못난 기자가 미안하다

기자 탓에 기사에 벌어지는 일

by 문현웅

지난 글에선 신문이나 방송 기사가 건조해질 수밖에 없는 필연에 대해 설명드렸는데요. 사실 포털을 훑다 보면 지면에 실리지도 전파를 타지도 않은 ‘순수’한 인터넷 기사마저, 신문이나 방송의 필법을 충실히 따르며 무미건조한 투로 써 내린 모습을 흔히 볼 수 있습니다. 글자 몇 개 더 적는다 한들 웹이 터지는 것도 아니며 돈이 더 들 일조차 사실상 없으니, 가독성과 전달력을 깨지 않는 선에선 테크닉을 한껏 구사해도 그리 나쁘지 않을 텐데 말이죠.


실제로 인터넷에만 싣는 기사라면 기존 매체 특유의 제약들 따윈 굳이 의식할 이유가 없긴 합니다만. 문제는 ‘사람’입니다. 무슨 말이냐면요. 설령 신생 인터넷 언론사라 할지라도, 취재와 편집을 지휘하는 간부급인 ‘데스크’들은, 99% 가까이가 초년병 시절 신문이나 방송 매체에서 기사 작성법 교육을 받고선 경력직으로 넘어온 인물이라는 것입니다.


언론사는 신문이건 방송이건 직위를 14년 차까진 ‘사원’으로 고정하며, 15년 차를 찍는 순간 차장(혹은 차장대우)으로 일괄 승진시키는 관행이 있습니다. 그리고 데스크는 대부분 차장대우급 이상으로 구성하죠. 일부 예외도 아주 없는 건 아닙니다만, 그럼에도 10년차 미만까지 내려가는 일은 거의 없다고 보셔도 무방합니다. 즉, 어지간한 언론사라면 최소한 강산이 한 번은 바뀌도록 기자 생활을 해야 데스크 업무를 맡을 수 있는 셈입니다.


이처럼 오랜 세월에 걸쳐 규격화된 필법을 섬기며 글을 써 온 사람들이, 어느 날 문득 자유분방한 필치로 기사를 적어 내리기엔 아무래도 심리에 걸리는 제동이 상당하지 않겠습니까. 공간이 암만 넉넉하더라도 ‘굳이 없더라도 뜻은 충분히 통할’ 표현을 덧붙이는 것은 군더더기로 보이고, 바로 말하면 오히려 명쾌할 내용을 굳이 한 번 틀어 말할 필요를 도무지 찾기 어려웁죠. 그러다 보니 결국엔 데스크 대다수가 가장 자신 있고 익숙한 필체를 쓰는 쪽으로 기울어질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대세는 비록 인터넷 쪽으로 기울고 있으나, 언론 글쓰기의 정수는 글자 낭비 없이 요점만을 명료하게 전달하는 전통적인 방법론에서 이미 완성돼 있으므로, 필법만큼은 시대가 암만 바뀐들 신문이나 방송의 오소독스한 스타일을 유지해야만 한다’는 식의, 실무에서 간혹 접할 수 있는 일부 데스크의 동도서기론적 주장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비롯된 셈이죠.


typewriter-3711590_1920.jpg /픽사베이


다만 데스크를 위한 변명도 약간 곁들이자면요. 요새는 이른바 메이저라 불리는 대기업급 신문이나 방송 쪽에서도 과거에 비해 지원자 수준이 심각하게 떨어졌다는 볼멘소리가 적잖이 들려 오는 판국인데요. 인터넷 언론사, 특히 군소 매체에선 그러한 양상이 정말 말도 못 할 수준입니다. 좀 심한 곳은 자기소개서 맞춤법만 제대로 돼 있어도 상위 10% 지원자에 틀림없이 들어갈 정도니까요. 무려 ‘수습기자 선발 전형’에서 말이죠.


이러한 사태가 빚어진 근본엔 제대로 된 인재라면 거들떠보지도 않을 연봉과 복지를 내걸고 ‘기자는 명예로 하는 직업’ 운운하는 경영진의 책임이 매우 크긴 합니다만. 어쨌든 결과적으론 현존하는 국내 인터넷 언론사 1만여 개 중 95% 정도를 차지하는 ‘가난한’ 매체의 데스크들은, 기자 노릇은커녕 한국어조차 제대로 구사할지 의심되는 초년병들을 데리고 부서를 운영할 수밖에 없습니다.


교육 현장과 마찬가지로, 언론계 또한 기초가 완성된 인재만이 응용 내지 심화 과정을 넘볼 수 있는 것은 당연지사죠. 백지상태인 수습들에게 기본기를 주입하는 가장 정석적인 방법은 무엇이겠습니까. 사실 이 또한 교육계가 찾은 해답과 크게 다를 바가 없습니다. 바로 ‘교과서’입니다. 즉, 업계의 전통적인 규범과 필법을 전하며, 이에 벗어남 없이 충실하도록 강제한다는 것입니다.


물론 기자 개개인의 개성이나 창의성을 살려 주긴 어려운 방식이긴 합니다만. 애초에 독창성이란 것도 글 쓰는 이의 수준이 어느 정도는 돼야 논할 수 있는 문제 아니겠습니까. 아주 망가진 글을 뱉어낼 리스크부터 줄이려는 실무 차원의 노력을, 무작정 나태하고 안이한 태도라 몰아붙이기만도 어려운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기에 인터넷 언론사 데스크들 다수가 사실상 자의 반 타의 반으로 신문지에 글 쓰던 시절의 방법론을 현시대 기자들에게 그대로 가르치고 있고요.


아무튼 이와 같은 사정 때문에 21세기가 5분의 1을 훌쩍 넘긴 지금까지도 언론계 전반에선 여전히 전통적인 기사 작법이 왕도이자 메인스트림으로 통용되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업계에선 앞서 쭉 설명 드린 바와 같은 오소독스한 원칙을 잘 지키는 기자일수록 평가가 오르는 분위기 또한 자연스레 형성됐고요.


문제는 이따금 이런 풍조에 지나치게 젖은 기자 중 일부가, 업계 바깥사람이 들으면 기가 막혀서 웃음도 차마 안 나올 소리를 너무나도 당당하게 하고 다닌다는 것인데요. 그 이야기까지 여기서 바로 풀어 버리면 이번 글이 너무 길어질 듯하니, 나머지는 다음 아티클에서 이어가 보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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