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문장은 사실 훌륭하지 않았다
글에도 TPO가 있다
가을 들녘에는 황금물결이 일고, 집집마다 감나무엔 빨간 감이 익어 간다. 가을걷이에 나선 농부의 입가엔 노랫가락이 흘러나오고, 바라보는 아낙의 얼굴엔 웃음꽃이 폈다. 홀로 사는 칠십 노인을 집에서 쫓아내 달라고 요구하는 원고의 소장에서는 찬바람이 일고, 엄동설한에 길가에 나앉을 노인을 상상하는 이들의 눈가엔 물기가 맺힌다.
우리 모두는 차가운 머리만을 가진 사회보다 차가운 머리와 따뜻한 가슴을 함께 가진 사회에서 살기 원하기 때문에 법의 해석과 집행도 차가운 머리만이 아니라 따뜻한 가슴도 함께 갖고 하여야 한다고 믿는다. 이 사건에서 따뜻한 가슴만이 피고들의 편에 서있는 것이 아니라 차가운 머리도 그들의 편에 함께 서있다는 것이 우리의 견해이다.(대전고등법원 2006나1846 판결 이유 본문 中)
15년 넘게 흐른 지금까지도 종종 ‘아름다운 판결문’이라며 회자되는 글입니다만. 이 판결문은 사실 실무 차원에선 업계 반면교사의 표본으로 사용 가능할 정도로 아주 잘못 쓴 글입니다. 앞선 아티클에서 언급했던 ‘글의 TPO’가 완전히 어긋나 버렸기 때문인데요. 그 정황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판결을 구성하는 사건의 배경부터 언급할 필요가 있겠습니다.
분쟁의 골자는, 피고인 노인이 임대차계약을 딸 명의로 체결하고서 공공임대주택에 홀로 거주하고 있었다는 것입니다. 임대료는 노인 본인이 내긴 했습니다만, 한국토지주택공사와 법적으로 계약 관계를 맺은 임차인은 당연히 딸일 수밖에 없었죠.
임대 기간이 만료돼 분양전환 절차가 시작될 즈음 판결에 이르는 갈등이 불거졌습니다. 관련 법에선 ‘해당 임대주택에 거주하던 임차인’에게 우선분양권리를 부여하는 것으로 명시돼 있었는데요. 그렇기에 ‘임차인’이 아닌 노인은 우선분양을 받을 법적 권리가 없었습니다. 실제로 주택공사는 노인의 분양권 요청을 물리치고선, 딸 역시 실거주를 하지 않았으므로 분양권 우선 부여 대상이 아니니 주택을 반환하라는 취지로 소송을 제기했습니다.
/픽사베이
첫머리 부분에서 언급한 글은 2심 판결문 중 마지막 부분입니다. 1심에서 주택공사가 승소했음에도 불구하고 고등법원에서 이를 뒤집은 근거를 설명한 내용입니다. 하지만 이는 법적 논리가 아닌 ‘동정’에 기댄 판단이기에 문제가 됐습니다. 병을 앓던 아내가 세상을 떠나고 어려운 형편 속에서 외로이 지내던 노인을 가엾게 여겨, 법전 어디에도 없는 ‘실질적 임차인’이라는 개념을 인정해 버린 것입니다. 판례법주의에 기반한 영미법이라면 혹여나 모를까, 성문법주의를 택한 한국에선 절대 나올 수가 없는 판결이죠.
물론 민법 제1조에서 법률에 규정이 없다면 관습법에 의하며, 관습법에도 기댈 수 없다면 조리(條理)에 의한다는 단서를 달아 두고는 있습니다만. 그때나 지금이나 전무후무한 발상인 ‘실질적 임차인’을 판결에 인용할 정도로 관습화된 개념이라 주장하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가 상당했죠. 인정받는 순간부터 악용 사례가 폭발적으로 터져 나올 가능성이 다분한 편법을, 이치에 부합하며 본질적으로 자연스러운 법칙인 ‘조리’로 인정하는 것은 더욱이나 가당찮은 일이었고요.
아니나 다를까, 3심인 대법원에선 이러한 사실을 하나하나 짚으며 2심 판결을 물리치고선 사건을 대전고법으로 환송했습니다. 판결요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법은 원칙적으로 불특정 다수인에 대하여 동일한 구속력을 갖는 사회의 보편타당한 규범이므로 이를 해석함에 있어서는 법의 표준적 의미를 밝혀 객관적 타당성이 있도록 하여야 하고, 가급적 모든 사람이 수긍할 수 있는 일관성을 유지함으로써 법적 안정성이 손상되지 않도록 하여야 한다. 그리고 실정법이란 보편적이고 전형적인 사안을 염두에 두고 규정되기 마련이므로 사회현실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사안에서 그 법을 적용함에 있어서는 구체적 사안에 맞는 가장 타당한 해결이 될 수 있도록, 즉 구체적 타당성을 가지도록 해석할 것도 요구된다. 요컨대, 법해석의 목표는 어디까지나 법적 안정성을 저해하지 않는 범위 내에서 구체적 타당성을 찾는 데 두어야 한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가능한 한 법률에 사용된 문언의 통상적인 의미에 충실하게 해석하는 것을 원칙으로 하고, 나아가 법률의 입법 취지와 목적, 그 제·개정 연혁, 법질서 전체와의 조화, 다른 법령과의 관계 등을 고려하는 체계적·논리적 해석방법을 추가적으로 동원함으로써, 앞서 본 법해석의 요청에 부응하는 타당한 해석이 되도록 하여야 한다. 한편, 법률의 문언 자체가 비교적 명확한 개념으로 구성되어 있다면 원칙적으로 더 이상 다른 해석방법은 활용할 필요가 없거나 제한될 수밖에 없고, 어떠한 법률의 규정에서 사용된 용어에 관하여 그 법률 및 규정의 입법 취지와 목적을 중시하여 문언의 통상적 의미와 다르게 해석하려 하더라도 당해 법률 내의 다른 규정들 및 다른 법률과의 체계적 관련성 내지 전체 법체계와의 조화를 무시할 수 없으므로, 거기에는 일정한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
구 임대주택법(2005. 7. 13. 법률 제7598호로 개정되기 전의 것) 제15조 제1항에서 규정하는 ‘임차인’이란 어디까지나 그 법률이 정한 요건과 절차에 따라 임대주택에 관하여 임대사업자와 임대차계약을 체결한 당사자 본인으로서의 임차인을 의미하고, 이와 달리 당사자 일방의 계약 목적, 경제적 부담이나 실제 거주 사실 등을 고려한 ‘실질적 의미의 임차인’까지 포함한다고 변경, 확장 해석하는 것은 법률 해석의 원칙과 기준에 어긋나는 것으로서 받아들일 수 없다.(대법원 2009. 4. 23., 선고, 2006다81035)
대법원의 파기환송 취지를 간략하게 정리하자면, “판결은 제발 법대로 합시다” 정도로 요약할 수 있겠습니다. 우리나라 법률 체계 상식에선 지극히 당연한 주문이기도 하고요. 문장이 암만 미려하고 감성적인들 글을 받칠 법적 근거가 없는 데다 판결의 핵심 또한 우리나라 법질서와는 어긋나 있으니, 대법원 입장에선 도저히 수용을 해 줄 수 없었던 것입니다.
이 사례는 문장이 암만 화려하고 매끄러운들, 애초에 해당 글을 작성하게 된 목적에 부합하지 않은 방향으로 전개되면, 즉 ‘글의 쓸모’에 비껴가면 높은 평가를 받긴 어렵다는 사실을 여실히 보여줍니다. 의사가 처방전을 노벨문학상 수준에 준하는 필력으로 작성한들, 약 조제에 필요한 내용은 몽땅 빠졌거나 처방 자체가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면 환자에겐 아무 소용이 없는 것과 마찬가지죠.
이는 판결문이나 처방전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기사를 비롯한 다른 글도 모두 마찬가지입니다. 어지간한 뻘글이 아닌 이상, 우리 사는 세상의 글 대부분은 해야 하거나 하기를 기대받는 기능이 적어도 하나쯤은 존재합니다. 지극히 ‘아름다워야’ 하는 글이 있는 반면, 그저 ‘이해하기 쉬운’ 방향을 철저할 정도로 추구하는 글 또한 실재합니다. 상황에 따라 이를 정확히 파악하며 요구받는 조건에 충실한 작문을 하는 것이 바로 글의 TPO를 따르는 정석이라 말할 수 있겠습니다.
다시 언론 쪽 이야기로 돌아오자면, 앞서 기사라는 매체가 가장 중시하며 추구하는 기능은 ‘많은 양’의 ‘정확한 정보’를 ‘쉽게 이해 가능한 형태’로 전달하는 것이라 말씀드린 바가 있습니다만. 사실 이 역시 따지고 보자면 명제에 충실하면서도 기사 형식상의 바리에이션을 여럿 만들어낼 여지가 충분합니다. 이는 언급한 부분 중 ‘쉽게 이해 가능한 형태’에서 비롯되는 것인데요.
가령 신간 서적 소개 기사를 작성할 때 경찰서발 사건 사고 보도를 하듯 실제 벌어진 일만 담백하게 딱딱 끊어 잇는 식으로 쓰면 과연 쉽게 읽어 내릴 수 있을까요. 혹은 여행지 소개나 견문록을 법원 판결문 기사를 정리할 때처럼 요지만 건조하게 나열하면 독자 입장에서 보기에 어떻겠습니까. 즉, ‘팩트를 중심으로 드라이하게 풀어내는 글쓰기’ 하나만이 기사 작법의 알파이자 오메가는 결코 아니라는 것이죠. 전하고자 하는 정보의 성격이나 다루는 사건의 상황에 따라 기사 쓰는 방법은 얼마든 변할 수 있습니다.
뒤집어 말하자면, 일부 언론 글쓰기 교재나 강의 등에 간혹 등장하는, ‘비유를 섞거나 장황하게 늘어뜨린 문장은 기자가 다룰 것이 못 된다’는 식의 단정도 늘 옳다 말하기까진 어렵다는 것이죠. 오히려 TPO에 따라 적절한 작법을 유연하게 택하며, 어떤 기법을 고르건 그것을 무리 없이 능숙하게 소화해 내는 인물이라야, 진정 유능한 기자라 불릴 자격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 고로, 언론계엔 그저 물기를 뺀 팩트를 짜 맞추며 기사를 구성하는 경성(硬性) 글쓰기만이 존재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말랑하고 부드러운 필치를 활용해 글을 써 내리는 연성(軟性) 작법 또한 엄연히 이 업계에서 널리 쓰이는 방법 중 하나인데요. 이와 관련한 설명은 다음 아티클에서 이어가도록 하겠습니다.
P.S.
다만 언론 작법을 다루는 책이나 강좌 대부분은 아직 언론계에 발을 들이지 않은 ‘지망생’을 타깃으로 하고 있으며, 앞서 언급했던 바와 같이 ‘언론고시’를 치를 때엔 짧은 문장 속에 팩트를 최대한 밀어 넣는 글쓰기 방식이 유리한 것은 사실이니, 적어도 수습기자가 되기 전까진 그냥 그것이 정석이라 여겨도 썩 나쁘진 않습니다. 교육적인 측면에선 심화과정에 이르기 전까진 일부 지식은 차라리 모르고 넘기는 편이 이해나 학습에 오히려 유리할 때도 있으니까요. 고등학교 공통과학 과정까진 순수한 물에 전기가 통하지 않는다 가르치지만, 조금만 더 배우면 실은 자동이온화 때문에 매우 약하게나마 흐르긴 한다고 알려주듯 말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