늘 그렇듯 언제나 존재하는, 세상의 이면
여러분께서는 첫 연봉에 1000만원을 더하기까지 몇 년이 걸리셨는지요?
사람인이 지난 2019년 1월 조사한 바에 따르면, CEO스코어데일리 기준으로 매출액 상위 50대 기업 근로자는 직급이 오를 때마다 평균 연봉이 1056만원 가량 상승했습니다. 승진에 드는 기간을 고려하면 못해도 대략 3~5년씩은 버텨야 연봉이 1000만원씩 뛰는 셈이죠.
그렇기에 최근 게임업계에서 벌어지는 연봉 상승 릴레이는 가히 파격이라 불릴 만합니다. 지난달 1일 게임회사 넥슨이 재직자 연봉을 800만원씩 올려주겠다 선언하자 동종업계사인 넷마블, 컴투스, 게임빌, 스마일게이트도 같은 폭의 인상안을 내걸었고, 크래프톤은 한술 더 떠 재직자 연봉을 2000만원씩 더 주겠다 발표했습니다.
사실 샐러리맨 입장에선 연봉 인상만큼 매력적인 제안도 드뭅니다. 지난해 4월 신한은행이 발표한 '2020 보통사람 금융생활 보고서'에 따르면, 직장 경력 2년 미만인 25~34세 사회초년생 중 20.3%는 이직 시 연봉 1000만원 상승을 바란다고 답했다 합니다. 심지어 16.0%는 연봉을 100만원만 더 줘도 회사를 옮기겠다고 응답했습니다. 그런 만큼 새 환경과 업무에 적응하는 리스크와 부담도 없이 이직을 수차례 성공한 만큼의 임금을 단숨에 올려 받는 것은 분명 흥겨운 이벤트일 것입니다.
하지만 게임업계의 연봉 잔치를 걱정 섞인 시선으로 바라보는 이도 존재는 합니다. 물론 그들도 ‘판교의 등대’에 갇혀 격무에 시달렸던 게임사 직원들이 정당한 보상을 받는 것 자체를 비판하진 않습니다. 게다가 말이야 돈잔치라고는 하지만, 실상 기업이 고액 연봉을 제안하는 이도 대부분은 업계에서 이미 검증을 마친 실력자라 '마구잡이 돈뿌리기'로 간주하는 여론도 그리 많진 않습니다. 다만 인건비 상승을 충분히 감당할 정도로 업계의 흥행이 이어질지를 염려할 뿐입니다.
현재 국내 게임계엔 파란이 연속해 덮쳐오고 있습니다. 지난 1월 초 넷마블이 유통하는 게임인 Fate/Grand Order 이용자들이 운영진의 홀대에 반발해 들고 일어난 것이 발단이었습니다. 게이머들은 해외 서버에 비해 국내엔 보상을 적게 주면서 이를 벌충하던 이벤트마저 끊어버린 넷마블의 행각을 규탄했습니다. 이 과정에서 일부 게임사들이 과금 유도를 위해 확률 조작을 했다는 의혹까지 제기됐고, 결국 국회에서 업계를 규제하는 법안이 발의되기에 이르렀습니다.
사태 이후 넷마블을 비롯한 게임 회사들이 유저 의견을 반영하며 개선에 나섰지만, 국회와 정부가 일단 뽑아든 칼을 조용히 집어넣을지는 미지수입니다. 황희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지난달 26일 국회 문체위 전체회의에서 "확률형 아이템 정보 공개를 법적으로 의무화하는 데 동의하며, 별도로 게임산업 활성화 방안을 내놓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는 지난 22일 열린 게임업체 및 게임산업협회 관계자들과의 간담회에서도 "지금이라도 확률형 아이템 정보공개 법정화를 통해 이용자의 불신을 해소하고 게임 자체의 경쟁력을 높이는 방식으로 나아가야 한다"고 밝혔습니다. 이처럼 정부의 의지가 확고한 만큼 게임업계는 장차 상당한 제재를 당할 가능성이 크며, 다수 업체는 이에 따른 수익 감소도 불가피할 것입니다.
무너지는 둥지에 담긴 알이 무사하길 바랄 순 없듯, 기우는 회사에서 좋은 처우가 계속되길 기대하긴 어렵습니다. 중국 슈퍼 리그(CSL)에 속했던 장쑤 FC가 좋은 사례입니다. 3부 리그를 맴돌던 이 팀은 2016년부터 모기업 쑤닝 그룹의 막강한 자금력에 기대 조(34·브라질), 하미레스(34·브라질) 등 스타급 선수들을 끌어모았고, 지난해엔 이탈리아 세리에A(1부 리그) 인테르 출신인 에데르 마르틴스(35·이탈리아)와 주앙 미란다(35·브라질)를 앞세워 1부 리그 우승컵까지 들어 올렸습니다.
그러나 오프라인 매장 의존도가 높던 쑤닝 그룹이 최근 코로나19 사태를 맞아 경영난에 빠졌고, 지난달 28일엔 끝내 축소 경영 방침을 밝히며 장쑤 FC 해체를 선언했습니다. 전년도 리그 챔피언이 3개월 만에 공중분해 당하는 초유의 사태가 발생한 것입니다. 자연히 고액 연봉을 받던 선수와 임직원들도 하루아침에 실업자로 전락했죠.
미국에도 비슷한 사례가 있습니다. 지난 2012년 파산을 신청한 뉴욕의 대형 로펌 듀이 앤드 르부프(Dewey & LeBoeuf, 이하 듀이)입니다. 듀이는 전성기 시절 변호사 1400명을 거느리고 해외 지사만도 15개 국가에서 26개를 운영하던 초대형 로펌이었습니다. 그러나 경쟁사에서 인재를 빼내기 위해 과도한 연봉을 제시하는 전략을 쓰다 재정난에 빠졌고, 위기에 대처한다며 파트너급 변호사의 급여를 대폭 삭감해 주요 임직원이 무더기로 이탈하는 사태를 초래했습니다. 당시 전문가들은 "성장 전략과 경쟁자 제압에만 집착해 내실을 다지지 않은 것이 패착이다"고 평했습니다.
그럼에도 게임사들이 적어도 당분간은 ‘연봉 레이스’를 중단하긴 어려울 전망입니다. 게이머들의 반발과 정부 규제로 인한 재정 악화는 미래의 불확실한 위협이지만, 인재 유출은 당장에 회사의 흥망을 좌우할 턱 밑의 칼날이기 때문입니다.
한 중소 게임사 현직자는 “특히 규모가 작은 기업일수록, 에이스를 뺏기면 적자 흑자 따질 것도 없이 무조건 망한다”며 “그러다 보니 재정이야 어떻건 봉급 인상을 고려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