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 전부터 알고 있었다.
이 남자는 코를 심하게 골며 잔다는 사실을 말이다.
결혼 전에는 왜 이런 것들을 꼼꼼하게 보지 못했는지 그때는 콩깍지가 단단히 쓰여있었던 것 같다. 아니 어쩌면 눈과 귀가 멀었는지도 모르겠다.
만약 그때 알았더라면 결혼을 주저했을까라는 생각을 해보니... 그때 알았어도 결과는 달라지지 않았을 거다. 이렇게 생각하는 것을 보니 어쩌면 난 여전히 콩깍지의 ing형 일 수도 있겠다. 콩깍ㅈing... 에라이...
언제부터였더라... 그의 코골이 소리가 거슬린 게.
아마도 신혼 때였던 것 같다. 오랜 기간 연애를 했고 우린 서로에게 매우 솔직한 편이었기에 동거에 대한 환상이나 신혼의 기쁨 따위는 별로 없었다. 오히려 그런 달콤한 신혼보다는 서로에게 적응하고 맞추기 위한 서로 깎고 깎이는 투쟁 이만이 존재하던 그때였다. 나는 남편보다 늘 먼저 잠들고 싶었다. 혼자 깨어있는 채로 잠든 그의 얼굴과 어깨를 바라보고 싶지 않았다.
그가 자는 모습을 보면 뭔가 원치 않는 뜨거움이 가슴 밑바닥에서 올라왔다.
알 수 없는 측은함과 애잔함, 그리고 그 감정은 꼭 눈물이 흘러야만 씻겨 내려갔다.
실컷 울고 나면 개운해진 눈이 감기는 그런 시스템이었다.
자는 사람을 바라보는 일의 끝이 왜 꼭 울음인 건지...
지금은 조금 알 것 같기도 하다. 잠들어 있는 사람 얼굴에서 우리는 어쩌면 죽음을 마주하기 때문이 아닐까. 온몸의 근육이 풀어진 채 아무것도 모른 채 자고 있는 그에게서 느끼는 막연한 마지막의 모습이, 그리고 그의 삶이 담긴 연민이 우리를 엄습하기 때문일 거다.
하지만 그런 심오한 생각과 분위기를 상쇄하는 건 그의 코에서 나는 엄청난 소리였다. 뭔가 찢어질듯한 소리, 비명을 지르는듯한 소리 그리고 시계 초침만큼이나 규칙적인 소리, 듣고 있자면 뜨거워진 가슴에 짜증이 한 스푼 얹어지는 기분이었다. 너무 찢어지는 소리라서 듣고 있으면 너무 시끄러워 잘 수도 없었다. 그래서 무조건 밤마다 남편보다 먼저 자려고 애를 썼는데 첫째를 임신하면서 그 갈등이 최고조에 달했다. 첫째를 품는 동안 밤만 되면 심해진 소양증과 불면증으로 침대에 누워 어스름해지는 새벽을 지켜보는 일이 많았었는데 그때마다 남편은 아무것도 모른 채 코로 비명을 질러댔다. 가끔은 너무 짜증이 나서 남편을 때려서 깨운 적도 있었다.
아마 남편은 내가 왜 그때 그렇게 화를 냈는지 아직도 모를 거다.(이 글을 읽으면 알게 되겠지?) 그런데 이 죽도록 싫은 그의 코골이가 언제부터 적응이 된 건지...
언제부턴가 남편의 코 고는 소리가 들리지 않게 되었다. 옷에 베인 다우니 피죤 냄새가 내 코에만 느껴지지 않는 것처럼 남편의 코골이 소리는 이제 밤에 듣는 자장가처럼 평온했고 자연스러웠다.
아이들이 늦은 시각에도 잠자리에 들지 않으면 가끔 자장가를 틀어놓는데 아이들은 자장가보다도 아빠의 코 고는 소리에 리듬을 맞춰 잠을 잘 자기도 했다. 그리고 나 역시 남편의 코 고는 소리를 들으며 묘한 안도감에 잠이 들곤 했다.
그런데 요즘 남편이 코를 골다가 가끔씩 멈춘다.
새벽에 화장실을 가느라, 혹은 아이들의 잠자리를 살피느라 눈을 뜨면 여지없이 남편은 코로 비명을 지르고 있는데 가끔은 이 소리가 멈춘다. 그러면 무서운 마음에 남편을 툭툭 쳐본다. 그럼 남편은 그제야 참았다는 듯이 숨을 내뱉는다. 그럴때마다 남편이 코 골이를 멈출까 무서워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여보, 계속 골아. 왜 그래~"
이젠 다른 이유로 이 인간이 코 고는 게 싫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