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일보에 인턴으로 합격해 입문 교육을 받던 시절, 저희에게 원고지 6장 분량으로 칼럼을 쓰게 한 뒤 각자의 글이 몇 개의 문장으로 구성됐는지를 헤아리게 했던 선배가 있었습니다. 제 글엔 문장이 26개 들어 있었으며, 이는 동기들 평균보다 약간 적은 정도였습니다.
선배는 화면에 고참 기자가 작성한 칼럼 하나를 띄웠습니다. 글 분량은 저희가 작성한 것과 비슷했으나, 담긴 문장은 무려 50여 개에 달했습니다. 앞선 아티클에서 설명드렸던 바와 같이, 문장을 아주 잘게 끊고 다지는 ‘기자의 글쓰기’에 충실했던 것이죠. 너희 잡문의 하찮음을 알아라. 이것이 바로 평생을 글에 바친 경륜 있는 문장가의 글쓰기 방식이다. 선배가 한 강연의 취지는 대략 그러했습니다.
당시 예시로 언급된 글을 쓰셨던 고참은 이제 조선일보를 떠나 다른 곳에서 일하고 계십니다. 글이야 여전히 쓰시지만, 회사 바깥에 선 이래 문장력으로 주목받거나 화제가 된 일은 딱히 없었습니다. 달리 이유가 있겠습니까. 그는 기자 업계 특유의 글 작성 방식에 능숙한 숙련공이었을 뿐, 조선일보 타이틀을 없애도 세간의 추앙을 널리 받을 만큼, 절대적인 필력 자체가 특출하게 빼어난 ‘훌륭한 문장가’는 결코 아니었기 때문이었죠.
홍보 업무 등을 맡는 바람에 기자와 이따금 접촉할 기회가 있던 분들이라면 아마도 잘 아시겠지만요. 신문사의 기사 글쓰기 방식, 그중에서도 팩트를 건조한 필치로 엮어 내리는 하드보일드한 스타일만을 인류 작문의 정점인 양 찬미하는 기자가 실제로 드물게나마 존재는 합니다.
소설 같은 건 잡스런 찌꺼기가 범벅인 더러운 문장이라 평하며, 시 따윈 뜻 모를 모호한 독백에 불과하다 치부하는, 누가 봐도 명확하게 읽히며 의미가 분명히 전달되는 신문 특유의 간결한 문체만을 오로지 ‘진짜’ 글로 인정하는, 그런 교조적인 부류 말이죠. 심지어 같은 기자라 할지라도 문화부나 피플팀 등 비교적 촉촉한 부서에 몸담은 동료는 사이비 취급하거나 무시하는 경우마저 간혹 볼 수 있는데요.
굳이 부연할 것까지도 없다 생각은 합니다만. ‘기사를 잘 쓴다’는 것과 ‘글을 잘 쓴다’는 것은 엄연히 다른 이야기입니다. 앞선 아티클들에서 설명 드린 바와 같이, 기사 작성법이란 ‘정보 전달’이라는 기능에 철저히 맞춰 발달한 테크닉일 뿐입니다. 시나 소설 등에만 비추어 보더라도 정보 전달 이외의 목적을 우선하는 글 또한 세상엔 수두룩한 만큼, 글의 형태나 전개가 기사에 가까울수록 ‘글답다’고 주장하는 일부 기자의 태도는 사리에 맞는 구석이 없다는 것이죠.
/픽사베이
예술성을 중시하는 문학 계통의 작문을 ‘순수미술’이라 한다면, 기자의 글쓰기는 대략 ‘산업디자인’ 정도에 빗댈 수 있겠습니다. 산업디자인은 분명 세상에 꼭 필요한 활동이며, 공업에 접목 가능한 미술 분야 중에선 이보다 더 유용한 것도 드뭅니다. 그러나 누군가가 산업디자인을 미술의 정점이라 칭하며 그 외 분과를 얕잡아보는 언행을 한다면 선뜻 동의할 사람이 몇이나 있을까요.
또한 글을 매일같이 쓰며 먹고산다는 이유로 기자들의 글솜씨가 탁월해질 수밖에 없다 말하는 것도 사실 꽤나 우스운 일이긴 합니다. 누구나 비슷한 일을 오랜 기간 수천수만 번 거듭하는 것만으로 달인의 경지에 오른다는 논리면 축구 선수 중 메시나 호날두 아닌 이가 몇이나 될까요. 게다가 그들이 ‘축구 도사’도 아니고 ‘구기 종목 마스터’를 자처하며 농구나 야구 등을 얕잡아 보기까지 하면 얼마나 황당하겠습니까. 그것도 ‘언론 권력’에 기대 글솜씨나 필력에 대한 외부인들의 비판조차 겸허히 수용하는 때가 좀처럼 없는 방자한 위인들이 말입니다. 반성이나 고민도 없이 선대의 기술을 답습하는 주제에 세상을 얕보며 뻐기는 숙련공은, 영영 장인이 될 수는 없는 도제일 뿐이죠.
즉, 여러분이 언론고시 지망생이건 신문이나 방송과는 별다른 연이 없는 평범한 직장인이건, ‘기자의 글쓰기’를 정석이나 세상 글쓰기의 정점인 양 떠드는 소리는 어지간하면 흘려들으시라는 것입니다. 언론사의 작문 기법이 나쁘다는 취지는 아닙니다만. 그것 하나만 제대로 통달하면 어떤 타입의 글쓰기에도 쉽사리 대응할 수 있는 전가의 보도다, 그런 정도는 아니라는 말이죠.
좋은 글에 왕도는 없습니다. 사랑의 형태가 세상 어머니의 수만큼 다양하듯, 훌륭한 글 또한 쓰이는 필요나 상황에 따라 제각각 다른 모습일 수 있겠죠. 다만 작성하는 목적에 바르게 합치하는 동시에, TPO(time, place, occasion)에 어김이 없으며, 읽는 이에게 감동이나 즐거움을 준다면, 웬만해선 중간 이상은 가는 글로 평가할 수 있을 텐데요.
글의 TPO가 어긋나는 상황이라는 게 무엇인지는, 이번 아티클에서 곧장 풀자면 아무래도 너무 길어질 우려가 있으니 다음으로 넘기도록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