사제인 '아달지사'를 사랑하고 있었다. 로마로부터 귀환하라는 통지를 받은 폴리오네는 친구인 플라비오에게 자신은 아달지사와 도피할 거라 말하고 뒷일을 부탁한다.

로마군 사령관이 귀환할 것이라는 소문을 들은 드루이드교도들은 이 기회에 자신들의 땅에서 로마 군을 완전히 몰아내려 하고, 폴리오네와 아달지사의 관계를 모르고 있던 노르마는 어느 날 사람들로부터 폴리오네가 젊고 아름다운 여인을 사랑해 함께 도망가려 한다는 소식을 듣게 된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노르마는 죽을 결심을 하지만 잠든 두 아들을 보는 순간 생각을 접는다. 자신을 섬기고 있는 아달지사가 폴리오네가 사랑하는 여인인 것을 모르고 있는 노르마는 만일 자신이 죽게 된다면 두 아들을 보살펴 달라고 아달지사에게 부탁한다.

노르마는 백성들에게 로마군을 공격하라는 신의 계시를 받았다고 말한다. 그 후, 아달지사가 폴리오네의 연인임을 알게된 노르마는 극심한 배신감과 절망감에 빠진다. 드루이드교도들은 로마군과의 전쟁에서 승리하고, 사령관 폴리오네를 생포한다.

노르마는 그에게 아이들을 생각해서 아달지사를 포기하면 목숨을 살려줄테니 아이들과 함께 도망가자고 제안한다. 그러나 폴리오네가 그 제안을 거절하자 노르마는 죽음을 결심한 뒤, 사람들 앞에서 자신이 여 사제로써 정결 서약을 어겼음을 말하고 폴리오네에게 두 아들을 잘 키워달라고 부탁한다.

자신을 희생하려는 노르마의 모습을 본 폴리오네는 깊은 감동을 받고, 노르마와 함께 죽겠다고 말하고 함께 불구덩이 속으로 뛰어들며 막을 내린다.






오페라의 줄거리는 대충 이렇다.... 이 이야기를 딸아이에게 해주다가 나는 터져 나오는 웃음을 참지못하고 그만 박장대소를 하고 말았다. 엄마 무섭게 왜 웃냐고 하는 딸아이의 근심(?)어린 말에도 불구하고 나는 정신없이 웃었다. 폴리오네의 행동이 너무 어이가 없어서였던 것 같다.

다른 여자를 사랑한다고 자식도 버리고 떠났던 사람이, 아내의 희생에 감동하였다며 마지막 순간에 함께 불구덩이로 뛰어든다니... 너무 급작스럽고, 너무 극적이라서 오히려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기 때문이다. 얼마나 웃었는지 눈물이 다 났다. 애가 걱정 할만 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줄거리가 아니라 오페라 자체를 보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빈센초 벨리니의 음악은 믿기지 않을 만큼 아름답고, 오케스트라와 성악가들의 목소리는 이야기를 뛰어넘어 마음을 흔든다.

줄거리의 허술함?마저도 음악 안에서는 하나의 감정으로 녹아버린다. 오페라를 잘 모르는 분이라도, 이 작품은 꼭 한 번 보셨으면 좋겠다. (유튜브에서라도 충분히 그 아름다움을 느낄 수 있으니...)


산산한 봄바람이 분다. 원래는 햇살이 강한 날에 더 잘 어울리는 파스타라고 생각했는데, 이야기를 하다 보니 갑자기 이 요리가 먹고 싶어졌다.

…그런데 가지가 없다. 가지를 따로 튀기는 과정이 조금 번거롭긴 하지만, 홀토마토와 치즈로 맛을 내는 이 파스타는 담백하고 깊은 맛이 있다.

원래는 ‘리코타 살라타’를 사용하지만 구하기가 어려워, 나는 대신 파르미지아노 레지아노를 넣어 만든다. 파스타는 숏파스타인 '카사레체'를 사용하는데 또르르 말려있어 소스가 잘 배어 있고 먹을 때 식감이 색다르다.


편안한 사람들이 모인 어느 날,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며,

노르마를 함께 듣고 이 파스타를 만들어 먹는다면—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행복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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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코타살라타 치즈를 못 찾아서 그냥 리코타 치즈를 넣어 만든 엉성한 나의 첫 번째 '파스타 알라 노르마'




김영하 작가의 '오래 준비해온 대답'이 문득 떠오른다.
아내와 함께 이탈리아 시칠리아 섬에서 한 달을 머물며 보낸 시간들, 스마트폰 대신 공중전화를 이용해 숙소를 예약하던 그 시절의 여행 이야기는 읽는 내내 신선하고도 따뜻했다.

특히 요리에 진심인 작가가 숙소 근처 식료품점 주인들과 나누는 소소한 대화들에는 묘한 온기가 있었다. 그 장면들을 따라가다 보니, 나도 모르게 눈시울이 살짝 젖어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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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도, 요리도, 책도…
그저 떠올리는 것만으로 마음이 따뜻해진다.

이 소소한 순간들이
얼마나 감사한 선물인지 새삼 느낀다.

점심이 다 되어 맞이하는 오늘의 첫 끼,
혼자이지만
나를 대접하는 마음으로
오랜만에 파스타 알라 노르마를 만들어 봐야겠다.





https://youtu.be/GN75XDDm_DI?si=1edtvh2-cAZF24Ws





https://youtu.be/s-TwMfgaDC8?si=KAaZcMg-mxnYZaT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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