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나를 어찌할 수 없어

런던의 유학생과 한국의 조직문화

by Stella

오로지 여행만을 목적으로 2주간의 런던행을 계획했습니다. 출장으로 잠시 스쳤던 런던은 늘 '언젠가 한 번쯤 길게 살아보고 싶은 도시'로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여행을 준비하며 런던 유학생들의 일상을 다룬 영상들을 접하게 되었고, 그곳에서 마주한 현실은 생각보다 팍팍했습니다.


직접 경험한 런던의 물가, 서비스, 음식, 그리고 치안은 어느 것 하나 우리나라보다 만족스럽지 않았습니다. 곧 한국으로 돌아갈 여행자인 저와 달리, 학업을 마친 뒤에도 고국으로 돌아오지 않고 수입의 60%를 월세로 지불하며 고군분투하는 유학생들을 보며 한 가지 의문이 생겼습니다.


'무엇이 그들을 이 척박한 타국에 붙들어 매어두는 것일까?'


어느 유튜버는 이를 두고 ‘너는 나를 어찌할 수 없어’라고 표현하더군요. 우리나라의 관료적이고 경직된 조직 문화, 그 안에서 개인이 느껴야 하는 모멸감이 그들을 다시금 런던의 비싼 월세방으로 발걸음을 돌리게 만든 요인이 아닐까 싶었습니다.


저의 첫 직장은 글로벌 IT 기업이었습니다. 그곳의 핵심 가치는 '개인에 대한 존중(Respect for the Individual)'이었습니다. 매니저가 되기 위해 받는 교육 중에는 'Derailment Factor', 즉 직원들에게 절대 해서는 안 되는 언행에 대한 지침이 엄격하게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자율 좌석제를 시행하며 어디서든 일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췄을 때, 매니저들에게 강조된 수칙은 인상적이었습니다.


“직원에게 전화해서 '지금 어디야?(Where are you?)'라고 묻지 마세요.”

회사는 직원을 전적으로 신뢰했고, 규정된 비용의 한도보다 직원의 판단을 먼저 믿었습니다. 저는 23년 동안 그런 신뢰와 존중에 익숙해졌고, 저 또한 회사에 깊은 로열티를 느꼈습니다. 하지만 이후 국내 대기업과 정부기관, 금융그룹 등으로 자리를 옮기며 마주한 풍경은 사뭇 달랐습니다.


어느날 임원 회의에서 한 인사 담당 임원이 이런 말을 한적이 있습니다. “출장을 주말 끼고 수요일에 가는 직원이 있는데, 주말 일비와 식비를 제외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직원을 잠재적 부정행위자로 간주하는 시선에 저는 큰 충격을 받았습니다. 회사 눈치를 보느라 2인 1실 호텔을 쓰겠다는 직원을 만류하며 마음이 씁쓸했던 적도 있습니다.

'디지털 트랜스포메이션'을 외치고 '데이터 기반의 의사결정'을 주장하지만, 정작 최고경영자는 자신의 관심사에 맞춰 독단적으로 결정하고 조직은 그 결정을 정당화하기 위해 데이터를 왜곡합니다. 투명하지 않은 의사결정에 문제를 제기하면 돌아오는 답은 '가만히 있는 게 좋다'는 것이었습니다.

조직의 발전을 가로막는 것은 역설적이게도 리더들 자신입니다. 불확실성의 시대, 창의성은 다양한 목소리가 안전하게 울려 퍼질 때 피어납니다. 나와 다른 경험을 가진 사람, 다른 생각을 가진 직원이 목소리를 낼 수 있는 문화인가? 그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리더인가?


지금도 많은 조직에서 윗사람의 지시에 자기 목소리를 내는 사람을 '저성과자'로 낙인찍곤 합니다. 하지만 기억해야 합니다. 구성원 전체의 역량을 합친 것보다 더 뛰어난 리더는 없다는 사실을요. 진정한 다양성은 '나'라는 사람을 잃지 않으면서도 조직과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문화 속에서 의미를 가집니다.


결국 런던의 유학생들이 지키고 싶었던 것은 비싼 월세를 감당하고서라도 맞바꾼 '개인으로서의 존엄'이었을지도 모릅니다. 우리 조직은 과연 그들에게 어떤 대답을 줄 수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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