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치관: 불이익을 알면서도 선택하게 만드는 힘

나를 잃지 않으면서 살아가는 방법

by Stella

어느 날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자율학습 감독인 담임선생님께서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퇴근 시간을 훨씬 지난 교무실에는 나와 선생님 이외에는 아무도 없었다. 나는 교무실에서 선생님이 이끄는 대로 선생님 옆자리에 앉았다. 나는 담임선생님과의 상담시간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예상대로 선생님께서는 공부는 열심히 하고 있는지, 또 반장으로서 어려운 일은 없는지를 물으셨다. 그렇게 몇 마디의 대화가 오가고 약간의 정적이 흘렀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선생님께서는 본인이 맡고 있는 담당 과목의 교과서를 힐끔힐끔 보면서 몇 개의 질문을 하셨다. 나는 ‘아, 선생님이 내가 공부를 열심히 했는지 안 했는지 검사하려고 그러시나 보다’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며칠 후였다. 월말 시험을 보는데 선생님께서 질문하셨던 것들이 시험 문제에 나와 있지 않은가. 당황스러웠다. 하지만 선생님께 왜 그러신 건지 물을 수는 없었다. 이 일은 나만의 문제는 아니었다.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교무실에 불려 간 반 아이들은 나뿐만은 아니라서 서로 말은 하지 않았지만 모두들 암묵적으로 동조하고 있는 듯한 분위기였다.

다음 달이 되었다. 월말고사를 며칠 앞둔 야간 자율학습 시간에 담임선생님께서는 또 나를 교무실로 부르셨다. 걱정했던 그 일이 다시 되풀이될 것 같은 불안감을 안고 교무실로 갈 수밖에 없었다. 전과 같이 선생님께서는 나에게 몇 가지 문제를 물어보려고 하셨다. 나는 “선생님, 저한테 시험문제 가르쳐주지 마세요. 제가 열심히 해서 제 실력으로 받은 점수여야 제가 당당할 수 있어요”라고 단호하면서도 절박하게 말했다. 당황한 선생님의 얼굴을 뒤로하고 쿵쾅거리는 가슴을 안은 채 나는 교실 내 자리로 돌아왔다.

어린 십 대 학생 눈에 비친 선생님은 이상한 분이셨다. 바르고 정직하게 실력을 키우고 그것으로 인정받고자 하는 학생에게 격려를 해주셔야 마땅한데, 선생님은 그러지 않으셨다. 오히려 나는 학년이 끝날 때까지 일 년 내내 담임선생님으로 인해 괴로운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학년 말에 담임선생님이 작성하신 <생활기록부>의 개인 발달상황에 적힌 나에 대한 부정적인 코멘트까지 덤으로 얻게 되었다.

나는 정직한 사람이 되기를 원했고 그래서 잘못된 행동을 하는 담임선생님께 그것이 옳지 않음을 말씀드린 건데 그로 인해 호된 대가를 치르게 된 것이었다.

어린 나이에 내가 지키고자 하는 정직이라는 가치관은 이렇게 나에게 많은 상처와 불이익을 주었다. 성인이 된 후 나는 가끔 그 시절을 되돌아보곤 했다. 하지만 다시 그때로 돌아간다고 해도 나는 똑같은 선택을 할 것이고, 또 일 년 내내 힘든 학교생활을 감당해 낼 것이다.

십 대 때 내 선택은 막연히 옳지 않은 것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 것인지 모른다. 그런데 이후 나의 경험과 지식이 쌓여가면서 점점 더 구체적으로 가치관을 확립해 나갔고, 윤리적인 면에 있어서는 타협의 가치가 없다는 것을 더욱더 절실하게 느끼게 되었다.

만약 그러한 상황이 지금 다시 발생했다면 나의 선택은 그때와 같을까? 기본적으로 똑같겠지만 내가 표현하는 방식은 조금 달라졌을 것 같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 당시 ‘내가 좀 더 솔직하고 차분하게 말씀드렸으면 어땠을까?’ 하는 아쉬움은 남기 때문이다. 선생님 입장에서는 좋은 방법은 아니었지만 선생님 나름의 방식으로 제자를 생각하는 마음에서 하신 일이었을 것이다. 나는 그때 옳지 못한 일에 대한 두려운 마음이 앞선 나머지 순식간에 그러지 마시라고 단호하게 말을 했었다. 그 말이 그런 선생님에게는 상처가 될 수도 있다는 생각은 미처 하지 못했던 것이다. 내가 그 일로 얼마나 무서운지, 얼마나 스트레스를 받는지를 먼저 말씀드리고 선생님이 좋은 결론을 낼 수 있게 했으면 어땠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랬다면, 아마 나는 일 년 내내 힘든 학교생활을 감당하지 않아도 되지 않았을까?

가치관은 내 인생의 방향이 되어주는 것, 내가 선택하는 기준이 되어주는 것, 다시 선택의 순간으로 돌아가 그 선택이 주는 불이익을 잘 알아도 결국에는 그렇게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힘이다. 이것이 올바른 가치관의 정립이 중요한 이유이다. 우리의 사회는 상당히 빠르게 변하고 있다. 오히려 이렇게 빠르게 변하는 환경에서는 주변에 휩쓸리지 않고 우리에게 귀중하고 소중한, 영원히 변하지 않는 가치관을 찾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의 일관된 의사결정과 행동원칙이 된다. 그리고 우리는 점점 시간이 지나면서 우리의 일관된 가치관을 좀 더 세련되게 표현하는 방법을 익혀나갈 것이다. 무엇보다 중요한 ‘나’라는 사람을 잃지 않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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