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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웅 Nov 28. 2022

당신 주변의 '요즘 녀석들'이 모두 이상해 보인다면

그치만 댁이 먼저 이상했는걸

요즘 젊은 애들은 참 이상해요. 술을 곁들인 저녁 자리에서 그 임원을 만나면 반드시 한 번은 나오고 마는 말이었습니다. 사실 으레 이어지는 레파토리 자체야 평이했습니다. 아직 창창한 애들이 열정도 야망도 없다. 자기 잘난 줄만 알고 윗사람 가르침을 우습게 여긴다. 본인과 회사를 너무나도 칼같이 딱 그어 두고 산다. 개개인만 잘난 줄 알지 집단의 힘과 가치를 전혀 이해하지 못하더라. 뭐 대략 그러한 흔해 빠진 넋두리들이었죠.


오히려 독특한 것은 그를 따르는 측근들이었습니다. 그 임원분은 제가 기자로 일했던 그리 길지 않던 기간에만도 몇 차례에 걸쳐 직장을 옮기셨습니다만. 술자리마다 동행하며 그 분을 보위하는 세력만큼은 구성원 면면이 바뀔지언정 늘 존재는 했는데요. 최소 차장 이상인 그의 서포터들은 회식이 4차 넘도록 이어지는 날에도 기세가 죽는 법이 없었으며, 나름 직책자까지 오른 양반들임에도 늘 스스로를 임원의 후광과 은총 없인 생존이 불가한 하찮은 잡초일 따름이라 말하며, 취기가 오를 적마다 반복하는 그 임원분의 같은 이야기에도 항상 새로운 문물을 접하는 양 놀라고 감복하는, 어떤 면에선 요즘 젊은 애들보다 훨씬 더 이상한 분들이었죠.


/게티이미지뱅크


물론 그분들이 책상 앞에 맑은 정신으로 앉을 적엔 업무에 임하는 자세가 어떠했을지를 저로선 달리 알 길도 없긴 했습니다만. 적어도 주점에서 목격했던 광경에서만큼은 후배나 부하들에게 교훈이 될 만한 구석이 딱히 없어 보이긴 했습니다. 회사 바닥에 수명을 오래도록 갈아 넣은 끝에 마주하는 삶이 저 어르신들과 흡사할 것이라면, 그리고 집단의 힘이나 가치라는 것이 남의 눈에는 고작 저런 꼴로 비치는 성질에 불과하다면, 직장이나 상사와 선을 분명히 긋는 ‘요즘 젊은 애’들 쪽이 차라리 현명하지 않나 싶을 정도였죠.




요즘 애들은 뭔가 이상하다는 말 자체야 기원전 시절부터 언급됐던 유구한 명제이긴 하지만요. 젊은 친구들이 선대의 가르침에 도통 순응하질 않는 까닭을 상세히 고찰한 문건은 의외로 드문 편이긴 합니다. 그들의 부족함과 철없음을 질타하기에 앞서, 과연 본인들부터가 청년들의 귀감이 될 만한 언행을 드러내고 있었는지를 짚거나 고민하는 노력은 대체로 미흡했다는 것이죠.


‘제발 철 좀 들어라. 왜 그렇게 버릇이 없느냐?’/A Scribe and His Perverse Son, 기원전 1700년 경 수메르 점토판


지난 6월 한국EAP협회와 비폭력대화연구소가 공동으로 진행한 설문에 따르면, 직장인 315명 중 58.7%가 무례함을 반복적으로 경험하고 있으며, 그토록 예의를 무시하는 사람 중 1·2위로 꼽힌 것이 바로 상사(61.6%)와 선배(27.9%)였습니다. 회사 생활을 괴롭게 하는 가장 큰 원흉이 다름 아닌 윗사람일진대, 젊은 직원들이 그들을 적극적으로 따르거나 어울려 주길 기대하는 것부터가 턱없는 공상인 셈이죠.


회사원치고 초년병 시절부터 장차 무례하거나 경우 없는 직장인으로 성장하리라 결심하는 사람은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앞선 설문에 드러나듯 어느 직장에건 예의 없는 행동이 몸에 밴 상사나 선배는 허다하기 마련이고요. 그러다 보니 근묵자흑을 경계하고자 구습에 젖은 상사들을 자연히 멀리하게 될 수밖에 없죠. 그들이 팁이나 조언이라며 주입하려 드는 해괴한 룰이나 풍습 또한 나름대로 선을 그으며 걸러 듣게 되는 것이고요.


/게티이미지뱅크


윗선이 보기엔 그러한 일련의 행위가, 배우려는 의욕도 잘해 보려는 열정도 무엇 하나 없는 주제에 선배의 가르침은 우습게 여기는 건방진 애송이의 난행으로 간주될 수도 있겠습니다. 그러나 후배 입장에선 그러한 행동이 구태와 악습에 젖은 상사들의 유유상종에 휘말리고 싶지 않은 몸부림일 뿐이었다면 어떻겠습니까. 게다가 선배들은 익숙할 ‘그 풍습들’에 대해 후배들뿐 아니라 사회 전반에 걸쳐서도 거부 내지 규탄의 움직임이 불붙듯 일어나는 요즘 같은 판국에는, 상사와 부하 중 어느 쪽에서 먼저 나서서 고치고 또 변해 나가는 것이 과연 합당하고도 옳겠습니까.


‘1984’와 ‘동물농장’으로 유명한 영국의 작가 조지 오웰은 일찍이 다음과 같은 말을 남겼습니다. “모든 세대는 자기 세대가 앞선 세대보다 더 많이 알고 다음 세대보다 더 현명하다 믿는다.” 이 명언이 겨냥하는 오만과 아집에선 작금의 우리 세대 또한 아주 자유롭다 말하긴 어려운 형편입니다. 후학 집단에 만연한 나태와 방종을 한탄하기에 앞서, 그 위에 선 어른들부터가 휘하에 아름다운 본보기가 될 만할 삶을 살고 있는지를 면밀히 살필 필요가 있다는 것이죠.



더욱 많은 이야기가, '오늘도 출근중'에서 독자 여러분을 기다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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