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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문현웅 Sep 03. 2021

‘미안해’라고 말해 보세요

짧지만 참 어려운 그 말

지난달 24일, 배우 김호창(37)이 자신의 인스타그램에 공개 사과글을 올렸습니다. 그는 같은 달 6일 서울 종로구 대학로에서 막을 올린 뮤지컬 ‘인서트 코인’에서 주연을 맡았는데요. 첫 공연 직후 가창력을 혹평하는 발언이 나오자 직접 반박에 나섰던 것이 문제가 됐습니다.


/김호창 인스타그램


김씨는 “노래가 하나도 안 돼서 듣기가 힘들었다”는 한 관람객의 지적에 맞서 인스타그램에 “첫 공연은 솔직히 리허설도 원활하게 못 하고 올라갔고, 프리뷰(시사회)였으니 다들 반값으로 오셨잖아요. 저는 전문 뮤지컬 배우나 가수가 아니고 연기를 배운 배우인데 왜 그들과 같은 수준의 가창력을 운운하십니까? 얼마나 잘났기에 내가 별로라고 합니까? 저 아세요? 왜 제게 안 좋은 얘기를 하십니까?"라는 내용으로 글을 남겼습니다.


/김호창 인스타그램


그러나 네티즌 반응은 싸늘했고, 평론가들 역시 “그의 말대로 뮤지컬 전문 배우도 아니고 가수도 아니라 생각했다면, 애초에 본인이 주인공 자리를 피했어야 옳다”며 비판했습니다. 김씨는 결국 인스타그램에 “열심히 하고자 하는 의욕 그리고 주위의 기대에 부응해야 한다는 중압감이 더해져 관객분의 진심 어린 비평을 편협한 시선으로 바라보고 적절치 못한 발언으로 여러분께 실망감을 드렸습니다. 비평 또한 배우로서 겸허히 받아들이고 부족함을 채워나가야 할 부분임에도 불구하고 그릇된 행동을 했던 점에 대하여 머리 숙여 사과드립니다”라고 적은 글을 올렸습니다.


그럼에도 지난달 19일을 기점으로 ‘인서트 코인’ 주연은 백승렬, 김대현 등으로 교체됐습니다. 해당 공연 제작사인 엔에이피엔터테인먼트는 같은 날 발표한 공식 입장문에서 “김호창 배우가 제작사는 물론 관객분들께도 그 책임을 돌리는 등 납득하기 어려운 모습을 보여 매우 안타까운 심정이다”고 밝혔습니다.


사실 김씨는 관객 지적에 처음 대응할 시점엔 “첫공(첫 공연)이었습니다. 리허설도 음향 체크도 못 하고 부랴부랴 공연을 했습니다. 미흡한 것이 맞습니다. 부족해서 죄송합니다”라며 별다른 문제 소지가 없는 답변을 했습니다. 하지만 다음 순간 미처 감정을 누르지 못해 필요 이상으로 날카로운 모습을 보였고, 결국엔 보다 나쁜 상황을 맞이하게 됐습니다.




일개 개인만이 이런 실수를 범하는 것은 아닙니다. 기업 또한 잘못을 저지르고서 적절한 대응을 하지 않아 낭패를 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일본 회사인 유키지루시(雪印) 유업이 그 사례 중 하나인데요. 이들은 2000년 6월 황색포도상구균에 오염된 우유를 유통하는 바람에 식중독 환자가 1만4000명이나 발생했는데도 도리어 “우리도 사태 수습 중이며 한가하게 놀고 있지는 않다”, “원인이 밝혀지지 않았으니 아직 잘못을 인정할 단계가 아니다”며 역정을 내 빈축을 샀습니다.


그러나 조사 결과 오사카 공장에서 정전으로 냉각기가 3시간 동안 멈췄던 데다 저장 탱크 밸브도 깨끗하게 닦지 않는 등 위생관리에 문제가 있었다는 사실이 드러났는데요. 사장은 그제야 머리를 숙이며 사과했지만, 그때엔 이미 유키지루시 유업을 위해 나서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주가는 절반으로 폭락했고, 매출은 최대 60% 이상 하락했습니다.


도쿄 신주쿠구에 자리한 유키지루시 유업 본사 건물./Lombroso


정작 유키지루시 유업은 반세기 전 거의 동일한 위기를 맞았을 때, 빠르고 합리적인 대처를 해 오히려 회사를 키운 경험이 있는 기업이었습니다. 1955년 3월 유키지루시 유업 야구모 공장에 일시적인 정전이 발생하는 바람에 우유에 황색포도상구균이 증식했고, 그로 인해 도쿄 초등학교 아홉 곳에서 학생 900명 이상이 식중독에 걸렸던 사건인데요. 당시 CEO였던 미쓰기 사토는 보고를 받는 즉시 판매를 멈추고 제품을 회수하라는 지시를 내리는 한편, 소비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용서를 빌며 시설 전수 점검에 나섰습니다.


이를 계기로 유키지루시 유업은 ‘품질’을 기업의 핵심 이념으로 선포했습니다. 실제로도 노력을 다한 결과 일본에서 가장 신뢰받는 기업 중 하나로 올라섰으며, 2000년 즈음엔 자국 내 최대 규모 우유·유제품 생산 업체로 성장했고요. 그럼에도 이들은 선대의 교훈을 잊고서 감정적인 대응을 했다가 역풍을 맞은 것이죠.




사과하는 태도가 성공에 영향을 미친다는 조사 결과도 있습니다. 미국 여론조사 기관인 조그비 인터내셔널이 7590명을 대상으로 한 온라인 설문 조사에 따르면, 연봉이 10만 달러(약 1억1500만원) 이상인 고소득자는 한 해 소득이 2만5000달러(약 2900만원)를 밑도는 저소득층보다 사과를 2배 가까이 많이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합니다.


10만 달러 이상 소득자는 ‘중요한 사람과 논쟁을 하고 사과할 의향이 있느냐’는 질문에 92% 가까이가 ‘잘못했다고 느끼면 사과한다’고 답했습니다. 반면 2만5000달러 이하 소득자는 52%만이 ‘그렇다’고 했습니다. 또한 ‘잘못한 게 없다고 생각했을 때도 사과하느냐’는 질문에 10만달러 이상 소득자의 22%가 ‘그렇다’고 응답한 반면, 2만5000달러 이하 소득자는 13%만이 ‘그렇다’고 답했습니다.


물론 먼저 하는 사과가 말처럼 쉬운 일만은 아니긴 합니다./인벤


이처럼 스스로의 잘못을 인정하고 사과하는 태도는, 개인이건 기업이건 결국엔 성장과 번영의 밑거름이 된다는 것이죠. 비즈니스 컨설턴트인 피터 쇼는 이에 대해 "성공한 사람은 자신의 실수로부터 배우려 하기 때문"이라 말했고, 커리어 코치·저술가인 마티 넴코는 "총명한 고소득자는 안전한 길을 택하려는 경향이 있으며, 그들은 잘못했을 때 사과해야 경력에 흠이 생기지 않는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다"고 해석했습니다.



*이 글은 THE PL:LAB INSIGHT 업로드한 아티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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