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들은 왜 문장을 잘게 저미는가

슬라이스의 미학

by 문현웅

지난 아티클에선 언론계가 문장을 잘게 슬라이스 치는 경향이 상당히 강한 이유를 막 설명해 드리려다 말았는데요. 이에 대해 한층 더 자세히 논하려면 우리가 평시에 흔히 쓰는 글의 ‘지저분함’을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습니다.


깔끔하고도 아리따운 ‘벙어리 삼룡이’의 문장을 여기서 예시로 쓰긴 아무래도 무리인지라, 대신 글쟁이 업계에선 더러운 문장을 논할 때 어김없이 거론되는 작성 스타일 중 하나인 ‘판결문’을 일부 끌어와 보도록 하겠습니다.


법원은 조부모가 단순한 양육을 넘어 양친자로서 신분적 생활관계를 형성하려는 실질적인 의사를 가지고 있는지, 입양의 주된 목적이 부모로서 자녀를 안정적·영속적으로 양육·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친생부모의 재혼이나 국적 취득, 그 밖의 다른 혜택 등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한다.

(2018스5 미성년자 입양허가 (가) 파기이송 中)


이 글은 문장 하나로 최소 세 가지 이야기를 커버하고 있습니다. 그 문장에서 주술만 추려내자면 ‘법원은 살펴봐야 한다’ 뿐인데, 이 주술 관계 하나로 ‘1) 조부모가 단순한 양육을 넘어 양친자로서 신분적 생활관계를 형성하려는 실질적인 의사를 가지고 있는지 2) (조부모가 하는) 입양의 주된 목적이 부모로서 자녀를 안정적·영속적으로 양육·보호하기 위한 것인지 3) (조부모가 하는 양육이) 친생부모의 재혼이나 국적 취득, 그 밖의 다른 혜택 등을 목적으로 한 것은 아닌지’를 한 번에 다루는 것이죠.


사람의 기억은 유통기한이 의외로 짧습니다. 그렇기에 이처럼 주어와 술어 사이에 목적어, 보어, 부사 등이 무더기로 끼어들며 간격을 벌린 글은 독자 입장에선 편히 읽기가 난감합니다. 끄트머리를 읽을 즈음이면 전반부 내용은 거진 휘발되기 십상이며, 주어와 술어의 조응 관계에도 혼동이 오기 쉽습니다.


그렇지 않다고요? 여러분이야 그러실 수 있죠. 하지만 세상엔 의외로 글을 읽고 이해하는 훈련이 덜 된 이가 아주 많습니다. 그것을 방증하는 증거 또한 차고 넘칩니다. 지금 바로 아무 포털이나 접속해 인기 기사를 하나 짚어 쭉 훑어보시고, 거기에 달린 댓글들이 뭐라고들 아우성인지 읽어 보시길 바랍니다. 나와 같은 글을 읽고 단 게 맞는지 의심되는 댓글이 한둘은 아닐 것입니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흔히 ‘메이저’라 불리는 주요 언론사는 대부분 독자 수준을 중졸 수준으로 상정하고 있습니다. 물론 국민 전반적으로 교육 수준이 낮았던 옛 시절에 그어 둔 가이드라인이 그대로 이어진 영향도 있긴 합니다만. 아직도 언론계에서 체감하는 구독자의 평균적인 독해력 수준은 기껏해야 중학교 과정을 온전히 이수한 청소년 정도에 그친다는 점 또한 아주 부정하긴 어렵죠.


/픽사베이


아무튼 현실이 그렇다는데 별 수 있겠습니까. 기자 입장에선 글을 작성하는 단계에서 ‘중졸 수준’ 독자라도 전하고자 하는 바를 혼동하거나 잘못 이해할 여지가 없도록 무던히도 신경 쓸 수밖에요. 그것이 곧 문장의 ‘지저분함’을 없애는 공정으로 이어집니다. 그 작업에 있어서 가장 흔한 첫걸음이 바로 문장을 잘게 끊는 것이고요.


법원은 조부모가 단순한 양육을 넘어 양친자로서 신분적 생활관계를 형성하려는 실질적인 의사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입양의 주된 목적이 부모로서 자녀를 안정적·영속적으로 양육·보호하기 위한 것인지를 살펴야 한다. 친생부모의 재혼이나 국적 취득, 그 밖의 다른 혜택 등을 목적으로 입양하는지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


문장을 미끈하게 다듬기까지 하려면 아직 만질 부분이 적잖긴 합니다만. 일단은 이처럼 주르륵 이어지는 글을 적절히 끊어주는 것부터가 가장 기본적인 손질 작업입니다. 생선으로 치면 비늘 위로 칼을 두어 차례 긁고선 토막을 내 둔 정도인 셈이죠.


물론 끊는 수준이 이보다 더 촘촘한 경우도 매우 흔합니다. 주어와 술어 사이에 부대 요소가 드물수록, 그리고 한 문장에서 다루는 내용이 적을수록 독자가 글을 이해하기 쉬워지고 혼동할 여지는 줄어드니까요. 위 문장도 그런 취지에 따라 더 잘게 나누어 보자면 이렇게까지도 해볼 수 있겠습니다.


법원은 조부모가 양친자로서 신분적 생활관계를 형성하려는 실질적인 의사를 가지고 있는지 확인해야 한다. 이는 단순한 양육을 넘어서는 수준이어야 한다. 입양의 주된 목적이 부모로서 자녀를 안정적·영속적으로 양육·보호하기 위한 것인지를 살펴야 한다. 친생부모의 재혼을 목적으로 입양하는 것인지도 확인해야 한다. 국적 취득이나 그 밖의 다른 혜택 등을 목적으로 입양하는지도 파악할 필요가 있다.


이렇게나 칼질을 해 놓은 글은 왠지 좀 어색하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우리가 평소에 흔히 입에 담는 문장 체계와는 다소 차이가 나기 때문인데요. 사실 일상에서 별다른 정제 과정 없이 편히 하는 입말은 의외로 길고 장황한 경우가 대부분이거든요. 하나하나 뜯어 보자면 주어 하나에 술어가 여럿 달려 있거나, 주어와 술어 사이에 목적어, 보어, 부사 등이 대거 들어간 경우가 흔하다는 것이죠. 현실에서 실제로 신문 기사 수준으로 끊어 놓은 말을 들을 일은, 어지간히 과묵한 사람을 마주할 때나, 인간 말을 배우다 만 AI와 대화를 나눌 때 정도뿐일 것입니다.


그렇기에 글을 기껏 촘촘히 쪼개 두고도 왠지 풍기는 어색함을 견디지 못해 결국 문장을 재차 윤색하는 사람도 있습니다만. 적어도 언론사 시험에 응시할 분이라면 최소한 그 순간만큼은 본능을 잠시나마 이겨내 볼 것을 권하는 바입니다. 언론사에서는, 특히 수습기자 선발 시험에선, 집착에 가까울 정도로 ‘짧고도 잘게 끊어진 글’을 원하는 경향이 있거든요. 뭐 기자들 특유의 글에 대한 자부심을 감안하면, 수습기자는커녕 지원자 신분인 풋사과가 쓴 글을 글 취급이나 해주겠습니까. 온갖 장식을 쳐내고서 주술 관계라도 명확히 잡아 둬야 그나마 읽는 시늉이라도 할 테죠.


그런데 말입니다. 지면 공간이나 리딩 시간 제약이 있는 신문이나 방송이라면 모를까, 딱히 그런 문제가 없는 ‘인터넷 기사’마저 물기를 눌러 짠 듯 수척한 필체로 적어 내리고선 아주 잘게 토막을 낸 것이 태반인 이유는 무엇일까요. 앞서 설명한 대로라면 그들까지 굳이 그래야만 할 유인은 딱히 없을 텐데 말이죠.


물론 세상일이 대개 그렇듯 거기에도 나름의 사연은 있습니다만.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번 글이 너무 길어져 버린 관계로, 다음 글에서 설명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기자들이 '이상한' 글을 쓰는 이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