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해봐요 저한테 왜 그랬어요
사탕과 초콜릿 몇 알, 스타벅스 텀블러, 펜 두 자루, 영화 티켓 한 장.
지난 6월부로 근속 27주년을 맞은 케빈 포드씨에게, 매장 측에서 지급한 선물은 이것이 전부였습니다. 올해로 쉰넷인 포드씨는 미 네바다주 라스베이거스 맥카렌 공항 내 버거킹 점포에서 생의 절반을 보냈습니다. 지난 1995년 사원증을 받은 이래 그는 단 하루도 휴가나 병가를 쓰는 일 없이 요리사 겸 현금 수납원 업무에만 충실했습니다. 최근 4년 동안엔 일에 치여 다른 지역에서 지내는 딸과 손주 얼굴을 볼 여유조차 없었다 합니다.
그는 선물 꾸러미를 풀어 헤치는 모습을 찍어 틱톡에 올렸습니다. 언박싱 영상은 오래지 않아 네티즌들 사이에서 상당한 화제가 됐습니다. 보는 이 모두가 근속 포상의 하찮음에 놀랐습니다. 카메라에 비친 포드씨는 선물을 자랑스레 소개하며 기뻐하는 모습이었습니다. 그 점이 오히려 보는 이들의 마음을 한층 더 아프게 했습니다.
포드씨의 딸 세리나는 '고펀드미(GoFundMe)'를 활용해 온라인 모금 캠페인을 벌였습니다. 싱글대디로 자식들을 키워온 아버지에게 ‘노고에 걸맞은 상’을 주고 싶다는 이유였습니다. 5000달러를 쾌척한 배우 데이빗 스페이드를 비롯해, 약 1만2000여명이 기부에 동참했습니다.
지난 7월 7일까지 모인 돈은 한화 기준으로 약 5억원에 달했습니다. 포드씨는 “불평을 하려고 찍은 영상이 아니며 그 선물엔 여전히 고마운 마음이다”면서도 “기부를 해주신 모든 분께 감사하다, 꿈이 이루어진 것 같다"고 말했습니다.
특별한 시기나 기념할 만한 이벤트를 맞아 거느리는 직원들에게 선물을 주는 기업은 그리 드물지 않습니다만. 시장 분석력이나 마케팅 역량이 상당한 회사마저도 정작 내부 임직원에게 제공하는 포상만큼은 그 퀄리티나 방향성이 미묘한 경우가 은근히 흔합니다. 고객의 니즈나 선호는 기가 막히게 읽어내면서도 직원들의 욕구나 희망 파악은 희한할 정도로 서툴러 ‘주고도 욕먹을’ 선물을 건네는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인데요.
지난 2019년 3월에도 이와 궤가 비슷한 사건이 하나 있었습니다. 당시 프랑스의 항공기 제조사인 다쏘(Dassault)에선 임원 한 명이 은퇴를 앞두고 있었는데요. 회사는 곧 직장을 떠날 그를 위해 전례 없는 ‘깜짝 선물’을 제공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바로 다쏘에서 제작한 전투기인 ‘라팔’에 탑승할 기회를 주는 것이었습니다.
라팔 비행 체험은 귀빈이나 미디어를 대상으로 제한적으로만 운영하는 프로그램이었습니다. 내부 임원이라 할지라도 시시하거나 하찮은 수준으로 치부할 만한 이벤트는 결코 아니었죠. 그렇기에 동료들은 이 체험이 상당히 의미 깊은 선물이 되리라 확신했고, 그의 놀라움과 기쁨을 최대한으로 끌어올리고자 비행 4시간 전에야 전투기 탑승 행사를 준비했다 알렸습니다.
문제는 그 임원이 전투기 비행엔 전혀 관심이 없었다는 것이었습니다. 당연히 라팔이고 뭐고 간에 전투기 탑승 자체가 조금도 달갑지 않았지만, 이미 흥에 겨운 직원들을 실망시키고 싶지 않아 비행을 차마 거절하진 못했다 합니다.
황급히 준비한 이벤트인 만큼 실행 과정엔 구멍이 많았습니다. 탑승에 앞선 때에도 임원은 전투기 비행이 수반하는 신체적 스트레스에 관해 안내받은 바가 없었습니다. 조종사 역시 탑승자의 나이·신체 상태 정보를 고려해 비행 강도를 조절하라는 언질을 전해 듣지 못했습니다. 한껏 들뜬 동료들은 비행복과 헬멧을 대충 입혀준 데다 좌석 고정 상태도 제대로 확인하지 않았습니다.
전투기는 파리 동쪽 생디지에 공군기지를 이륙하고야 말았습니다. 라팔이 급상승하자 탑승자에게 미치는 중력은 지상의 4배인 4G까지 치솟았습니다. 조종사가 기수를 내리며 급강하하자, 돌연 임원의 몸이 좌석을 벗어나 공중으로 붕 떠올랐습니다. 자리에 단단히 매이지 않았던 탓이었습니다. 당시 그가 착용한 스마트워치 기록에 따르면 심박수는 분당 거의 150회에 달했습니다.
임원은 몸을 도로 좌석에 꽂으려 안간힘을 썼고, 버둥거리던 신체 어딘가에 다리 사이에 있는 긴 손잡이가 턱 걸렸습니다. 그 순간 그는 활짝 열린 창 너머로 좌석과 함께 튀어 오르며 창공을 가르고 말았습니다. 하필이면 비상탈출 손잡이를 건드려 버린 것이었습니다.
불행 중 다행히도 낙하산은 정상 작동했고, 임원은 큰 상처 없이 지상에 다시 발을 디딜 수 있었습니다. 헐겁게 얹힌 헬멧은 공중으로 솟구치는 과정에서 이미 어딘가로 날아가고 없었기 때문에, 자칫하면 퇴직일이 제삿날과 겹칠 뻔했던 아찔한 순간이었습니다.
이 비극적인 사건은 발발 이후로 1년여가 지나서야 프랑스 항공사고당국 보고서를 통해 공개됐습니다. 경위를 파악한 프랑스 공군과 다쏘는 '비정규 승객' 탑승에 대비해 비상탈출 손잡이를 개선하고 탑승 절차도 강화했다 합니다. 그러나 평생 잊지 못할 퇴임식을 한 그 가엾은 임원이 어떤 표정으로 회사를 떠났는지는, 보고서에도 기록된 바가 딱히 없었던 듯합니다.
마케팅에 능한 회사가 마케팅에 강한 이유는 따로 있지 않습니다. 고객의 마음을 들여다보고자 부단히 노력했고, 그들의 소망에 발맞춰 충족을 위한 방안을 적절하게 마련했기 때문이죠. 달리 말하자면요. 마케팅은 잘하는데도 직원에게 주는 포상은 엉뚱한 회사가 있다면, 그것은 고객을 파악하기 위해 쏟은 노력의 일부만큼도 자사 구성원을 상대론 들이붓지 않았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실제로 휘하 직원을 고객만큼이나 면밀하게 분석하는 기업이 우리 사회에 아주 많다 말하긴 어렵습니다. 지난 2021년 7월 시장 조사 전문기업인 엠브레인 트렌드모니터가 전국 만 19~59세 직장인 1000명을 대상으로 설문한 결과, 재직 중인 회사에서 누릴 수 있는 복지로 ‘출산휴가제도’(48.5%·복수 응답)와 더불어 ‘직원 선물’(47.4%)을 가장 주요한 것으로 꼽았습니다. 하지만 회사가 제공하는 복지에 만족한다는 답변은 50.5%에 그쳤습니다.
이는 곧 ‘직원 몰입’(Employee engagement)의 문제와 이어집니다. 구성원들이 이처럼 조직에 실망하거나 서운함을 느껴서야 몰입을 효과적으로 이끌어낼 수 없는 것은 당연지사니까요. 혹여나 그 몰입이란 것이 꼭 필요한가? 라고 묻는 분이 계신다면, 이에 대한 답은 갤럽이 지난 2015년에 행한 연구 결과로 갈음하겠습니다. 갤럽에 따르면 직원 몰입도가 높은 기업은 그렇지 못한 기업에 비해 주당 순이익(EPS)이 147% 더 높았다 합니다. 직원 1인당 매출액 또한 18% 증가하는 효과가 있었습니다. 직원의 욕구나 희망을 읽고 그들이 바라는 것을 적확히 제공해 몰입도를 높이려는 시도엔, 상당한 노력을 투입할 만한 가치가 충분하다는 것이죠.
웰컴 키트, 랜선 회식 지원, 호화 석식 등, 요즘 기업들이 제공하는 복지나 선물의 볼륨 자체가 적다고 말하긴 어렵습니다만. 암만 그러한들 구성원의 니즈에 부합하지 못하는 혜택은 이름 모를 이가 군중 앞에서 문득 건네는 고백 편지와 꽃다발만큼이나 두렵고 부담스러울 뿐입니다. 그렇게 저질러 놓고선 ‘이토록 좋은 것’을 선사하는 데도 내 맘을 왜 몰라 주냐며 투정까지 한다면, 직원 몰입은커녕 불쾌와 혐오만 한층 더 조장할 뿐이겠죠. 심지어 돈은 돈대로 실컷 써 놓고 말입니다. 화려하고 트렌디한 복지 제도를 무작정 도입하기에 앞서, 잠재 고객을 분석하려는 노력 이상으로, 휘하 사원들의 바람과 선호를 바르게 파악하는 데에도 힘을 쏟아야 하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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