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온 화상

by 묘연

10년을 되돌아 보면 10년중 6년은 그를 미워했던 것 같다.

밉지만 그래도 4년은 사랑했다.

그는 내가 만난 사람 중에 손에 꼽을 정도로 자신을 표현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감정이 무딘건지 정말 표현을 못하는건지 궁금하다.

누군가는 이런 사람을 두고 ‘답답하다.’고 말할지도 모른다.

이 답답한 인간을 나는 왜 사랑하고 있을까.

사랑이 이유없는 것 처럼 어느 날 이유 없이 이 남자가 미워질때가 있다.

딱히 큰 계기가 있었다거나 싸우지 않았더라도 서운함이 쌓이고 쌓여 우리의 관계가 얼어붙는 경우가 있다. 아니 나혼자 삐졌다고 해야 정확한 표현이다. 그는 삐지는 법도 없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무딘 남자는 나의 서운한 감정을 읽지 못한다.

말 한마디도 곱게 나가지 않는 내 입을 보면서도 그의 눈빛은 변화가 없다.

가끔은 그게 더 서운하다.

나는 얼음장 같은 냉탕과 불같이 뜨거운 온탕을 왔다갔다 하면서 극심한 온도변화에 몸서리를 치는데 그는 미지근한 물에 들어가 늘 차가운내옆에서는 따듯한 물인듯 뜨거운 내옆에서는 차가운 물인듯 하고 있는 것이다. 차갑거나 뜨거운 물을 튀겨도 그는 늘 아무렇지가 않다. 그럴때마다 남편의 사랑과 감정이 의심이 된다.

'나를 사랑하고 있긴 한건가. 아니면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지 못하는 병에 걸린건가. 혹시 싸이코패스?'

나의 생각과 상상은 한계가 없고 결국 입에서 험하게 생긴 뱀 한 마리가 툭 나온다.

남편은 그제서야 약간은 흔들린 동공으로 날 쳐다본다.

내가 이렇게 처절하게 표현해야만 조금은 흔들리는 그의 눈동자는 정말 밉다.

10년동안 나는 사실 이런 이유로 남편에게 욕도 많이 하고 헤어지자는 말도 수도 없이 했으며 이혼하자는 말도 수천번은 했다. 모두 진심은 아니었지만 그렇게 말하지 않으면 남편은 내 마음을 몰라줄 것 같았다.

그렇게 남편은 그때마다 들은척도 하지 않았다.

사실 남편이 예민하고 섬세한 사람이었으면 내가 그렇게 쉽게 험한 말을 하지 않았겠지만 내가 그 정도 표현한다고 해서 달라질 사람이 아닌걸 알기에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더 세게 표현했다.


나는 왠지 모르게 더 속상해 밤에도 쉽게 잠들지 못했고 그래서 일찍 일어나 더 신경이 날카로워져 있는데 남편은 아무렇지 않다는 듯 아침에 일어나 기계처럼 샤워를 하고 면도를 하고 어제 입은 것 같은 똑같은 정장 차림을 하고는 아침을 먹는다.

'저 인간 로디인가(뽀롱뽀롱 뽀로로에 나오는 로봇 이름)?'

(극중 로디는 로봇이어서 꿈도 꿀수 없고 추위와 더위도 느끼지 못한다. )

우리집 로디는 아무일 없다는 듯 준비를 마치고 구두까지 깨끗이 닦고는 출근을 했다.

나였으면 회사가서 일이 손에 잡히지도 않았을 것 같은데 그는 여전히 흔들림이 없다.

그리고 나같으면 집에 오기도 싫었을텐데 우리집 로디는 야근도 안하고 집에 돌아왔다.

손에는 치즈빵이 가득 든 봉지를 들고 말이다.

치즈를 못먹는 인간이 사온 치즈빵은 분명 나를 위한거다.

내가 좋아하는 치즈빵.

난 그 빵봉지를 급히 열어 한입 물어 뜯고는 짭짤하고 고소, 달콤한 맛에 하루종일 얼어있던 마음이 사르르 녹는다. 밀당의 고수는 바로 저인간이 아닌가 싶다.

늘 변함없이 10년째 미지근한 인간.

미지근한 물에 화상입는 나다.


정말 밉지만 사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