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들이 '이상한' 글을 쓰는 이유

그 업계의 사정

by 문현웅

격조했습니다. 요즘엔 재직 중인 회사의 사정과 방침상, 전 직장에서처럼 '뉴스 기사'에 가까운 글을 주로 만들고 있는데요.


비록 기자 출신이긴 하지만, 저는 솔직히 개인적으론 언론계의 글쓰기 스타일을 그리 좋아하진 않습니다. 문장의 기교나 우리말 특유의 리듬감 등 글 읽기의 즐거움을 배가해주는 요소는 제쳐 두고 기능적인 면에 총력을 기울이는, 철저히 '도구로서의 글'을 추구하는 성격이 강하다는 느낌 때문인데요.


다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사적인 취향일 뿐이고, 기자들이 그렇게 글을 쓸 수밖에 없는 연유나 필요성 자체에 대해서는 충분히 인정하는 바입니다. 그들도 아무 사연이나 맥락 없이 글맛은 휘발된 채 어색할 정도로 툭툭 끊기는 문장을 기사 가득히 밀어 넣는 것은 아니니까요.


말이 나온 김에, 왜 기자들이 그런 식으로 언중의 입말이나 언어생활과는 괴리가 있는 부자연스러운 문장을 자주 활용하는지를 이번 기회에 살짝 적어 보도록 하겠습니다. 특히 평소 '일상의 언어'만을 사용하다 급작스레 '기자의 언어'로 평가를 받아야 하는, 언론계 지망생이나 수습기자분들께 조금이나마 가이드가 될 만한 방향으로요.


단, '스트레이트', '피처', '르포', '인터뷰' 등 기자들이 활용하는 다양한 기사 스타일 중, 우선은 업계에서 가장 기본으로 치는 데다 수습기자 선발 시험에서도 제일 주요한 평가 포인트로 꼽히는 '스트레이트'와 연관된 이야기를 해 보겠습니다. 그러다 보니 어느 지점에선 '피처 기사엔 맞지 않는 설명인데요?'라는 생각이 드실 수도 있겠으나, 일단은 양해를 부탁드립니다. 물론 스트레이트 이외 피처, 르포, 인터뷰 스타일의 글쓰기에 대해서도 훗날 기회가 되면 다뤄 보도록 할 것이고요.




뉴스 기사, 솔직히 참 재미없습니다. 흔히 말하는 읽을 만한 기사라 한들 사실 다루는 사건이나 언급되는 내용이 흥미로울 뿐이지, 순전 글에 활용한 표현이나 엮어내는 기교가 탁월해 높은 평가를 받는 경우는 굉장히 드뭅니다.


그렇다면 만일 문필 테크닉이 상당한 경지에 달한, 이를테면 신춘문예 소설 부문 등단자나 문예창작과 졸업생이 써낸 기사는 퀄리티가 어떨까요? 글쎄요, 글로서의 재미는 훨씬 나아질지 몰라도, 그들이 작성한 기사를 위해 지면을 내주는 언론사는 아마도 없을 것입니다.


이는 ‘기사’라는 글의 제작 목적 내지 지향하는 바와 결부된 문제인데요. 기사는 기본적으로 ‘정보 전달’을 목적으로 하는 글입니다. 그렇기에 ‘많은 양’의 ‘정확한 정보’를 ‘쉽게 이해 가능한 형태’로 전달하는 것을 극도로 지향하죠. 예를 하나 들어 보겠습니다.


그 집에는 삼룡(三龍)이라는 벙어리 하인이 하나 있으니 키가 본시 크지 못하여 땅딸보로 되었고 고개가 빼지 못하여 몸뚱이에 대강이를 갖다가 붙인 것 같다. 거기다가 얼굴이 몹시 얽고 입이 크다. 머리는 전에 새 꼬랑지 같은 것을 주인의 명령으로 깎기는 깎았으나 불밤송이 모양으로 언제든지 푸 하고 일어섰다. 그래 걸어다니는 것을 보면, 마치 옴두꺼비가 서서 다니는 것같이 숨차 보이고 더디어 보인다.

(나도향 ‘벙어리 삼룡이’, 1925 中)


한국 근대 문학계의 명품으로 꼽히는 소설답게 묘사가 굉장히 훌륭하죠. 하지만 이것이 만일 기사에 싣기 위한 인물 설명이라면 순순히 받아 주는 언론사가 오히려 드물 것입니다. 아마도 신문사 데스크라면 추가 취재를 거듭 지시해 결국엔 아래 정도의 글을 유도해 내리라 예상됩니다.


그 집 하인인 삼룡이는 벙어리다. 키는 150cm 안팎이다. 목은 거의 없을 정도로 짧다. 이마와 뺨, 턱 피부 전체에는 작게 패인 흠이 있다. 다문 입술 가로 길이는 약 9cm다. 이는 일반인 평균 대비 두 배가량이다. 머리카락은 전체를 균일하게 9mm 정도로 잘랐다. 걸음새는 10초에 한 걸음을 겨우 디딜 정도로 둔하고 느리다.


기교는 싸그리 죽고 살인범 몽타주를 덤덤히 읊는 듯한 투만 남아 글맛이랄 게 전혀 없습니다만. 그럼에도 신문 지면에 올리는 기사 태반은 결국엔 저러한 식으로 흐르기 십상인데요. 보도를 목적으로 하는 글은 업계 바깥에서 보기엔 변태스럽게 느껴질 정도로 ‘팩트’에 집착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말하는 팩트라 함은 아주 거창한 것까진 아니고요. ‘누구나 납득할 만한 공신력 있는 정보’ 정도로 생각해 주시면 되겠습니다. 물론 ‘공신력’이라는 것도 논란의 여지가 있긴 하나, 어느 언론사건 규모와 인지도가 상당한 기관이나 권위 있는 인물이 도출한 데이터 내지 발언 정도는 대체로 신뢰 가는 자료라 인정을 해 주는 편입니다. 검증된 취재자나 취재원이 직접 측정하거나 관찰한 수치도 웬만하면 존중을 해 주고요. 그런 면에서 예를 들고자 제가 임의로 적어 넣은 것이긴 하지만, 고친 글에선 새로이 튀어나온 ‘분명한 숫자’들은 정석적인 기사에 필요한 ‘팩트’와 일맥상통하는 셈이지요.


그리고 모든 언론은 객관적인 정보, 즉 ‘팩트’를 활용해 그들이 원하는 방향으로 여론을 유도하려는 경향이 있습니다. 어쩌면 뜻밖일 지도 모르겠으나, 자신들의 세 치 혀 테크닉만으로 정국을 움직인다는 인상을 주는 것은 극도로 꺼립니다. 언론은 오히려 그들이 제공하는 팩트에 의거해, 대중이 이성적이고도 바른 판단을 내리는 상황을 간절히 바라는 집단입니다. 비록 그 팩트가 각 언론의 입맛에 맞도록 ‘취사 선택된’ 결과물이라는 전제는 있긴 하지만요.


아무튼 그렇기에 실제로 기사 대부분은 기업·기관이 제공한 정보나 통계 데이터, 권위 있는 인물의 발언 인용 등 업계에서 ‘팩트’로 부르는 요소를 제하면 글에 남는 부분이 거의 없다시피 합니다. 이 때문에 문학적 견지에서 그토록 높은 평가를 받는 벙어리 삼룡이마저도, 기사로 변형하는 과정을 거치다 보면 저렇게나 말라붙어 꼬들꼬들해진 글줄 뼈대만 남기 마련이고요.


journal-2850091.jpg /픽사베이


아니 그럼 팩트도 왕창 넣고 기교도 넉넉히 바르면 되지 않나요? 왜 멀쩡한 글에서 묘사를 굳이 몽땅 날려 육포로 만들어야만 하나요? 이런 반론도 자연스레 나올 법한데요. 물론 그렇게 할 수 있다면 쓰는 입장에서도 좋겠습니다만. 문제는 기자 대부분이 ‘지면’에 글을 쓰는 훈련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신문지면은 물리적으로 한정된 공간입니다. 한 면을 몽땅 할애하는 특집 기사라 해봐야 조선일보 기준으로 원고지 15~20장 분량 정도를 집어넣는 것이 한계죠. 사진 삽입이나 배치에 따라선 이보다 더 줄어들 수도 있고요. 지면 하나를 몽땅 쓰더라도 그 정도에 불과할진대, 여러 기사를 넣으려면 제약이 한층 더 심해질 수밖에 없죠.


지면에 싣는 기사는 일반적으로 사이즈에 따라 톱, 사이드, 미니로 나누는데요. 톱은 대개 원고지 8~10매 정도 용량이며, 미니는 원고지 3~4매 즈음이 한계입니다. 심지어 중앙일보처럼 더 작은 판형인 ‘베를리너’를 쓰는 신문은 기사를 못 해도 20~30%씩은 더 깎아내야 하고요. 참고로 개요만 간단히 정리한 사건사고 기사 하나만도 미니에 할당한 공간 정도는 가볍게 채우는 것이 보통입니다.


살짝 거칠게 표현하자면, 기사 작성이란 이토록 한정된 공간에 팩트로 간주되는 정보를 최대한 많이 구겨 넣는 테크닉이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기교를 넣거나 묘사를 담을 만한 여유를 부리긴 도통 어렵죠.


그래도 배치한 기사마다 어찌어찌 물기를 쫙 빼 공간을 남기면 글을 좀 꾸며 볼 여지가 생길까요. 안타깝게도 그에 대한 답 역시 ‘NO’입니다. 저널리즘의 관점에선 기껏 확보한 공간을 기존 글에 데코레이션을 넣는 용도로 운영할 바에야, 아예 기사를 하나 더 싣는 편이 훨씬 바람직하거든요.


사실 신문만 그런 것도 아닙니다. 라디오나 방송도 마찬가지입니다. 뉴스를 세심히 듣는 분들이라면 익히 잘 아시겠지만, 방송 기사 분량은 기자가 멋대로 정하는 것이 아닙니다. 특집이나 기획 편성이 아닌 이상 기사 대부분은 평범한 리딩 속도 기준으로 1분 30초 안팎에 끊어 내야 합니다. 게다가 방송은 특성상 발음이 어렵거나 꼬이기 쉬운 표현은 가급적 피해야 하므로, 어떤 면에선 기교를 넣기가 신문 기사보다 한층 더 어렵죠.


또한 바뀐 글은 원문과는 달리 문장이 좀 심하다 싶을 정도로 툭툭 끊겨 있는데요. 거의 강제로 토막을 쳐낸 듯한 이 부자연스러운 필법 또한 언론업계 나름으론 분명 구사하는 의의가 존재는 합니다. 다만 여기에서 그 내용까지 쭉 설명하자면 이번 글이 너무 길어질 듯하니, 자세한 이야기는 다음 아티클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