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렇게 엄마가 된다.
어릴 땐 그저 나이도 이름도 몰라도 친구가 되어 같이 놀면서 마음을 나누고 거리낌 없이 서로의 집에 놀러 오고 놀러 갔었다. 모두가 친구였고 모두가 친했다.
사춘기가 오면서 남자애들에게는 마음을 주는 게 사심 같아서 망설여졌고 그렇게 친구의 범위는 점점 줄어들었다.
스무 살이 넘으면서 전공이 같고 취향이 비슷한 친구들을 골라 사귀었고
결혼을 하면서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은 친구들과 어울렸다.
그렇게 친구의 범위는 점점 좁아져만 가고 지금은 어릴 때 죽고 못 살던 친구들과는 일 년에 한두 번씩 만나는 정도가 되었다.
대신 내 옆에는 베스트 프랜드가 남편이라는 이름으로 생겼고 하루 24시간을 붙어있는 어린 아가도 생겼다.
하지만 언제나 새로운 친구들에 대한 호기심과 남편과는 나눌 수 없는 이야기도 서슴없이 할 수 있는 친구에 대한 갈망은 늘 여전하다.
요즘 길에서 우연히 그리고 자주 마주치는 여자가 있다.
예쁜 얼굴에 단정하게 묶은 머리 조용한 말투 먼 산을 자주 보는 눈. 그 눈 뒤에 무언가가 숨어있을 것 같은 눈빛. 비 오는 날 같이 오래된 음악을 선곡하고 맥주 한잔 마시면서 조용하게 웃으면서 수다 떨고 싶은 친구 같은 느낌이다.
그녀는 가까이 사는 데다 내 아들과 비슷한 또래의 아이를 안고 있다.
당장에 친해져 서슴없이 함께하고 싶은 마음이 든다.
그런 그녀를 며칠 전 길에서 또 우연히 만났다.
그렇게 우연히 몇 번을 마주치고 나서야 우린 간신히 대화를 나눴다.
“안녕하세요~.”
어색한 인사였지만 우린 곧 익숙하게 수다를 늘어놓았다.
“아기 너무 예쁘네요. 딸이에요? 아들이에요?”
“몇 개월이죠?”
“밥은 잘 먹나요? 잠은 잘 자나요?”
“아가 이름은 뭐예요? 누가 지어주셨나요?”
“몸무게는 몇 키로 나가요? 아직도 모유수유는 하시나요?
“문화센터는 다니세요?”
이렇게 어색함 없이 긴 수다를 떨 수 있었던 건 우리에겐 엄마라는 공통점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린 앞에 하나씩 아가를 매고 이 아가들을 다리 삼아 친구가 되기로 했다.
“우리 친하게 지내요~”
라고 말하고 전화번호를 눌러주고 집에 왔는데...
그제야 깨달았다. 그녀의 이름조차 묻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리고 그녀에게 내 이름도 말해주지 않았다는 사실을...
그저 나에겐 그녀는 ○○엄마, 나는 그녀에게 △△엄마였을 뿐이었다.
그저 집에 돌아와 헛헛한 마음에 웃음이 피식 났다.
그리고 며칠 뒤 우린 다시 길에서 우연히 만났다.
그날은 저번보다 더 반갑게 인사했고 이름도 물어보았고 나이도 물어보았다.
그날 서로에 대해 한마디도 나누지 않았다는 것을 머쓱해하며...
아마 그녀도 나와 비슷한 마음이지 않았을까.
그날 이후 핸드폰에 ○○엄마 대신 그녀의 예쁜 그녀의 이름으로 바꾸어 저장해 놓았다.
그리고 오늘.
비가 촉촉이 내리고 나른한 음악을 들으니 막 알게 된 그녀와 진한 커피 한잔 마시면서 사는 얘길 나누고 싶은 생각이 든다.
하지만 뭐 때문인지 나는 계속 망설이고만 있다.
새 친구.
어릴 때의 나였다면 “우리 집에 놀러와.”, 혹은 그 집 문을 두들기면서 “ㅇㅇ있어요?”라고 서슴없이 다가갔을 텐데
지금의 나는 집에 초대하고 싶어도 아이가 한껏 어질러 놓은 집에 초대하기가 부끄럽기도 하고
놀자고 말하고 싶어도 아이의 리듬에 맞춰 사는 그녀가 오늘은 안된다고 할까 봐 쉽게 연락하지 못하고
카톡에 그녀의 프로필 사진만 열었다 닫았다 하고 있다.