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황이라는 이름의 예열: 고흐가 내게 건낸 대답

사라진 해바라기를 찾아서 내셔널갤러리에서 예술의전당까지

by Stella

작년 8월, 2주간의 런던 여행 중 내셔널 갤러리를 일주일 간격으로 두 번 찾았다. 첫 방문은 가이드의 친절한 설명을 듣기 위함이었고, 두 번째 방문은 그 지식들을 온전히 내 것으로 소화하며 딸과 함께 그림에 대한 깊은 대화를 나누고 싶어서였다. 그런데 이상한 일이었다. 불과 일주일 전 그 자리에 당당히 걸려 있던 고흐의 '해바라기'가 감쪽같이 사라진 것이다. 타국에서 열리는 전시를 위해 먼 길을 떠났으리라 짐작하며, 못내 서운한 마음을 안고 발길을 돌려야 했다.

그 아쉬움이 닿았던 것일까. 여행에서 돌아온 후 한국에서 고흐 전시회가 열린다는 소식을 들었다. '혹시 런던에서 사라진 그 해바라기가 한국에 온 걸까?' 하는 설레는 기대를 품고 지난 2월의 어느 토요일, 딸의 손을 잡고 예술의전당으로 향했다. 강남역의 소란함을 지나 마을버스를 타고 서초동 골목골목을 돌아 도착한 그곳엔, 40분의 기다림을 기꺼이 감내하는 긴 행렬이 나를 맞이하고 있었다.

전시실을 메운 초기 데생 작품들을 살피던 딸이 툭 한마디를 던졌다. "엄마, 고흐는 어느 한 가지도 진득하게 하지를 못했던 것 같아."

과연 그랬다. 그는 목사, 점원, 교사 등 수많은 직업을 전전하며 생의 전반부를 지독한 방황으로 채웠다. 하지만 나는 그 방황의 끝에서 그가 발견한 화가의 길에 주목한다. 어쩌면 그 길고도 지루했던 '나와 맞지 않는 옷'들을 입어보는 시간이 있었기에, 그는 뒤늦게 잡은 붓 앞에 자신의 모든 혼신을 쏟아부을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천직(天職)이란 하늘이 뚝 떨어뜨려 주는 것이 아니라, 수많은 오답을 지워나간 뒤에야 비로소 남겨지는 정답 같은 것일지도 모른다. 고흐에게 방황은 본질로 이끄는 가장 뜨겁고도 정직한 예열이었다.

최근 읽고 있는 나탈리 골드버그의 저서 '뼛속까지 내려가서 써라'의 문장들이 전시장 벽면에 겹쳐 보였다. 예술이든, 글쓰기든, 혹은 각자가 맡은 어떤 직업적 소명이든, 우리는 결국 바닥까지 내려가는 치열함을 통과해야만 한다. 뼛속까지 내려가 자신을 대면하고, 그 진액을 짜내어 캔버스를 채우는 일. 고흐의 삶은 바로 그 치열함의 증명이었다.

이번 전시는 대중적으로 유명한 화려한 걸작들보다 고흐의 인생 그 자체에 렌즈를 맞추고 있었다. 초기의 투박하고 거친 데생들로 가득한 전시장에도 인파가 끊이지 않는 것을 보며 깨달았다. 사람들이 열광하는 것은 단순히 화려한 색채가 아니라, 고흐라는 한 인간이 거쳐온 '지독한 방황과 스토리텔링'의 힘이라는 것을.

서른일곱, 불꽃 같은 생을 스스로 마감한 고흐. 평생 단 한 점의 그림만을 팔며 동생 테오에게 의지했던 그의 삶은 객관적으로 보면 지독히도 불운했다. 하지만 나는 질문을 바꿔본다. 만약 그가 유복한 환경에서 안락하게 그림을 그렸다면 우리는 지금과 같은 감동을 느낄 수 있을까? 그의 불행이 우리의 동정심을 자극했다는 시선도 있겠지만, 확실한 것은 그가 가닿았던 '뼛속 깊은 몰입'의 밀도만큼은 거짓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그 밀도는 그가 거쳐온 숱한 방황의 깊이만큼 단단해졌을 것이다.

전시장을 나오며 스스로에게 질문을 던져본다. 고흐가 방황 끝에 안착한 화가라는 길이 그의 천직이었듯이, 나는 과연 나의 천직을 찾았는가. 그리고 나는 내가 찾은 나의 현장에서 얼마나 바닥까지 내려가 보았는가. 고흐가 마주했던 그 정직한 고독과 몰입의 시간을 떠올리며, 내가 맡고 있는 일들과 역할에 대해 '뼛속까지' 진심을 다해보리라 다짐해 본다.

동시에, 아직도 나의 길을 찾는 중인 누군가에게, 혹은 여전히 헤매고 있는 나 자신에게 말해주고 싶다. 더 많이 고독해도 괜찮다고, 더 치열하게 방황해도 좋다고. 그 방황이 길어질수록 우리가 발견할 진짜 나의 모습은 더욱 선명해질 것이기에. 해바라기는 비록 내 눈앞에 나타나지 않았지만, 그보다 더 선명한 예술가의 '진짜 뒷모습'을 본 기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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