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짐의 무게에 압도된 채 새로운 땅에 도착했다.
온라인으로 제일 저렴한 대형 이민가방을 주문했다. 어학연수 기간이 얼마나 될지 몰랐고 처음 떠나는 상황이라 나는 참 용기가 있었다. 짐의 무게에 압도되면서도 동시에 새로운 삶의 시작을 꼼꼼하게 준비하려 애썼다. 내가 짐을 끄는 것이 아니라 짐에 내가 끌려오면서도 그게 가능할 거라 생각했던 것이다. 덴버 공항에서 나의 무거운 짐을 나눠 들어줬던 두 천사들의 모습이 기억난다. 내가 그 소란스러운 공항에서 무슨 인사를 제대로 할 수 있었을까. 정신이 멍하지만 최대한 공손하게 Thank you. Thank you so much. 나에겐 그 인사가 최선이었다.
어느새 콜로라도, 웨스트민스터라는 도시, 대형 아파트 단지에 도착하여 2층으로 안내를 받았다. 담당자와 같이 계단으로 60kg의 짐을 끌고 올라갔다. 방 2개, 화장실 2개, 총 4명이 함께 하우스 쉐어를 하는 시스템이었다. 어학교 Dormitory 신청을 했기 때문에 호텔이 아닌 이 도미토리 즉, 기숙사로 바로 입실한 것이다.
총 4명이 함께 살아야 하는 공간에 내가 첫 번째로 도착하였다. 나는 앞이 캄캄하고 가슴이 답답했다. 아직 긴장의 끈이 놓아지질 않는 데다가, 여정의 여독이 풀리지 않은 상태였다. 미국 땅에 홀로 던져진 기분이어서 나는 얼마간 눈물을 흘리지 않을 수 없었다. 주님, 내가 주저함 없이 이 땅을 밟음이 나를 붙드시는 주의 은혜가 맞지요? 한번 도전해 보겠습니다.
햇빛과 바람이 잘 드는 방 1로 자리를 잡았다. 방 1은 방 2와는 다르게 화장실이 분리되어 있었지만 당시에는 창으로 들어오는 햇살과 고요함의 냄새가 그렇게 좋을 수가 없었다. 전망은 그냥 일반적인 2층 전망이고 바깥은 주차장인데도 약간은 구석에 있는 동이라서 고요했다.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 주변을 둘러보게 되면서 침대 매트리스, 냉장고, 가스레인지, 매트리스 커버, 휴지, 전화기, 식기류 등은 준비되어 있음을 확인했다. 그런데 세탁기는 없고, 또, 물은 어떻게 마시라는 거지? 침대 매트리스를 보니 절망적인 심정이 더해지다가, 내가 가져온 이불을 바라보고 다시 마음이 반쯤은 풀이 꺾이며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압축팩을 풀고 옷장에, 그리고 침대 두 개와 책상 두 개에 필요한 짐을 풀어보았다. 그리고 친구들이 선물해 준 문장 카드와 책, 앨범, 시계 등을 촬영했다. 나는 사물 하나하나에 의미를 두며 혼자 허공에 대고 감사 인사를 했다. 정리를 잘하는 편은 아니어서 물건을 늘어놓기에 바빴지만 혼자 사용하는 데는 큰 문제가 없었다. 어떤 공간이, 어떤 위치가 더 나에게 잘 맞을지 확인해 보았다.
짐을 풀고 잠시 나와 단지 내를 둘러보았다. 학교, 버스정류장, 코인세탁실, 식수를 담을 수 있는 휴게 공간으로부터 약간 거리가 있었고, 수영장까지의 거리는 생각보다 가까웠다. 이제부터 자주 야외 수영을 즐기고, 빨래는 손으로 하며, 식수는 보리차로 끓여 마시는 생활이 시작된 것이다. 한참을 걷다 보니 입구 쪽에 다행히 SAFEWAY 마켓이 보였다.
어딜 가든 사람 사는 곳이니, 비슷해. 낯선 땅이라고 겁낼 것 없어. 서로 도와가며 삶을 창조해 나가는 것이 중요해. 다 그렇게 살게 마련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