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민현석 Jan 29. 2020

이성적 목표 달성과 감성적 충만함

나의 2019 KBO

 새로운 해, 새로운 학기와 같이 새로운 출발은 항상 기쁨과 설렘을 동반한다. 지난 2019년 내게 가장 새로웠던 것은 ‘두산베어스 대학생 마케터’였다. 프로 구단 마케팅 실무 경험을 할 수 있는 기회였다는 점, 지난해까지 10년 연속 100만 관중을 동원한 구단이라는 점, 집에서 가까운 구장이라는 점까지 장점은 파면 팔수록 많아졌다. 심지어 26기의 막바지를 함께 한 현수와 함께하게 되었다. 새 출발에 대한 기쁨과 설렘이 저 많은 장점들에 무뎌질 정도였으니 대학생 마케터에 합격할 당시 내 기쁨이 얼마나 컸을지 지금은 상상이 가지 않는다.

 주변에서도 많은 부러움을 샀다. ‘선수들을 가까이서 볼 수 있냐'는 질문은 셀 수 없을 만큼 들었고, 우스갯소리로 “나도 같이 하게 해 달라”는 협박을 하는 친구도 있었다. 그런 이야기를 듣던 나는 기분이 좋을 수밖에 없었다.


현장에서 만난 사명감과 책임감

 하지만 한 시즌의 모든 순간이 행복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대학생마케터 OT날 마케팅팀 팀장님께 들었던 첫마디는 “너희들이 볼 수 있는 온갖 군상의 사람들을 보게 될 거야.”라는 묵직한 현실이었다. 설렘을 안고 잠실야구장으로 향하던 가벼운 발걸음이 무색할 정도로 팀장님께서는 현실적인 이야기를 덤덤하게 말씀해주셨다. 대학생 마케터 담당 과장님께서도 힘들면 자신에게 이야기하라는 말씀을 자주 해주시곤 하였다.

 ‘얼마나 힘들길래 그러시지?’라는 마음속의 의문은 당장 개막전 당일에 답 할 수 있게 되었다. 게이트 입장 20분 전부터 하늘에서 비와 우박이 떨어지기 시작하며 개문 시간은 예고 없이 늦춰졌다. 선착순으로 증정하는 여권 이벤트에 참여하기 위해 2시간 전부터 입장 줄을 서 있던 팬들은 기다리는 시간에 지쳐가고 있었다. 예민해진 팬들은 “왜 1인당 하나밖에 증정을 하지 않느냐?”, “여권을 왜 굳이 선착순으로 주느냐?” 등 어려운 질문을 날카롭게 걸어왔다. 비가 와서 젖은 여권에는 도장이 제대로 찍히지 않아 이에 대한 컴플레인도 넘쳐났다.

  9월 한 달간 선수 포토카드를 증정하는 이벤트를 할 때는 더 심했다. 포토카드가 무작위로 한 장씩 제공이 되다 보니 자신이 원하지 않는 선수의 카드를 뽑는 팬들이 많았고, 교환이 되지 않는다는 공지를 했음에도 일부 팬들로부터 바꿔달라는 요구와 한 장만 더 달라는 요구에 대응해야만 했다. 배포자가 바쁜 틈을 타 박스에서 몰래 몇 장을 더 가져가려는 팬들도 간혹 있었고, 어떤 팬은 내 신발에 포토카드를 던지고 가며 교환 불가에 대한 불만을 표출하곤 했다.

  물론, 이러한 사례는 극소수이지만 현장에서 직접 겪어보니, 대중의 관람 문화 개선은 끊임없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뼈저리게 체감했다. 무엇보다 야구단의 내부자로서, 넓게는 스포츠산업 종사 희망자로서 지속적으로 고민해야 할 문제라고 생각했다. (비단 프로스포츠 관람에서만 해당되는 이야기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이러한 작은 사명감 하나하나가 ‘온갖 군상의 사람들’을 만나면서도 버텨내며 스스로 성장할 수 있게 해 준 일종의 디딤돌이었다.

출처: 두산 베어스 페이스북

이 맛에 현장에

 위의 이야기처럼 힘든 순간들이 있었으나 행복한 경험도 정말 많았다. 더운데 고생이 많으시다며 음료수를 건네주시는 팬을 만날 때처럼 소소한 행복을 느낀 적도 있었고, SNS 콘텐츠 제작을 마무리한 이후에 프런트로부터 잘해 주어서 고맙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도 정말 행복했다.

 결과론적인 이야기지만, 다른 해가 아닌 올해에 두산의 대학생 마케터로 근무할 수 있던 것은 야구팬으로서 최고의 특권이었다. 9경기 차를 뒤집은 역대급 정규 리그 우승과 한국시리즈 우승까지 베어스가 V6에 등극하는 역사의 현장에 함께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한국시리즈 6번째 우승을 차지하던 날, 경기장 가운데서 통천을 펼치는 행사에 참여한 순간은 잊을 수가 없다. 통천을 쥐고 2루 베이스 뒤에 서 있던 내 앞에서 서로를 꼭 껴안고 눈물을 흘리던 오재원과 김재호 선수를 보니 내가 뛴 것도 아닌데 마음이 벅차올랐다. 관중들의 환호소리, 서로를 부둥켜안고 기뻐하는 선수들. 분명 쉽지 않은 한 시즌이었음에도 그러한 기억은 이미 사라진 지 오래였다.

 이러한 감성의 최고조에 달한 순간, 담당 과장님께서 “너희들이 열심히 해줘서 우리가 우승한 거야.”라는 말을 건네셨다. 설령 립 서비스일지라도 그 말 한마디가 행복의 결정체였으며, 내가 왜 이 일을 하고 싶어 했는지, 그리고 앞으로 왜 이 일을 계속하고 싶을지에 대한 모든 이유가 되어주었다.


 2018년, 스포츠마케팅 학회 ‘SMR’을 수료하며, ‘프로스포츠 현장 경험’이라는 거창하지만 막연한 목표가 있었다. 처음에는 주변의 부러움을 사는 나 자신이 뿌듯했고, 목표를 금방 이룰 수 있겠다는 생각에 행복했다. 그러나 시즌 중에 일을 하면서 ‘과연 이 일이 내가 하고 싶은 게 맞는지’에 대한 고민을 했던 때도 있었다.

 글을 쓰고 있는 지금 돌아보니, 수료 후에 현장 경험이라는 목표를 정하길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이 일을 할 때 가장 활기찼고, 기뻤다. 그리고 나 스스로 현장에서 배워나갈 점과 개선하고 싶은 점을 찾은 이성적인 목표의 달성을 할 수 있었던 좋은 기회였다. 무엇보다 ‘비 온 뒤에 굳어진 땅’과 같은 내 모습을 발견할 수 있었다.

 SMR이 내 인생과 커리어의 전환점이라면, 두산 베어스 대학생 마케터로 보낸 2019 KBO는 나와 스포츠 현장 간의 매개체이자 새로운 목표에 대한 촉진제였다. 앞으로 어떤 새 출발을 하고 싶은지 계획은 있으나, 결정된 것은 없는 상태다. 그 계획이 계획대로 실행될 수 있도록, 이를 통해 더 높은 곳으로 나아갈 나 스스로를 찾아가길, 그리고 더욱 발전하길 원한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